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년전 광주 시립미술관은 ‘얼굴이 화끈 거리는’ 경험을 했다.
오지호 화백(1905∼1982)의 탄생 100주기를 맞아 기획한 특별전을 위해 국립 현대미술관에 소장중인 고인의 작품을 임대해달라는 제안을 했다가 거절 당한 것이다. 기본적인 항온·항습시설이 안된 전시장에는 작품을 빌려줄 수 없다는 게 이유였다. 체면 무릅쓰고 몇차례 더 부탁했지만 현대미술관의 마음을 돌리는데 실패해 결국 이 전시는 무산됐다.
현대미술관의 ‘상처’가 아물기도 전에 시립미술관은 또 한번 좌절을 겪었다. 2004년 8월 ‘렘브란트전’ 광주순회전을 유치하기 위해 기획사측에 노크했다가 전시장 시설과 시장성이 미흡하다는 이유로 딱지를 맞았다. 특히 렘브란트전 유치에 소요되는 수억대의 비용을 커버하려면 최소 관람객이 30만명이어야 하는데, 흥행을 확신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지난 1992년 개관 이래 10만명 이상 관람객을 동원한 전시회가 전무했기 때문이다.
그 때의 아픔이 너무 컸던 것일까? 이후론 광주 시립미술관에서 블록버스터급 전시를 보기가 힘들다. 겨울방학을 맞아 서울은 물론 전국 지방공립미술관들이 앞다투어 해외유명작가전을 유치하고 있는 것과는 대조적이다.
경기도 미술관은 올 겨울 스페인이 낳은 세계적인 작가 ‘후안 미로전’을 개최해 대박을 터뜨렸으며 부산 시립미술관은 ‘인도 현대미술전’을 열어 시민들의 문화갈증을 해소하고 있다. 대전 시립미술관은 지난해 야수파 거장 ‘루오전’을 개최해 관람객 11만명을 동원했다.
대전과 경기도 미술관이 ‘지방’이라는 한계에도 불구하고 블록버스터 전시를 유치할 수 있었던 것은 지자체의 지원과 미술관의 치밀한 마케팅 덕분이다. 두 지자체는 시민들의 문화향유를 위해 2억∼3억원에 달하는 전시예산을 아낌없이 내놓았으며, 미술관은 전시의 내실을 위해 2년 전부터 전시준비를 해왔다.
그렇다면 광주 시립미술관은 어떤가. 지역작가들의 기획전으로 새해를 연 시립미술관은 다른 지역 공립미술관이 연일 수백명의 관람객들로 발디딜 틈이 없는 것과 달리, 찾는 관람객들이 적어 썰렁하다. 문제는 올 8월 최첨단 전시장 시설이 구비된 새 미술관으로 이전해도 달라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한해 전시예산 2억원으로는 수억원대의 비용이 들어가는 매머드 전시 유치는 ‘그림의 떡’이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시립미술관은 현재 개관오픈 기념전으로 국내 유명작가전을 추진하고 있다.
문화도시의 주역은 다름아닌 시민들이다. 예술적 소양을 갖춘 시민들이 가꾸어 가는 도시는 그 어떤 화려한 랜드마크나 정책보다 높은 문화적 품격을 보여준다. 시민들의 문화감각을 높이기 위해서, 문화도시 광주의 면모를 과시하기 위해서라도 광주시와 시립미술관의 전향적인 인식전환을 촉구한다. 언제까지 ‘동네미술관’으로 남아 있을 순 없지 않은가.
〈문화생활부장·jhpark@kwangju.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