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견 서양화가 J(47)씨는 요즘 예술의 거리(광주시 동구 궁동)에 나가기가 망설여진다. 이유는 순전히 오는 23일로 예정된 광주 미술협회장 선거 탓이다. 차기 회장 후보자들의 면면이 평소 “형님, 동생” 하며 지내던 지인들이라, 예술의 거리에서 만난 이들 입지자들이 서로 한 표를 부탁하면 어떤 표정을 지어야 할지 여간 난감한 게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J씨의 가장 큰 고민은 정작 다른데 있다. 광주미협의 수장에 도전한 5명의 후보 가운데 “바로 이사람”이라고 할만한 적임자를 고르기가 쉽지 않아서다. 저마다 미술인의 화합과 복지향상 등을 슬로건으로 내걸었지만, 왠지 피부에 와닿지 않는다. 이런 이유로 최근 미술인들 사이에서는 ‘풍요 속의 빈곤’이란 말이 회자 될 정도다.
요즘 광주 미술계는 10여일 앞으로 다가온 제8대 광주미술협회장 선거로 팽팽한 긴장감이 흐르고 있다. 이번 선거에는 나상옥, 임춘식, 정광주, 정순이, 정홍기씨 등 5명이 출사표를 던져, 유례없는 5파전으로 치러질 전망이다.
그렇다면 광주미협회장이 5대1의 경쟁률을 보일만한 인기요인은 뭘까? 전임 미협회장들의 행보와 무관하지 않다는 게 미술계 안팎의 공통된 시각이다. 역대 회장이었던 오건탁 회장(6대)과 박지택 회장(7대)이 잇따라 광주 시립미술관장으로 낙점돼, 언제부턴가 미협회장 자리가 시립미술관장으로 가는 길목(?)이 됐다는 것이다.
물론 미협회장으로서 능력을 인정받아 시립미술관장으로 발탁됐다면 더할 나위없이 바람직한 일이다. 하지만 이를 곧이곧대로 믿는 사람이 몇이나 될지 궁금하다. 사실 그간 광주미협이 보여준 태도는 지역미술인들의 어려운 여건을 개선하는데 소극적이었다. 반면 광주시로부터 예산지원을 받은 생색용 행사들을 치르는 데는 두팔을 걷었다. 이러한 특수한 역학관계 때문인지, 미협은 정작 행정당국을 상대로 목소리를 높여야 하는 상황에서는 종종 나약한 모습을 드러냈다.
대표적인 예가 지난해 초 미술인들과 광주시가 새 광주시립미술관 건립부지를 놓고 대립각을 세울때 보여준 어정쩡한 태도다. 당국의 눈치를 보느라 바쁜 미협을 참다 못한 일부 미술인들이 비상대책위원회를 구성해 광주시와 힘겨운 투쟁을 벌였었다.
광주미술협회는 지역사회에서 차지하는 위상이 작지 않다. 미술인들의 권익보호는 물론 문화도시 광주의 대표적인 예술단체로서 미술인들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구심체이기 때문이다. 입후보자들은 그럴싸한 공약보다는 지금 미술인들의 마음이 어디에 가 있는지 헤아리는 일부터 해야 한다. “미협회장에서 물러나도 시립미술관장에는 눈 돌리지 않겠다고 공약하는 후보를 찍겠다”는 한 미술인의 비아냥은 괜한 소리로 들리지 않는다.
〈문화생활부장·jhpark@kwangju.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