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시조는 시조의 아름다움을 가장 잘 간직한 시형”
2024년 09월 03일(화) 09:55
광주 출신 서연정 시조시인 단시조집 ‘투명하게 서글피’ 펴내

서연정 시인.

“작품 속에서 꽃들은 결국 사람으로 화합니다. 시조집을 관통하는 주제는 꽃의 아름다움과 그 아름다움을 지켜내는 강인한 의지이지요. 달리 말하면 꽃으로 은유한 사람의 강인한 삶을 그리고 싶었죠.”

최근 8번째 작품집 ‘투명하게 서글피’를 펴낸 서연정 시조시인(광주전남시조시인협회 회장). 이번 작품집은 단시조로만 이루어진 이색적인 시조집이다.

광주 출신의 서 시인은 1997년 시조단에 얼굴을 내민 이후 30년 가까이 창작을 하고 있다. “등단 20년을 넘기면서 단 시조집을 내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다”는 말에서 단시조에 대한 열망이 읽혔다. 시조집 7권을 낼 때까지 단시조집을 펴내지 못했는데 “모든 일에는 때가 있다고 지난 2023년 행운이 찾아와” 마침내 작품집을 발간하게 됐다.

서 시인은 1997년 중앙일보 지상시조백일장 연말장원을 비롯해 1998년 서울신문 신춘문예 시조 당선, 2023년 제43회 가람시조문학상 수상 등 창작 역량을 인정받았다.

사실 단시조는 시조의 원형이다. ‘단시조야말로 시조의 아름다움을 가장 잘 간직하고 있는 시형’이기 때문이다. 시인에 따르면 “현대 상황을 시조로 형상화하는 일이 간단하지가 않아 자꾸 2수 3수로 할 말이 늘어나곤 했다”고 말했다.

이번 단시조집에는 꽃을 모티브로 한 시들이 대부분이다. 고교 때 친구가 평소 ‘사람 일을 쓰지 말고 예쁜 꽃을 모티브로 쓰는 게 어떻겠냐’고 조언을 했는데 그때마다 그는 “사람도 한 떨기 꽃이고 한 줄기 나뭇가지니까” 사람 일을 소재로 한 작품에 천착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봤다. 그러다 몇 년 전부터 친구의 말대로 ‘꽃’을 쓰기 시작했다.

작품을 쓸 때 가장 신경을 쓰는 부분은 “정형 안에 의도와 느낌을 살리는 것”이라며 “늘어지려는 시의 흐름을 어떻게 형상화하고 이미지를 압축시키느냐가 관건”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어떤 독자는 시조를 딱딱한 네모 창틀이라고 생각하기도 한다. 그러나 시조에서는 한 글자 한 글자가 매우 중요하다. 3장 안에서 유기체로서 살아나야 하기 때문”이라고 부연했다.

말의 홍수 속에서 시와 시조 길이도 점차 늘어나는 시대에 압축미가 주는 효과는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꼭 필요한 어휘가 맞춤하게 들어간 작품이 주는 단안한 묘미는 시조의 중요한 미덕이다.

“동어반복은 효과를 높이기보다 언어를 낭비하고 혹사한다는 느낌을 줍니다. 그에 비해 시조는 언어를 조심스럽게 가꾸고 팽팽하게 하는 정갈한 맛을 선사하지요.”

그는 작품을 쓰기 위해 직접 발품을 판다. “‘광주’를 소재로 쓴 시조가 100편이 넘는데” 그만큼 곳곳을 발로 찾아다녔다. 광주문화관광탐험대, 무돌향토문화연구회, 테마문화산책-미로, 광산문화원 향토사연구위원회 활동 등 다양한 활동을 10여 년 넘게 했다.

“사실(史實, 事實)이 있다면 시간 속에 묻힌 그 사실 속 인물과 장소를 찾아야만 실마리라도 잡을 수 있다”는 생각에서 부지런히 발품을 팔았다. 책상에 앉아 짓는 작품은 재미도 별로 없고 성취의 환희도 없다.

오늘의 중견 시조시인으로 도약하기까지 그는 지역의 시인들과 동인활동을 해왔다. ‘금초문학동인회’, ‘골드클럽’, ‘우리시동인’에서 합평회 중심으로 창작 공부를 했는데 모든 과정이 성장의 ‘대장간’이었다. “당시 제가 가진 쇠붙이들이 그들과 함께하며 ‘낫’으로 ‘호미’로 ‘삽’으로 만들어졌다”는 것이다.

“올해 ‘골드클럽’이 시와 시조를 쓰고 토론하는 합평회 모임을 다시 시작했습니다. ‘그래그래동시조’라는 동시조 공부 모임도 새로 만들었구요. 공부 모임을 다시 시작하니 ‘등잔에 석유를 가득 부어 놓고 밤을 기다리는 듯’ 매우 즐겁습니다.”

향후 계획은 광주전남시조시인협회 회장 직을 원만하게 마무리하는 것이 일순위다. 또한 올해는 ‘광주·전남시조문학사’를 발간하는 데 역량을 집중할 생각이다. 광주와 전남(출향 시인 포함) 출신이거나 타지에서 출생했더라도 우리 지역에서 시조 활동을 하는 시인들의 활동을 조명해 지역 시조문학사를 갈무리할 계획이다.

“저에게 시조는 인생을 성찰하는 여행이자 세상을 향해 열린 창입니다. 시조를 매개로 시대와 사람, 공간을 발견하고, 해석하는 것이지요. 그 말의 울림이 멀리 가는 종소리처럼 공명을 불러일으켰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한편 서 시인은 오늘의시조시인회의 젊은시조시인상, 국제PEN광주 올해의 작품상, 광주시문화예술상문학부문 정소파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지금까지 ‘먼길’, ‘문과 벽의 시간들’, ‘무엇이 들어 있을까’, ‘동행’ 등을 펴냈다.

/박성천 기자 skypark@kwangj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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