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유공자 서훈은 그 어떤 것보다도 값진 훈장”
2024년 09월 01일(일) 19:05 가가
독립유공자 1000명 발굴 ‘재야사학자’ 정재상 경남독립운동연구소장
올 광복절 독립유공 대통령 표창 장성 출신 김양순 선생 서훈 신청
“독립 위해 헌신한 분들 명예 살려야…정신·업적 후세에 이어지길”
올 광복절 독립유공 대통령 표창 장성 출신 김양순 선생 서훈 신청
“독립 위해 헌신한 분들 명예 살려야…정신·업적 후세에 이어지길”
지난 79주년 광복절, 장성 출신 독립운동가 고 김양순 선생이 독립유공 대통령표창을 받았다. 1919년 3월 10일 당시 광주수피아여학교 학생이던 김양순 선생(당시 17세)은 광주 3·1만세운동에 가담했다. 김 선생은 광주 부동교(광주 동구 불로동과 남구 사동을 잇는 다리) 아래에 모인 사람들에게 태극기를 나눠줬고, 1000여 명의 시위 군중과 독립 만세를 하며 시장 안을 행진하다 일본 헌병과 경찰에게 붙잡혀 징역 4월을 받아 옥고를 치렀다.
그가 광복 79주년만에 독립유공자로 인정받은 데에는 재야사학자 정재상(58·경남 하동) 경남독립운동연구소장의 노력이 있어 가능했다. 정 소장은 지난 2009년 국가기록원에서 자료를 발굴해 2017년 서훈을 신청했다. 그는 후손을 수소문하고 추가 독립운동 기록물을 찾는데 힘썼다.
“서훈을 신청한다고 해서 바로 신원조회가 되지 않아요. 후손 찾기도 힘들고 옥고 치른 사실은 확실하지만 3·1운동 후 친일 행적, 북한정부수립에 기여 등 독립운동 이후 행적도 흠결이 없어야 합니다. 그래서 독립유공자 서훈을 받는 것은 그 어떤 것보다도 값진 훈장입니다. 가담을 했다는 사실만으로도 국가와 민족을 위해 헌신하신 분이기 때문에 훈격을 떠나 독립유공자로 받아들여져야하죠.”
정 소장은 30년 넘는 시간을 사재를 털어 독립운동가를 발굴하는 데 썼다. 그는 지금까지 국내외 독립운동가 1000여 명을 발굴했으며 그 중 정부 서훈을 받은 영·호남 지역 독립운동가는 250여 명에 달한다.
하동신문 기자로 독립운동을 취재하던 그는 공적을 인정 받지 못한 분들의 명예를 살리는 게 더 중요하다고 생각했고, 1997년 경남독립운동연구소를 세운 후 독립운동가의 삶을 밝혀내고 있다. 정 소장은 대학 도서관, 법원, 문서고, 옛날 신문을 샅샅이 찾으며 독립운동가의 공적서를 만들고 국가보훈처 등에 제출해 공적을 인정받도록 했다.
지금까지 자비로 연구를 진행하는 그는 순수한 마음으로 시작했다며 “사명감”을 강조했다.
“누군가는 꼭 해야 하는 일인데, 그저 제가 하는 것일뿐이죠. 한 사람 한 사람을 찾아 공적을 인정받고 세상에 알림으로써 우리 후세들이 이들의 정신을 이어받고, 우리가 어떻게 이 세상을 살아가야하는지 생각해볼 수 있는 계기가 됩니다.”
연구 초기 일본어, 한문 등으로 기록된 자료를 해석하는 데 어려움이 많았지만, 연구소 고문의 도움과 치열한 공부 끝에 연구를 지속할 수 있었다. 2000년 항일운동 임봉구 의병장을 비롯해 7명에 대해 첫 독립유공 포상을 받았다. 담양 출신 고광순 의병장이 하동 등 경남까지 진출해 의병 활동했다는 사실을 알아냈고, 2008년에는 지리산 항일 투사 기념탑을 건립, 335명의 독립 운동가를 지역별로 나눠 새겼다.
정 소장이 서훈을 신청한 독립운동가는 여전히 많다.
“독립운동가 후손분들이 제 두 손을 꼭 잡고 감사하다고 말씀하실 때 정말 뿌듯합니다. 제가 바른 길을 가고 있구나 자부심도 느끼죠. 독립유공자와 후손들이 경제적인 어려움을 겪고 계시는데, 조국의 독립을 위해 헌신한 분들의 공적을 기리기 위해 국가가 잊지 말고 도와야합니다.”
/양재희 기자 heestory@kwangju.co.kr
하동신문 기자로 독립운동을 취재하던 그는 공적을 인정 받지 못한 분들의 명예를 살리는 게 더 중요하다고 생각했고, 1997년 경남독립운동연구소를 세운 후 독립운동가의 삶을 밝혀내고 있다. 정 소장은 대학 도서관, 법원, 문서고, 옛날 신문을 샅샅이 찾으며 독립운동가의 공적서를 만들고 국가보훈처 등에 제출해 공적을 인정받도록 했다.
지금까지 자비로 연구를 진행하는 그는 순수한 마음으로 시작했다며 “사명감”을 강조했다.
“누군가는 꼭 해야 하는 일인데, 그저 제가 하는 것일뿐이죠. 한 사람 한 사람을 찾아 공적을 인정받고 세상에 알림으로써 우리 후세들이 이들의 정신을 이어받고, 우리가 어떻게 이 세상을 살아가야하는지 생각해볼 수 있는 계기가 됩니다.”
연구 초기 일본어, 한문 등으로 기록된 자료를 해석하는 데 어려움이 많았지만, 연구소 고문의 도움과 치열한 공부 끝에 연구를 지속할 수 있었다. 2000년 항일운동 임봉구 의병장을 비롯해 7명에 대해 첫 독립유공 포상을 받았다. 담양 출신 고광순 의병장이 하동 등 경남까지 진출해 의병 활동했다는 사실을 알아냈고, 2008년에는 지리산 항일 투사 기념탑을 건립, 335명의 독립 운동가를 지역별로 나눠 새겼다.
정 소장이 서훈을 신청한 독립운동가는 여전히 많다.
“독립운동가 후손분들이 제 두 손을 꼭 잡고 감사하다고 말씀하실 때 정말 뿌듯합니다. 제가 바른 길을 가고 있구나 자부심도 느끼죠. 독립유공자와 후손들이 경제적인 어려움을 겪고 계시는데, 조국의 독립을 위해 헌신한 분들의 공적을 기리기 위해 국가가 잊지 말고 도와야합니다.”
/양재희 기자 heestory@kwangju.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