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06년 10월 18일 국내 유명 포털 사이트에는 전시기획자 이원일씨가 검색순위 10위권에 올라 화제가 됐다. 연예인도 아닌 미술인인 그가 뉴스메이커가 된 것은 다름 아닌 표절 때문이었다. 당시 2006 상하이 비엔날레 전시감독으로 비엔날레 작품도록에 쓴 그의 서문이 한 외국 미술평론가의 글을 베꼈다는 주장이 제기된 것이다. 네덜란드의 평론가 헹크 슐라커는 2005년 부산 비엔날레 국제세미나 때 자신이 발표한 ‘아시아 비엔날레의 발전방향’에 대한 발제문을 이씨가 단어만 바꾸는 교묘한 방법으로 표절했다고 주장했다.
표절 시비에 휘말린 이씨는 ‘한글로 된 글을 영역하는 과정에서 인용각주표시를 실수로 빠뜨렸다’며 ‘슐라거에게 이메일을 통해 깊이 사과했다’고 해명했다. 상하이 조직위 측은 슐라커의 항의를 받아들여 전시도록을 새로 제작하는 등 뒷수습에 나섰지만 한번 흠집난 비엔날레의 위상을 회복시킬 수는 없었다.
그로부터 3개월 후인 지난 1월. 이번엔 화가 한젬마씨가 대필의혹으로 또 한번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렸다. ‘그림 읽어주는 여자’라는 꼬리표를 붙여준 그의 베스트 셀러 미술서들이 실은 전문 구성작가의 손에서 나왔다는 것이었다. 네티즌들의 비난이 쏟아지자 한씨는 “책 또한 예술품과 마찬가지로 아이디어가 중요하지 누가 썼는지는 대수롭지 않다”고 변명했지만, 성난 대중들을 달래지는 못했다.
그런데 이상한 건 이 두 사건에 대한 미술인들의 반응이었다. 특히 이원일씨 사건의 경우 당시 국제 미술계를 뜨겁게 달군 핫 이슈였지만 정작 국내 미술계는 조용했다. 아니 조용했다기보다는 침묵했다는 표현이 더 정확하다. 전시기획자로서 그의 영향력 때문인지, 아니면 비평보다 기획이 본업인 그의 ‘글 실수’를 애교로 여겼는지 몰라도 미술인들은 말을 아꼈다. 그 덕분에 이씨는 지금도 큐레이터로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다. 미술계의 도덕 불감증이 어느 정도인지 짐작케 하는 대목이다.
다른 분야에 비해 인맥이 좌우하는 폐쇄적인 미술동네에선 웬만한 학력이나 경력 부풀리기는 알면서 속아주는(?) 분위기가 팽배하다. 특히 작가와 큐레이터의 경우 ‘언제 어디서 만나게 될지 모르는’ 공생관계이다 보니 사소한 거짓이나 허물 쯤은 덮어준다.
최근 신정아씨의 가짜 학위 사기극도 이와 무관치 않다. 지난 2005년 초 신씨가 동국대 교수로 임용되기 전부터 그의 경력에 대한 논란이 끊이지 않았지만 대다수 미술인은 ‘개인신상에 관한 문제’라며 검증보다 침묵을 택했다. 신씨의 가짜학위 사본만 보고 교수로 채용한 동국대나 그런 대학만 믿고 덜컥 비엔날레 예술감독으로 선임한 광주비엔날레 재단도 마찬가지다.
문제는 이러한 사건들이 너무나 빨리, 그리고 쉽게 잊혀진다는 데 있다. 지금처럼 일부 미술인들의 사기행각을 눈감아 주는 ‘봐주기 문화’가 사라지지 않는 한 제2, 제3의 신정아가 활개칠 것은 불 보듯 뻔하다.

박진현〈문화생활부장 jhpark@kwangju.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