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월 오승윤(1939∼2006) 화백의 갑작스러운 죽음은 한국 미술계에 큰 충격을 주었다. 광주 화단을 이끌던 ‘어른’을 하루 아침에 잃은 지역작가들의 슬픔은 그 누구보다도 컸다. 하지만, 슬픔도 잠시. 고인이 화집제작업체와 체결한 불평등 계약으로 괴로워하다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는 뒷얘기가 알려지면서 지역 미술계는 또 한 번 혼란에 빠졌다. 그렇다면 오 화백이 작가의 손과 발을 묶어버릴 만큼 불리한 계약을 감수한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여기에는 업체가 화집제작과 연계조건으로 내건 ‘서울 H갤러리’ 옵션이 크게 작용했다는 후문이다. H갤러리에서 초대전을 열어줄테니 화집제작에 관한 모든 권한을 넘기라는 업체의 조건에 사인한 것이다. 탄탄한 인맥과 마케팅을 자랑하는 H갤러리는 무명의 작가를 단숨에 스타로 키워내는 미술시장의 ‘큰손’이다. 때문에 이름깨나 알려진 중진작가들도 이 갤러리의 초대장을 받기가 어렵다. 그런 점에서 H갤러리 초대전이란 카드는 오 화백에게는 거부하기 힘든 달콤한 유혹이었다. 불이익을 보더라도 이 갤러리 초대전이 자신의 미래에 그 이상의 ‘플러스 알파’를 가져다 줄 것이라고 믿었던 것이다. 인지도가 높은 오 화백이 그럴진대 이름없는 청년작가들이야 더 말해 무엇하겠는가. 오 화백의 불평등 계약은 지방작가들이 중앙무대에 진출하기가 현실적으로 얼마나 어려운지를 극명하게 보여준 사례다. 일반적으로 지방작가가 서울 인사동 갤러리에서 개인전을 열려면 2천만∼3천만 원의 경비가 든다. 이렇다보니 웬만큼 ‘작심하지 않는 한’ 서울나들이는 엄두를 내기 힘들다. 또 철저히 시장논리에 움직이는 메이저 화랑들은, 중앙화단에 얼굴이 알려진 스타작가 위주로 전시회를 기획한다. 제 아무리 재능이 뛰어난 지방작가라도 네임밸류(name value)가 약하면 이들의 초청리스트에 끼일 수 없다. 이래 저래 중앙화단에 얼굴을 내밀 기회를 잡지 못하는 지방작가들은 미술시장에서 ‘영원한 신인’ 일뿐이다. 최근 광주작가들에게 단비와 같은 반가운 뉴스가 전해졌다. 광주시가 지역작가들의 중앙무대 진출을 돕기 위해 예산 50억 원을 들여 내년 3월 오픈을 목표로 서울 인사동에 가칭 ‘광주시립미술관 인사동 갤러리’(인사동 갤러리)를 추진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역 미술계에서는 이 갤러리가 개관할 경우 지역작가들의 중앙데뷔가 숨통을 트게 될 것이라며 벌써부터 큰 기대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는 분위기다. 미술인들의 바람처럼 인사동 갤러리가 ‘가까이 하기엔 너무 먼’, 중앙진출에 대한 열정을 다시 되살려내는 ‘드림 팩토리(dream factory)’가 되길 희망한다. 우물에서 벗어나 더 큰 세상으로 나가는 광주작가들이 늘어나면 문화수도의 위상도 그만큼 커질 것이다. <문화생활부장 jhpark@kwangju.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