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산물값 오르는데…농민은 ‘빈주머니’
2025년 10월 16일(목) 20:25
연 평균 생산비 3.9% 폭등…물가상승율의 2배 육박
쌀 28%·배추 45% 오르고 위탁영농비 500% 치솟아
“산지가, 소비자가보다 훨씬 낮아…물가 주범 억울”
소비자들이 구입하는 농산물 가격이 고공 행진을 하는 가운데 정작 농민들의 통장은 텅텅 비어가고 있다.

비료·농약·종묘 등 주요 농자재 가격과 인건비 등이 폭등해 농업 생산비가 소비자물가를 뛰어넘어 급증하는 반면 산지 판매가는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소비자들은 갈수록 비싼 값에 농산물을 구입하고 있는 한편, 농민들은 충분한 소득을 얻지 못하는 악순환이 이어져 전남 지역 농민들은 일년 농사지어도 “최저임금도 못 번다”고 호소하고 있다.

16일 더불어민주당 문금주(고흥·보성·장흥·강진) 의원이 농림축산식품부 자료를 분석한 결과, 최근 10년간 농산물 생산비는 연평균 3.9%씩 상승해 일반 물가상승률(2.3%)의 1.7배에 달했다. 쌀 생산비는 2015년 69만 원에서 2024년 88만 원으로 28% 늘었고, 배추는 45%, 마늘은 41% 급증했다. 특히 농촌의 인력난으로 위탁영농비는 500% 이상 뛰었다.

반면 농민의 실제 영농소득은 오히려 줄었다. 농가 총소득은 2014년 3495만 원에서 2024년 5060만 원으로 45% 늘었지만, 순수한 농업소득만 보면 같은 기간 1030만 원에서 957만 원으로 26% 감소했다. 겸업과 보조금 덕에 통계상 ‘소득 증대’가 잡히는 것일 뿐, 노동 대가는 시간당 9120원으로 올해 최저임금(1만 30원)에 미치지 못하는 것이다.

정작 체감 소비자가격은 가파르게 오르고 있다. 산지에서 도매시장, 중간 유통업자, 소매상으로 이어지는 단계마다 운송비·포장비·보관비가 붙고, 각 단계의 마진이 중첩되는 구조에 물류비와 인건비가 동시에 상승하면서 부담이 소비자 가격에 고스란히 전가되고, 정작 농민에게는 극히 일부의 소득만 돌아가는 것이다.

농협경제지주와 농산물 유통정보 KAMIAS 자료에 따르면 올해 상추 1kg 기준 연 산지판매가는 1256원, 소비자가는 1만3090원(100g기준 1309원)이다.

지난 2020년부터 최근 6년간은 산지가 평균 1266원, 소비자가 평균은 1만3100원대로 10배 이상 차이가 났다.

무안에서 주로 생산이 이뤄지는 마늘과 양파 역시 차이가 컸다.

마늘은 산지공판장가격이 올해 4262원, 소비자가는 1만1298원으로 2.65배 차이가 났다.

양파는 산지가가 688원, 소비자가가 2352원으로 3.42배 차이가 나고 있다.

또 ‘금배추’, ‘애플 플레이션’과 같은 말이 무색하게도 이들 작물을 키우는 농민에게도 정작 돌아가는 돈은 거의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작황이 좋지 않을 경우 대형유통업계에서는 물량을 무조건 확보하려는 선점적인 조치가 이뤄지면서 소비자가만 오르는 현상이 발생하는 것이다.

배추의 경우 올해 산지가는 1㎏당 1211원인데 1포기당 책정되는 소비자가는 5220원인 것으로 나타났다. 일반적으로 배추 1포기당 무게는 2~3㎏다.

사과는 산지 가격은 1㎏당 3885원인데 중도매인 상회에서 소상인 및 실수요자에게 판매하는 가격인 중도매인 판매가격은 소비자 가격은 8323원으로 2.14배 차이가 났다.

여기에 기후변화로 농민들의 한숨은 더 깊어지고 있다. 최근 이상기후로 인한 공급 불안 등 유통 환경 변화로 농산물의 가격 변동성이 심화되는 가운데 산지 가격이 소비자가로 즉각 반영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소비자가 체감하는 ‘물가 착시’에는 심리적 요인도 있다. 전기·교통비 등 생활비 전반이 오르는 가운데 저렴해야한다고 생각되는 지역 농산물 가격의 상승이 과대 인식되는 것이다.

김수미(여·47)씨는 “엊그제께 상추사러 갔는데 20장도 안 든 것 같던데 1봉지에 4000원 돈 하더라. 물가가 비싸니까 뭐 사고 싶어도 많이 안 사진다. 사려고 했다가 봐서 비싸니까 꼭 필요한 경우가 아니면 안 사는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윤선미(여·24)씨는 “우리 집에서 주로 먹는 게 사과인데 요즘 너무 올라서 아쉽다. 예전에는 사과 한봉지에 7~8000원에 샀던 기억이 있는데 최근에 갔을때는 막 1만2000원 이래서 놀랐다”고 밝혔다.

그러나 농민 입장에서는 비료값과 인건비 상승분이 수매단가에 제대로 반영되지 않아 “농사 지어봤자 남는 게 없다”는 한탄이 반복되고 있다.

무안군에서 배추, 벼, 마늘, 쪽파 등을 재배하는 고송자(여·76·전남도여성농민회장)씨는 “이제는 하루 인건비가 14만~15만 원으로 오르고 외국인 근로자도 편한 일만 찾아 가곤 한다. 현장은 사람이 없어 죽을 판이다”며 “농산물 팔아 손에 1만 원 잡히면 거기서 100원이라도 남아야 하는데 남는 게 없다”고 토로했다.

고씨는 “우리 아들도 오늘 아침에 농협자재구매카드로 비료 사고 약 사고 그랬는데 이자가 6%란다. 1년 지나면 6%를 줘야 하는데 그만큼 농사가 잘 안되면 빚만 생기는 거다. 은행이랑 대형마트만 배부르고 농민들은 죽고 있다”고 덧붙였다.

벼 농사를 짓는 농민들 사이에서는 수매가격과 시장 시세와의 괴리도 커 제도적 개선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윤일권 전국농민회총연맹 광주전남연맹 의장은 “생산비는 오르고 일손은 없는데 제대로 된 가격을 받지도 못하면 농민들은 힘들 수 밖에 없다. 현재 쌀값이 수확기임에도 농민들이 받는 수매가는 낮게 책정되고 있다. 결국 농민이 제대로 된 값을 받고, 소비자가 납득할 수 있는 가격에 살 수 있으려면 시세를 반영한 공정한 수매가격을 책정해야 할 것이다”고 말했다.

/김진아 기자 jinggi@kwangj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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