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엽이 지면 뿌리로 돌아가지만… - 김원명 광주원음방송 교무
2024년 10월 25일(금) 00:00 가가
생사대사는 누구도 장담할 수 없다. 전생에 지은 업보는 부처님도 어쩔 수 없는지라 그 업(業)을 청산하기가 참으로 어려운 숙제이다. 업은 보통 두 가지로 구분할 수 있다. 하나는 자기가 버릇 들이는 자습업(自習業)이고 또 하나는 상대가 있는 대타업(對他業)이다. 여기에서 자습업이란 심신을 작용할 때 만들어진 습성이 모여서 성격을 만들고 재능을 만드는 것을 말하고, 대타업이란 내가 다른 사람에게 어떤 영향을 끼쳤느냐에 따라서 그 과가 돌아오는 정업을 말한다.
사람들은 전부 각자의 습관이 있는데 이렇게 자기가 스스로 지은 업을 천업(天業)이라고 한다. 하얀 종이에 붓글씨를 쓰면 어떤 사람은 거칠게 쓰고 어떤 사람은 예쁘게 쓰듯이 본래 우리 성품은 깨끗하지만, 한마음을 어떻게 내느냐에 따라 습성이 다르게 형성된다. 흔히 좋은 습성을 가진 사람을 법 없이도 살 사람이라고 말하는데 이런 좋은 습성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누가 시키지 않아도 자기일과 자기 공부를 잘 찾아서 한다.
그런데 습성을 잘못 들인 사람은 남을 해코지하기도 하고 또 감정 조절을 잘하지 못해서 큰 문제를 일으키기도 한다. 같은 날 같은 시에 태어난 쌍둥이도 전생에 어떤 습성을 길들였느냐에 따라 내향적인 성격을 갖거나 외향적인 성격을 갖고 각각 다르게 태어난다. 정업은 자기가 스스로 지은 천업과는 달리 다른 사람이나 다른 동물과 식물 등 상대에게 행동한 것이 업이 되어 다시 돌아오는 것을 말한다. 어느 순간 나도 모르게 미물 곤충에게 함부로 한 것이 갑자기 피부병이나 피부암 등으로 나타나서 그 과보를 받게 한다.
이처럼 상대가 있는 업은 언젠가 반드시 나를 찾아와서 그 대가를 받게 한다. 이 정업을 아무리 피하려 해도 피할 수 없는 것은 진리가 주는 업이라서 그렇다. 최악의 경우는 내 상태가 가장 안 좋을 때 밖에서 지은 업이 한꺼번에 밀려오는 경우이다. 하지만 우리가 공부를 잘하면 자기 습성을 녹여서 밖에서 오는 업을 훨씬 감해서 받을 수 있다. 이 습성을 녹이기 위해서는 삼대력을 얻는 공부, 마음 훈련 공부로 나쁜 자기 습성을 먼저 고쳐나가야 한다.
천업을 임으로 한다는 것은 내가 나쁜 전생 습관을 가지고 태어났다고 하더라도 현생에 공부 표준을 잘 정해서 좋은 습관을 길들여 나가고 자꾸 돌려서 욕심을 가라앉히면 가능하다. 그런데 밖에서 지은 업은 그 권한이 상대에게 있기 때문에 반드시 받게 되어 있다.
그래서 부처님께서도 정업은 난면이라고 하셨다. 줄여서 받고 미뤄서 받을 수는 있지만 아주 안 받을 수는 없다. 마음 비우기를 끊임없이 계속하면 부동심, 흔들리지 않는 마음이 생긴다. 금생에 커다란 공덕을 쌓았다고 하더라도 부동심이 준비가 되어있지 않으면 다음 생을 보장받기 어렵다. 이 부동심을 만들고 기르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입정 공부를 많이 해서 진공으로 체를 삼고 묘유로 용을 삼는 단련이 필요하다. 그래서 한마음을 낼 때 ‘있다 없다’ 또는 ‘잘했다 잘못했다’하는 마음을 초월할 줄 알아야 한다.
