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도 건축기행] 지름 8m ‘숨결의 지구’, 수국의 섬에 예술로 새 숨결
2025년 10월 13일(월) 21:20
<43> 신안 도초도 ‘숨결의 지구’
신안군 ‘1섬 1뮤지엄’ 프로젝트 눈길
30개 뮤지엄 목표 현재 20곳 운영중
도초수국공원 정상에 돔 형태 조형물
덴마크 출신 올라퍼 엘리아슨 설치
화려한 색·기하학 패턴 타일과 구조물
열린 하늘 기후따라 변화무쌍 풍경 황홀

이탈리아산 용암석 타일을 주재료로 사용한 ‘숨결의 지구’

‘천사(1004)’는 전남 신안을 상징하는 이름이다. 모두 1028개(유인도 81곳·무인도 947곳)의 섬을 보유하고 있는 신안의 정체성이 담겼다. 압해읍과 암태면을 연결하는 길이 7224m의 다리도 ‘천사대교’로 불린다. 인구 소멸 고위험 지역이자, 재정자립도 역시 전국 226개 지역중 221위(2023년 기준)인 인구 3만 9000여명의 신안군은 자산인 ‘섬’과 ‘예술’을 연계한 ‘1섬 1뮤지엄 프로젝트’를 통해 새로운 지역의 미래를 만들어 가고 있다.

2019년부터 본격적으로 진행된 ‘1섬 1뮤지엄 프로젝트’는 모두 30개의 뮤지엄이 목표다. 현재 자은도의 1004섬 수석미술관과 둔장 마을미술관, 압해도의 저녁노을미술관, 암태도의 소작항쟁기념전시관 등 20곳이 운영 중이다. 사업 초기 화제가 됐던 건 세계적인 아티스트와 협업하는 예술섬 아트프로젝트였다. 마리오 보타, 안토니오 곰리 등이 참여하는 프로젝트 가운데 첫 결과물인 올라퍼 엘리아슨의 작품은 지난 11월 완공돼 방문객을 맞고 있다.



직경 8m 구(球) 형태의 ‘숨결의 지구’는 뚫린 천장에서 들어오는 햇빛이 기하하적 무늬의 타일에 반사되며 변화무쌍한 풍경을 만들어낸다. /최현배 기자 choi@kwangju.co.kr
◇ 도초도 수국정원의 대지의 미술관 ‘숨결의 지구’

암태면 남강 선착장에서 40여분 배를 타고 비금도 가산항에 닿았다. 차를 타고 20여분 달려 도착한 곳은 올라퍼 엘리아슨의 작품인 대지의 미술관 ‘숨결의 지구’(Breathing earth sphere).

덴마크 출신 올라퍼 엘리아슨(Olafur Eliasson)은 설치, 회화 등 다양한 매체를 활용해 작업하는 아티스트로 런던 테이트모던의 터번홀에 설치된 거대한 인공 태양 작품 ‘날씨 프로젝트’(2003)에는 200만 명이 넘는 관람객이 방문했다. 엘리아슨은 다양한 건축 프로젝트도 진행해왔다. 헤닝 라르센 건축사무소와 협업, 미스 반 데어 로에 상을 수상한 하르파 레이캬비크 콘서트홀 겸 컨퍼런스 센터 파사드, 카타르 사막에 설치한 거울 파빌리온 군집 ‘한낮의 바다를 유영하는 그림자들’이 대표적이다.



세계적인 거장 올라퍼 엘리아슨의 작품 대지의 미술관 ‘숨결의 지구’는 신안 도초도 수국정원에 자리하고 있다.
‘숨결의 지구’는 수국 60만 본이 식재된 도초수국정원 정상에 자리하고 있다. 정원 입구, 사방이 확 트인 수국카페에서 티켓을 구입한 후 가이즈까 향나무길을 따라 천천히 오르면 땅에 숨겨져 윗부분만 드러난 돔 형태의 조형물이 눈에 들어온다. “언덕을 올라와 주변을 돌아서 내부에 들어오는 과정이 모두 작품”이라는 작가의 말처럼 조형물은 발걸음을 옮길 때마다 ‘다른 이야기’를 들려준다.

직경 8m 구(球) 형태의 작품 입구를 찾아 돌아내려가는 길은 마치 풀이 잔뜩 덮인 거대한 무덤 곁을 지나는 느낌이 들고, 그 속에 감춰진 것들에 대한 궁금증을 일으킨다. 입구에 도착해 공간 너머 어렴풋한 빛의 존재를 인식하며 어두운 내부 터널을 지나면 ‘다른 세상’이 펼쳐진다.



마치 무덤으로 들어가는 듯한 느낌의 ‘숨결의 지구’ 입구.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건 화려하고 다채로운 색감, 기하학적인 패턴의 타일과 구조물 사이로 보이는 푸른 하늘이다. ‘숨결의 지구’에는 벽과 천장, 바닥이 존재하지 않는다. 열린 하늘에서 햇빛이 쏟아져 들어오며 만들어내는 그림자가 타일의 기하학적 패턴을 가로지르며 만들어내는 변화무쌍한 풍경은 황홀하다. 뚫려 있는 천장으로는 바람과 눈과 비를 고스란히 체험할 수 있으며 내부에 배수로를 설치했다. 타일이 덮인 곡선의 표면은 공간에 독특한 음향을 선사하고 색의 향연 속에 들려오는 새소리에 잠시 시간을 잊는다.

