1988년 당시 고등학생이었던 봉준호 감독이 살던 집은 그의 방에서 한강과 잠실대교가 한 눈에 들어왔다. 한창 사춘기를 겪고 있었던 그는 어느 날 멍하니 창밖을 바라보다가 잠실대교 교각위로 기어오르던 검은 물체가 한강으로 떨어지는 것을 목격했다. 평소 세계 7대 불가사의와 같은 신비한 이야기에 관심이 많았던 소년은 ‘만약 한강에서 괴물이 나오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라는 기발한(?) 공상을 하게 됐다. 그날 이후 그의 뇌리엔 한강 다리를 휘감던 괴물체가 뇌리를 떠나지 않았다. 소년은 영화감독이 되면 꼭 영화로 만들어야 겠다는 꿈을 키웠다. 지난 2006년 8월, 봉 감독은 18년간 가슴속에 간직해왔던 꿈을 스크린 위에 펼쳤다. 한국영화사를 새로 쓴 ‘괴물’이다. ‘괴물’은 관람객 1천300만명이 말해주듯 한국 영화사상 최대 흥행작이란 금자탑을 세웠다. 특히 분단과 경제발전이란 상충된 두 얼굴의 한강을 영화의 테마로 삼은 발상의 전환으로 신선한 충격을 주었다. 흑백사진으로 익숙한 동강난 한강다리는 전쟁의 비극을 떠올리게 하고, ‘한강의 기적’은 초고속 경제성장의 신화를 의미했기 때문이다. 그로부터 꼭 1년이 지난 2007년 여름, 한국 극장가에는 또 한편의 괴수영화가 관객들을 사로잡고 있다. 한국인들에게 친숙한 이무기 설화를 소재로 한 심형래 감독의 ‘디 워(D- WAR)’다. 지난 1일 극장가에 첫선을 보인 영화는 개봉 4일만에 관객 200만명을 돌파하며 대박행진을 예고하고 있다. ‘디워’는 심 감독이 지난 1999년 ‘용가리’로 쓴맛을 톡톡히 본 이후 8년간의 절치부심 끝에 내놓은 재기작이다. 동양적인 소재와 화려한 컴퓨터그래픽(CG)을 앞세워 오는 9월14일 미국 극장가에도 내걸릴 예정이다. ‘디워’는 흥행성을 추구한 나머지 스토리 구성이 빈약한, ‘A급 CG와 Z급 시나리오’라는 혹평에도 불구하고 할리우드가 독식하고 있는 SF시장에 한국영화로는 처음으로 도전장을 내밀었다는 점에서 주목을 받고 있다. 전설속의 이무기가 LA의 최고층 빌딩인 US뱅크타워를 휘감는 장면, 악한 이무기 캐릭터인 ‘부라퀴’ 군단이 벌이는 도심 전투신 등은 할리우드산(産) 블록버스터 못지 않다. 이처럼 ‘괴물’과 ‘디워’는 한강의 괴물과 전설 속 이무기를 소재로 한 스펙터클 영화라는 점에서 비슷하다. 하지만 무엇보다 가장 큰 공통점은 우리에게 익숙한 공간과 설화를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새로운 차원의 판타지로 풀어냈다는 것이다. 역사에 짓눌렸던 한강이 괴물이 사는 상상속의 세계로 변신하고 여의주를 찾으면 하늘로 승천한다는 이무기가 고부가 문화콘텐츠로 부활한다. 이는 두 감독의 문화적 상상력이 빚어낸 값진 성과다. 21세기 문화산업의 시대, ‘괴물’과 ‘디워’는 ‘문화적 상상력=경쟁력’임을 다시 한번 일깨운다. 〈문화생활부장 jhpark@kwangju.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