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아침을 다소 행복하다고 생각하는 것은/한 잔 커피와 갑속의 두둑한 담배/해장을 하고도 버스값이 남았다는 것 (…중략) 가난은 내 직업이지만/비쳐오는 이 햇빛에도 떳떳할 수 있는 것은/이 햇빛에도 예금통장은 없을 테니까’(천상병 ‘나의 가난은’ 중에서) 지난 1993년 4월28일, 고단한 이승에서의 소풍을 마치고 하늘로 돌아간 천상병 시인(1930∼1993)의 가족에게 조의금 몇백만 원이 들어왔다. 생전 처음 만져보는 큰돈을 간수하기가 벅찬 시인의 장모는 다른 사람들의 손을 타지 않을 곳을 찾던 끝에 아궁이 속을 떠올렸다. 그 사실을 모른 시인의 아내가 아궁이에 불을 지펴 돈은 한 줌의 재가 됐다. 생전 막걸리 한사발만 마실 수 있으면 세상에 부러울 게 없었던 천 시인의 삶은 가난한 예술인의 초상이었다. 최근 예술의 중요성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높아지고 있지만, 상당수의 예술인은 여전히 생활고에 허덕인다. 요즘 샐러리맨들의 관심사인 노후보장과 재테크는 꿈조차 꾸기 어렵다. 60%의 예술인이 월수입 100만 원 이하(문화관광부 통계)의 저소득층인 탓에 신용카드나 비자조차 발급받기 힘들 정도다. 이 때문에 문화예술인들에게 부업은 선택이 아닌 필수다. 실제로 일부 작가들은 도배나 집수리 등 막노동으로 생계를 유지한다. 이런 가운데 지난달 말 광주에서는 문화예술인들에게 단비와도 같은 뜻깊은 행사가 열렸다. 지역 문화NGO인 ‘모난돌’이 노동부의 후원을 받아 미술인, 연극인, 공연기획자 등 ‘문화 인력’들에게 고정수입을 보장하는 ‘열린 일자리 한마당 채용 박람회’를 개최한 것이다. “결혼 20년 만에 처음으로 아내에게 월급을 가져다 줄 수 있게 됐다”는 한 작가의 말처럼 채용된 대상자들에게는 1년 동안 매달 기본급 77만원과 4대 보험가입, 복지후생제도 등 최저생계 혜택이 주어진다. 사업에 따라 성과급도 지급된다. 이번 행사가 관심을 모은 것은 노동부가 다른 소외계층과 마찬가지로 문화예술인들을 경제적 취약 계층으로 인정, 일자리 문호를 개방했다는 데 있다. 물론 주머니가 두둑해야 뛰어난 예술작품이 탄생하는 것은 아니지만, 문화예술인들이 삶에 지쳐 예술을 포기하지 않도록 기초생활대책을 마련해주는 것은 이제 우리 사회가 풀어야 할 과제다. 문화중심도시 프로젝트가 가시화되고 있는 요즘, 광주에서 전국 최초로 문화일자리 채용박람회가 열린 것은 의미 있는 일이다. 부디 이번 행사가 일회성 이벤트로 그치지 않고 예술인들의 처우에 관심을 갖는 계기가 되길 기대해본다. 예술인들의 최저생계가 보장되는 사회가 문화선진국이다. /문화생활부장 jhpark@kwangju.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