육조 혜능스님이 열반을 앞두고 있을 때 한 제자가 여쭈었다. “스님, 돌아가시면 어디로 가십니까?” 그러자 육조 스님이 “엽락귀근(葉落歸根)이다”라고 대답하셨다. ‘엽락귀근’은 낙엽이 지면 뿌리로 돌아간다는 말이다. 살아가면서 이런저런 생각을 하는 것들이 모두 다 낙엽이다. 그런데 이런저런 생각을 다 지우고 나면 어디로 돌아갑니까? 법문에 ‘대경지지(大境知止)하라’는 말이 있다. 경계를 당해서는 잠깐 멈추라는 말이다. 옛날 어른들이 선을 할 때는 멈추고 또 멈추라는 말을 많이 했다. 염불 한 번에 좁쌀만큼 정력이 쌓인다는 믿음으로 멈추고 멈추는 공부를 해야 한다. 그것을 늘 유념해야 생사대사를 해결할 힘을 얻을 수가 있다.
중요한 것은 죽을 때 어떤 심경으로 가느냐 하는 것이다. 쉼 없이 입정 공부도 하고 기도 정진도 하면서 옆 사람도 모르게 귀신도 모르게 그 일을 하는 사람이 철든 사람이다. 진공으로 체를 삼고 묘유로 용을 삼는 공부를 열심히 해야 생사대사를 문턱 넘듯이 쉽게 넘어갈 수 있다. 그래야 자기의 업을 초월할 수 있고 정업이 돌아올 때 감사한 마음으로 받을 수가 있다. 어느 전생 철모를 때 지은 업이 어느 때 어느 곳에서 내 앞을 가로막을지 아무도 모른다. 부디 잘 챙겨서 생사거래에 자유하기를 바란다.
천업을 임으로 한다는 것은 내가 나쁜 전생 습관을 가지고 태어났다고 하더라도 현생에 공부 표준을 잘 정해서 좋은 습관을 길들여 나가고 자꾸 돌려서 욕심을 가라앉히면 가능하다. 그런데 밖에서 지은 업은 그 권한이 상대에게 있기 때문에 반드시 받게 되어 있다.
그래서 부처님께서도 정업은 난면이라고 하셨다. 줄여서 받고 미뤄서 받을 수는 있지만 아주 안 받을 수는 없다. 마음 비우기를 끊임없이 계속하면 부동심, 흔들리지 않는 마음이 생긴다. 금생에 커다란 공덕을 쌓았다고 하더라도 부동심이 준비가 되어있지 않으면 다음 생을 보장받기 어렵다. 이 부동심을 만들고 기르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입정 공부를 많이 해서 진공으로 체를 삼고 묘유로 용을 삼는 단련이 필요하다. 그래서 한마음을 낼 때 ‘있다 없다’ 또는 ‘잘했다 잘못했다’하는 마음을 초월할 줄 알아야 한다.
육조 혜능스님이 열반을 앞두고 있을 때 한 제자가 여쭈었다. “스님, 돌아가시면 어디로 가십니까?” 그러자 육조 스님이 “엽락귀근(葉落歸根)이다”라고 대답하셨다. ‘엽락귀근’은 낙엽이 지면 뿌리로 돌아간다는 말이다. 살아가면서 이런저런 생각을 하는 것들이 모두 다 낙엽이다. 그런데 이런저런 생각을 다 지우고 나면 어디로 돌아갑니까? 법문에 ‘대경지지(大境知止)하라’는 말이 있다. 경계를 당해서는 잠깐 멈추라는 말이다. 옛날 어른들이 선을 할 때는 멈추고 또 멈추라는 말을 많이 했다. 염불 한 번에 좁쌀만큼 정력이 쌓인다는 믿음으로 멈추고 멈추는 공부를 해야 한다. 그것을 늘 유념해야 생사대사를 해결할 힘을 얻을 수가 있다.
중요한 것은 죽을 때 어떤 심경으로 가느냐 하는 것이다. 쉼 없이 입정 공부도 하고 기도 정진도 하면서 옆 사람도 모르게 귀신도 모르게 그 일을 하는 사람이 철든 사람이다. 진공으로 체를 삼고 묘유로 용을 삼는 공부를 열심히 해야 생사대사를 문턱 넘듯이 쉽게 넘어갈 수 있다. 그래야 자기의 업을 초월할 수 있고 정업이 돌아올 때 감사한 마음으로 받을 수가 있다. 어느 전생 철모를 때 지은 업이 어느 때 어느 곳에서 내 앞을 가로막을지 아무도 모른다. 부디 잘 챙겨서 생사거래에 자유하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