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둑이 자경(自耕) 여부 판단 기준?
2024년 09월 08일(일) 19:35 가가
[농산물품질관리사 김대성 기자의 ‘농사만사’]
농업 환경 변화 맞춰 공익직불제 등 현실적으로 적용해야
농업 환경 변화 맞춰 공익직불제 등 현실적으로 적용해야
논둑은 논의 가장자리에 높고 길게 쌓아 올린 방죽을 말한다. 논과 논 사이에 약간 낮은 흙더미를 쌓아 두는 것인데 ‘논두렁’이라고도 불린다. 논물을 가두는 둑이자 농부의 이동로인 논둑은 이 외에도 농지 소유권의 경계선 기능도 한다. 이에 따라 논둑 보수나 제초작업의 기준선이기도 했다. 지금이야 기계가 좋아 소유에 상관하지 않고 제초작업에 나서지만, 모두가 힘들고 바빴던 예전에는 마음이 여의치 않아 내 구역 네 구역 나눠 작업하곤 했다. 맞는 말인지 잘 모르겠지만, 관례상 큰 고랑을 기준으로 왼쪽 논둑을 자신이 책임지는 방식으로 해결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고랑을 기준으로 왼쪽 둑은 자신이 책임지고, 오른쪽은 옆 소유자가 맡는 것이다.
최근에는 필요에 따라 객토나 성토 등이 성행하면서 논둑이 물을 가두는 등 기능적 차원보다는 소유권 구분을 위한 경계(선)로 의미가 주목받고 있다. 작업 완료 시 정확한 측량을 통해 논을 고르고 내 땅 네 땅을 구분해 표시하는 기준점으로 말이다. 이때 서로 합의하고 모든 일이 깔끔하게 정리되면 좋겠지만, 땅(자산)을 두고 다투는 문제라 종종 갈등을 빚기 마련이다.
최근 국립농산물품질관리원(이하 농관원)과 일부 농가와 벌인 논둑 논란도 이와 유사하다. 벼 농가 사이에 필요에 따라 논을 객토나 성토했는데, 논둑을 하지 않았거나 경계를 명확하게 하지 않은 것을 두고 농관원이 공익직불금 지급을 제한하면서 문제가 되고 있다.
농업경영체 등록을 따로 한 경우 소규모 논이라도 논둑을 헐어 합쳐 농사를 지으면 이행 준수사항 가운데 농지 형상과 기능 유지 위반이 되어 공익직불금 지급에 제한을 두는데, 이게 현실과 동떨어진다는 이유에서다.
공익직불제 17가지 준수사항 가운데 농지의 형상과 기능 유지는 ▲농작물을 재배하거나 휴경하는 경우는 1년 이상 경운 ▲이웃 농지 등과 구분이 가능하도록 경계를 설치하고 관리 ▲논 농업에 이용되는 농지는 농지 주변의 용수로·배수로를 유지·관리하도록 하고 있다. 이 중 ‘이웃 농지 등과 구분이 가능하도록 경계를 설치하고 관리’해야 한다는 항목은 논의 경우 경계를 논둑 여부로만 판단한다. 소규모 논을 합쳐 실제로 벼농사를 짓고, 두 논의 경계를 노끈 등으로 표시하거나 고랑을 파 구분해도 한쪽 논둑이라도 없으면 준수사항 위반이 된다.
논둑이 자경(自耕) 여부를 판단하는 기준이 되기 때문에 아무리 작은 논이라도 논둑이 모두 있어야 농지의 형상과 기능 유지가 된 것으로 본다는 것이 농관원 측의 설명이다. ‘자경’이란 사전적 의미로 ‘자기 스스로 논밭을 갈아 농사를 지음’을 뜻하니, 논둑을 헐어 논을 합치는 이유를 누군가는 직접 농사를 안 짓기 위해서라고 판단하는 게 틀린 건 아닐 것이다.
