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파리가 미술관도 되고, 창조적인 공간도 되는 문화도시를 희망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미술관, 음악홀, 도서관, 연구소 등이 함께 어우러지는 문화발전소가 필요하다.”
지난 1969년, ‘문화 대통령’이었던 프랑스 조르주 퐁피두는 세계적인 복합문화센터를 건립하자는 야심찬 제안을 내놓았다. 대통령의 뜻을 받든 파리시는 71년 젊은 건축가 렌조 피아노와 리차드 로저스에게 ‘드림팩토리’설계를 맡겼다.
그로부터 6년뒤인 지난 1977년. 파리의 우아한 석조건물과 전혀 어울리지 않는 전위적인 건물이 모습을 드러냈다. 오늘날 전 세계에서 매년 800만 명이 찾는 퐁피두 센터다.
아시아 문화중심도시 프로젝트의 핵인 아시아 문화전당(이하 문화전당)은 지난 2003년 ‘한국의 퐁피두’를 꿈꾼 노무현 대통령의 제안으로 태동 됐다는 점에서 퐁피두 센터와 출발이 비슷하다. 하지만 그 이후의 행보는 극과 극이다.
퐁피두 프로젝트가 시민, 전문가들의 의견을 적극 수렴한 파리시의 ‘열린 행정’으로 추진됐다면, 문화전당은 국책사업이라는 이유로 ‘지역’을 배제한 문화관광부의 독선으로 진행되고 있다.
그뿐만이 아니다. 두 문화시설이 지향하는 목표와 콘텐츠 역시 판이하다. 퐁피두 센터는 현대미술박물관(퐁피두 갤러리), 영화·공연예술센터, 도서관, 음향기술 연구소(이르캄·IRCAM)가 공존하는 세계 최대규모의 복합공간이다. 소장품만 5만여 점에 이르는 퐁피두 갤러리는 현대미술 분야에선 뉴욕 현대미술관(MoMA)에 이어 두 번째 규모다. 또한 연극·무용·음악회가 연중 펼쳐지는 퐁피두 센터는 하루 평균 2만5천여 명이 찾는다.
퐁피두 센터는 프랑스 문화의 앞날을 제시하는 ‘미래의 공간’ 이기도 하다. 세계적인 음향기술연구소인 ‘이르캄’이 대표적인 예다. 현대음악의 발전을 위해 설립된 이르캄은 산하에 앙상블인 ‘앵테르 콩탕포랭’을 창단, 연구성과를 콘텐츠로 개발해 명성을 떨치고 있다. 이들의 파트너십은 연구와 향유를 연계한 문화발전소의 전범으로서, 퐁피두의 저력을 보여준다.
한국의 퐁피두를 지향하는 문화전당으로 눈을 돌려보자. 현재 문광부가 내놓은 문화전당 계획안에 따르면 연구와 교육만 있을 뿐 향유와 관광은 없다. 게다가 연구기능도 어떤 문화적 부가가치를 창출시킬 것인지 불분명하다.
문광부의 계획대로 추진된다면, 3만5천여 평의 수퍼문화전당은 관광객은 없고 연구원들만 있는 ‘썰렁한 실험실’이 될 게 자명하다.
문화경쟁의 시대, 볼거리도 없고 수익도 못 내는 문화시설은 퇴출 0순위다. 문화전당의 기능과 역할에 대한 대대적인 수술이 이뤄지지 않는 한, 문화전당은 ‘돈먹는 공룡’으로 전락할지 모른다.
〈문화생활부장·jhpark@kwangju.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