탐욕을 이기는 용기, 나눔! - 황성호 신부, 광주가톨릭 사회복지회 부국장
2024년 08월 08일(목) 21:30
보면 볼수록 창피하고, ‘왜 저렇게까지 하는 것일까?’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염치가 없다. 지도자 또는 책임자를 자처하는 자들의 모습에서 왜 그런 창피함은 우리들의 몫이고, 염치 없는 행태에 몰상식이라는 단어까지 떠올려야 하는지 모르겠다. 정의와 합법적인 것은 전혀 상관하지 않고 말과 행동이 불의하며 편파적이고 이기적이다. 사회의 지도자, 책임자가 갖춰야 할 자세는 정의롭고 합법적이며 객관적이어야 한다. 왜냐하면 책임자와 지도자는 그 사회의 중요한 것을 결정하고 방향성을 제시해 모두를 위한 삶과 안정을 유지하는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의 관심과 선택은 중요하다. 창피함, 염치 없음, 몰상식의 모습으로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고 폭력을 행사하는 이들에게 우리의 관심과 선택은 후안무치한 이들을 견제하는 최고의 방법이다. 혹자는 “세상에 악이 만연되었다 하더라도, 대부분의 선한 사람들의 시선과 목소리가 악을 이길 수 있다”고 말했다. 불의와 편법을 당당하게 자행하거나, 불법을 저지르면서도 어떤 양심의 가책도 없이 오만방자한 이들에게 민의의 눈과 소리는 훌륭한 회초리 역할을 한다. 그런데 지도자, 책임자라고 일컬어지는 이들에게서 어떤 책임감도 도덕성과 공공성 그리고 돌봄과 희생의 정신을 찾을 수 없다는 것이 놀랍고 당혹스럽다.

성경, 특히 복음서에서는 탐욕, 곧 소유하려는 욕망을 경계하라는 말씀이 자주 등장한다. 루카 복음 12장 13절에서 21절의 말씀인데, 어떤 이가 예수께 유산에 관한 법률적인 문제를 들먹이며 해결해달라 청하는 부분이다. 예수는 “모든 탐욕을 경계하여라”라고 말씀하시면서 ‘어리석은 부자의 비유’를 들려주신다. 우리가 쉽게 망각해 어리석음에 빠질 수 있는 재화의 유혹, 곧 돈을 좇으려는 마음에 경종을 울리는 비유다. ‘어리석은 부자의 비유’에서 부자가 행복의 조건을 어디에 두었는지 명확하게 알 수 있다. 많은 소출을 거두었고 여러 해 동안 아무 걱정 없이 쌓아둘 수 있어 안전하다고 느꼈고, 여기서 어리석은 부자는 행복을 느꼈다. 자기 자신을 위한 부의 축적이 행복의 절대적인 가치인지 의문이다. 복음은 필요한 재화에 대한 현실을 부정하라는 것이 아니라, 참된 가치를 두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를 가르치고 있다. 돈의 노예! 권력의 노예! 명예의 노예가 되지 않고, 정의롭고 돌볼 줄 알고 희생할 줄 알아 더불어 살아가는 인간의 참된 가치를 가르치는 것이다. 참된 행복의 길을 가르치는 것이다.

수전노! 탐욕의 노예! 가진 것을 빼앗기지 않기 위해 재화를 품고 있으면서 끊임없이 돈을 세는 모습이 연상된다. 그러다 더 소유하려는 욕심이 생겨 탐욕이라는 늪에 빠져 헤어나오지 못하게 되는데, 자신을 편안하고 안전하게 해주는 것을 지키기 위해 당연히 정의롭지 못한 방법을 선택하게 된다. 결국에는 방해되는 것이 사람이든 무엇이든 간에 폭력으로 파괴해 버리고 만다. 왜냐하면 폭력에는 두려움이 가득 차 있다는 것을 표현하는 또 다른 부정적인 행동이기 때문이다. 정의로운 사회를 이루는 공동선과 연대성 그리고 상식까지도 받아들이지 않겠다는 우월적인 행동이기 때문이다. 쉽게 말해 두려움이 폭력을 만들고 타인과 비교하여 갖는 우월의식이 차별적 사회를 만들어내는 것이다. 재화의 유혹에 고스란히 자신을 내동댕이쳐서 자신의 존재를 부정하고, 자신을 잃어버린 그 스스로가 자연스럽게 습관화된 악습을 통해 양심은 물론 통용되는 상식까지도 무참히 짓밟아버린 두려움의 결과이다.

이 두려움을 감추기 위한 탐욕은 멈출 수 없는 악한 자아로 착각하여 살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세상을 살아가는 대부분의 선한 사람들이 분노하고, 창피해하고, 몰상식이라는 단어까지 내뱉는 것이다. 그렇다면 잔인하고 어리석은 이 영혼은 치유될 수 없는지 의문이 든다. 악습이 아니라 꾸준한 선을 통해 몸에 자리 잡은 덕을 살아내기가 어렵다는 말인가? 폭력의 근원인 두려움까지 만들어버리는 탐욕을 이기는 방법은 있다. 그것은 ‘나눔’이다. 나눔을 실천하는 용기는 복음의 진리인 비움으로써 채워진다는 참된 기쁨과 행복을 경험하게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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