다만, 농관원의 이러한 입장은 농촌의 상황을 간과한 탁상행정인 것 같아 아쉽다는 생각이 든다. 요즘 벼농사 현장에서 엄밀한 의미의 ‘자경’을 하는 농민이 얼마나 되는지 반문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고령화와 노동력 부족이 심화하면서 모든 농작업을 직접 하는 농가는 드문 게 현실이고, 고령 농가나 취약농가의 논을 전업농이나 비교적 젊은 농가가 농작업을 맡아서 하는 게 일반화된 지 오래다. 현실은 논둑으로 자경 여부를 판단하기 어려운 상황이 아니라는 얘기다. 매년 벼농사가 이뤄져 누가 봐도 논의 형상과 기능이 그대로 유지되고 있는데도 한쪽 논둑이 없다는 이유로 준수사항 위반으로 판정하는 게 행정 편의를 위한 발상은 아닌지 되돌아봐야 한다. 농사짓는 논의 경계로 논둑과 함께 고랑도 인정한다면 논과 논 사이 구분도 가능하고, 농사 편의도 끌어올릴 수 있지 않을까.
비 오듯 흐르는 땀으로 목욕을 하며 제초작업을 했던 힘든 기억과 좁았지만 힘차게 달리던 추억이 교차하는 논둑이 논란의 중심에 있다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무엇이 농업인을 위한 올바른 정책인지를 먼저 생각해 볼 일이다.
/bigkim@kwangju.co.kr
공익직불제 17가지 준수사항 가운데 농지의 형상과 기능 유지는 ▲농작물을 재배하거나 휴경하는 경우는 1년 이상 경운 ▲이웃 농지 등과 구분이 가능하도록 경계를 설치하고 관리 ▲논 농업에 이용되는 농지는 농지 주변의 용수로·배수로를 유지·관리하도록 하고 있다. 이 중 ‘이웃 농지 등과 구분이 가능하도록 경계를 설치하고 관리’해야 한다는 항목은 논의 경우 경계를 논둑 여부로만 판단한다. 소규모 논을 합쳐 실제로 벼농사를 짓고, 두 논의 경계를 노끈 등으로 표시하거나 고랑을 파 구분해도 한쪽 논둑이라도 없으면 준수사항 위반이 된다.
논둑이 자경(自耕) 여부를 판단하는 기준이 되기 때문에 아무리 작은 논이라도 논둑이 모두 있어야 농지의 형상과 기능 유지가 된 것으로 본다는 것이 농관원 측의 설명이다. ‘자경’이란 사전적 의미로 ‘자기 스스로 논밭을 갈아 농사를 지음’을 뜻하니, 논둑을 헐어 논을 합치는 이유를 누군가는 직접 농사를 안 짓기 위해서라고 판단하는 게 틀린 건 아닐 것이다.
다만, 농관원의 이러한 입장은 농촌의 상황을 간과한 탁상행정인 것 같아 아쉽다는 생각이 든다. 요즘 벼농사 현장에서 엄밀한 의미의 ‘자경’을 하는 농민이 얼마나 되는지 반문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고령화와 노동력 부족이 심화하면서 모든 농작업을 직접 하는 농가는 드문 게 현실이고, 고령 농가나 취약농가의 논을 전업농이나 비교적 젊은 농가가 농작업을 맡아서 하는 게 일반화된 지 오래다. 현실은 논둑으로 자경 여부를 판단하기 어려운 상황이 아니라는 얘기다. 매년 벼농사가 이뤄져 누가 봐도 논의 형상과 기능이 그대로 유지되고 있는데도 한쪽 논둑이 없다는 이유로 준수사항 위반으로 판정하는 게 행정 편의를 위한 발상은 아닌지 되돌아봐야 한다. 농사짓는 논의 경계로 논둑과 함께 고랑도 인정한다면 논과 논 사이 구분도 가능하고, 농사 편의도 끌어올릴 수 있지 않을까.
비 오듯 흐르는 땀으로 목욕을 하며 제초작업을 했던 힘든 기억과 좁았지만 힘차게 달리던 추억이 교차하는 논둑이 논란의 중심에 있다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무엇이 농업인을 위한 올바른 정책인지를 먼저 생각해 볼 일이다.
/bigkim@kwangju.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