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대적 믿음과 절대적 믿음 - 김원명 광주원음방송 교무
2024년 11월 22일(금) 00:00 가가
믿음에는 상대적 믿음과 절대적 믿음이 있다. 상대적 믿음이란 현실에 대한 믿음이요, 절대적 믿음이란 진리 실상에 대한 믿음이다. 현실에 대한 믿음은 그 믿음이 절대적일 수 없다. 반드시 그 상황에 상응하는 믿음이라야 지혜로운 믿음이기 때문이다. 이와 반대로 진리 실상에 대한 믿음은 상대적일 수 없다. 진리가 갖는 속성 자체가 절대적이므로 절대적 믿음이라야 역시 지혜로운 믿음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인간의 삶 속에서 이따금 현실화된 내용을 절대 믿음으로 착각하여 주장하는 사례가 있다. 이데올로기의 절대화, 사회제도의 절대화, 또는 어떤 종교나 이념이나 주의·주장의 절대화를 꾀하려는 경향이 있고, 이것이 우리 인류의 불행을 자초하고 있다. 현실화된 현상은 제각각 독특한 특징이 있고, 그에 따라 장단과 허실이 있기 마련이다. 진리 실상에서 현상으로 한 발자국만 나와도 절대성은 이미 무너져 버리는 것인데 어찌 절대적 믿음의 대상이 될 수 있겠는가.
현상적 대상물에 대한 믿음을 절대화하려 할수록 그 허구는 점점 더 부풀려진다. 반면에 절대적 진리 실상에 대한 믿음을 자기의 소견이나 자기 필요에 따라서 긍정,부정을 왔다 갔다 하는 경향이 있다. 뿐만 아니라 형이상학적 진리 실상의 존재 여부에 대한 인식 자체가 아예 없는 경우도 태반이다. 우리 범부 중생은 안 ·이 ·비 ·설 · 신(眼 ·耳 ·鼻 ·舌 · 身)의 오관기관(五官器官)을 통해 감지되는 대상은 쉽게 인식하지만, 오관기관으로 감지되지 않는 존재에 대해서는 아예 인정하지 않거나 별로 관심이 없거나 깊이 헤아려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나 생물학에서도 오관으로 감지되지 않는 기(氣), 정신 등의 존재가 있으며, 현대물리학에서도 우주의 구성 물질 가운데 현재 관측할 수 있는 물질은 4%정도에 불과하고, 관측 불가능하여 그 정체를 알 수 없는 암흑(다크)물질과 에너지가 90%를 넘는다고 한다. 그러므로 알지 못하는 영역이 얼마나 되는지도 전혀 알 수 없는 상황이다. 그런데 겨우 한줌 아는 것 가지고 어찌 진리 실상의 존재 여부를 부정할 수 있겠는가. 이것은 요컨대 지혜의 문제이다. 지혜가 열리면(깨달음) 대낮에 손바닥 속 구슬을 보듯 확실하게 보이지만, 지혜가 어두우면 옆에 있는 사물도 안 보이는 맹인과 다를 바 없다. 이에 지천명(知天命)이나 이순(耳順)의 경지에 올라야 그 믿음을 자신할 수 있다고 하는 것이다.
진리의 실상은 무궁한 묘리(妙理)와 무궁한 보물과 무궁한 조화가 하나도 빠짐없이 다 갖추어진 완전무결한 존재이기 때문에 이를 절대적 존재라고 하고, 절대적 존재에 대한 믿음 또한 절대적 믿음이라야 가장 지혜로운 믿음이요, 가장 은혜로운 믿음이다. 이 믿음이 깊어질수록 은혜의 결과가 무궁무진하게 되고 반대로 불신할수록 폐해가 따르고 손실이 뒤따르는 결과를 빚는다. 절대적 믿음을 신앙이라고 한다. 상대적 믿음은 일반적으로 쓰는 ‘믿음’이라는 용어로 표현해도 충분하며, 결코 ‘신앙’일 수 없다. 절대적 진리 실상은 어디에도 없는 곳이 없고, 모르는 것이 없고, 능하지 않은 바가 없고, 품어 갖고 있지 않은 것이 없고, 하지 않는 바도 없고, 부리지 않는 바가 없다.
이러한 절대적 대상에 대한 믿음은 자기 취향 따라, 자기 필요 따라 어디까지는 믿고 어디까지는 안 믿고 할 대상이 아니다. 오직 절대적 믿음을 바쳐야 할 대상이다. 이러한 것을 믿을 신앙이라 하고 이 대상을 신앙의 대상이라 한다. 너무도 위대하고 너무도 분명하고 너무도 큰 역사(役事)를 하고 계시기 때문에 오직 우리를 대상이요, 그 어떤 현실 대상과도 견줄 수 없는 지고지존(至高至尊)의 위치에 있기 때문에 이 자리는 신앙의 대상이요, 절대적 믿음의 대상이다.
이 두 가지 믿음, 즉 ‘상대적 믿음, 절대적 믿음’의 원리에 따라서 적절히 대처해 간다면 개인은 물론 국가 사회에도 큰 경사이자 은혜로 작용할 것이므로 이 믿음 세계를 정화하는 일이 가장 근본적인 일이요, 필수적인 일이다.
진리의 실상은 무궁한 묘리(妙理)와 무궁한 보물과 무궁한 조화가 하나도 빠짐없이 다 갖추어진 완전무결한 존재이기 때문에 이를 절대적 존재라고 하고, 절대적 존재에 대한 믿음 또한 절대적 믿음이라야 가장 지혜로운 믿음이요, 가장 은혜로운 믿음이다. 이 믿음이 깊어질수록 은혜의 결과가 무궁무진하게 되고 반대로 불신할수록 폐해가 따르고 손실이 뒤따르는 결과를 빚는다. 절대적 믿음을 신앙이라고 한다. 상대적 믿음은 일반적으로 쓰는 ‘믿음’이라는 용어로 표현해도 충분하며, 결코 ‘신앙’일 수 없다. 절대적 진리 실상은 어디에도 없는 곳이 없고, 모르는 것이 없고, 능하지 않은 바가 없고, 품어 갖고 있지 않은 것이 없고, 하지 않는 바도 없고, 부리지 않는 바가 없다.
이러한 절대적 대상에 대한 믿음은 자기 취향 따라, 자기 필요 따라 어디까지는 믿고 어디까지는 안 믿고 할 대상이 아니다. 오직 절대적 믿음을 바쳐야 할 대상이다. 이러한 것을 믿을 신앙이라 하고 이 대상을 신앙의 대상이라 한다. 너무도 위대하고 너무도 분명하고 너무도 큰 역사(役事)를 하고 계시기 때문에 오직 우리를 대상이요, 그 어떤 현실 대상과도 견줄 수 없는 지고지존(至高至尊)의 위치에 있기 때문에 이 자리는 신앙의 대상이요, 절대적 믿음의 대상이다.
이 두 가지 믿음, 즉 ‘상대적 믿음, 절대적 믿음’의 원리에 따라서 적절히 대처해 간다면 개인은 물론 국가 사회에도 큰 경사이자 은혜로 작용할 것이므로 이 믿음 세계를 정화하는 일이 가장 근본적인 일이요, 필수적인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