작가는 과거 화산활동으로 인해 형성된 도초도의 독특한 지형에서 영감을 받아 주재료로 이탈리아산 용암석 타일을 활용했다. 타일은 마치 언덕 바로 아래에 들어가 있는 듯한 작품의 특성을 반영하는 역할도 한다. 타일의 색은 하단의 붉은색으로부터 상단의 초록색으로 변해가는데 이는 대지와 토양, 식물의 푸르름을 상징한다.

돔을 덮고 있는 풀을 비롯해 주변 조경도 눈길을 끈다. 정돈되고 화려한 식재 대신 자연스러움이 돋보이는 조경설계는 국내 최고의 조경 전문가 정연선이 대표로 있는 조경설계회사 서안이 담당했다. 작품 제작에는 삶것 건축사무소, PMK갤러리도 참여했다.

올라퍼 엘리아슨은 작가의 말에서 “장기적으로 지구의 생명을 지켜내기 위해서는 대지와 식물, 나무, 생명체들의 소리에 귀 기울이며 땅의 소리를 들어야한다”며 “작품 ‘숨결의 지구’의 목적은 작품을 찾아온 이들을 우리 발 아래 놓인 흙과 암석으로 끌어들이고, 겸손한 마음으로 우리 자신과 대지를 다시 연결하는 일”이라고 말한다.



7개의 큐브로 이뤄진 플로팅 뮤지엄은 안좌도 신촌저수지에 떠 있는 물 위의 미술관으로 내년 하반기 문을 연다.
◇플로팅뮤지엄과 안토니오 곰리

도초도에 들렀을 때 놓치지 않아야 할 곳이 있다. 정약전의 일대기를 담은 설경구 주연의 영화 ‘자산어보’ 세트장이다. 집 두 채가 전부인 소박한 장소지만 탁 트인 바다가 펼쳐지는 초가집 마루에 앉아 있으면 한참을 머물고 싶어진다.

사실, 배를 타야하는 번거로움에 ‘숨결의 지구’만을 방문하는 게 쉬운 일은 아니다. 차로 15분이면 이동할 수 있는 비금도 원평해변 일원에 설치중인 안토니오 곰리의 ‘바다의 미술관(Elemental)’의 완공을 기다리는 이유다.

누워 있는 인간 모형의 초대형 설치물인 ‘바다의 미술관’은 신안 천일염 결정체 모양에서 모티브를 따온 작품으로 안토니오 곰리가 여러 차례 현장을 방문하고 주민들과 대화를 나누며 신안의 다채로운 자연 풍광, 갯벌, 바다. 지역사회와 조화를 고려해 제작중이다. 현재 설치조형물 파일 작업이 진행 중이며 내년 6월말 준공을 목표로 하고 있다.

배를 타고 나와 남강선착장에 도착한 후 15분 거리의 안좌도로 향했다. 김환기 화백의 고향 안좌도에 자리를 잡은 플로팅뮤지엄을 찾기 위해서다. 환기의 생가에서 차로 5분 정도 떨어진 미술관은 이름 그대로 신촌저수지 수면 위에 떠 있다.

일본 나오시마와 함께 자주 언급되는 곳으로, 버려진 제련소를 리모델링한 이누지마 미술관 설계자 야나기 유키노리가 참여한 플로팅뮤지엄은 7개의 사각형 큐브 형태로 신안의 소금 결정체를 이미지화했다. 플로팅뮤지엄은 각각의 큐브가 주변 풍경과 물을 그대로 반영하며 시시각각 변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뮤지엄은 야나기 유키노리의 작품을 만나는 상설 전시실 4개와 기획전시실 1개, 영상실, 관리실로 구성돼 있다. 현재 7개의 큐브가 모두 저수지에 띄워진 상태로 자유롭게 어우러져 색다른 풍경을 연출하고 있다. 현재 외부 공사는 거의 마무리된 상태로 내년 하반기 개관 예정이다. 플로팅뮤지엄 주변에는 김환기미술관과 큐브 형태의 성설전시관을 짓고 있으며 신촌저수지 주변을 따라 걸을 수 있는 산책로도 조성했다.

무한의 다리가 있는 자은도에는 인피니또뮤지엄이 들어선다. 리움 미술관 등을 설계한 세계적인 건축가 마리오 보타와 이탈리아에서 활발한 활동을 펼치고 있는 목포 출신 조각가 박은선이 협업하는 작품으로 인피니또(INFINITO)는 이탈리아어로‘ 무한’을 뜻한다. 지하 1층 지상 2층 규모로 내년 3월말 완공 예정이다.

신안군은 아트섬 프로젝트가 완성되면 섬 국제예술제(트리엔날레)와 뮤지엄 투어 아트크루즈를 운영할 계획이다.

/김미은 기자 mekim@kwangju.co.kr

/신안=이상선 기자 sslee@kwangj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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