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하무인하는 사회- 중현 광주 증심사 주지
2024년 06월 28일(금) 06:00
적당히 숲이 우거진 산책길 어디쯤이었을 것이다. 단정한 옷차림의 젊은 여성이 가방에서 물티슈 같은 것을 꺼내서 잠시 손을 닦는 듯하다가, 눈길 한번 주지도 않고 땅바닥에 휙 버려 버린다. 그리고는 아무렇지도 않게 가던 길을 가버린다. 바로 내 앞에서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다. 그녀가 떠나간 자리에는 초록의 잡초가 무성한 위에 순백의 물티슈만 덩그러니 놓여 있다. 자연과 인위의 색깔 대비가 너무도 선명한 탓에 눈을 뗄 수 없다. 그제사 지금 저 사람이 쓰레기를 버렸다는 생각이 뇌리를 강타한다. 이어 떠오른 말은 안하무인(眼下無人). ‘어떻게 남의 시선은 눈꼽만큼도 의식하지 않고 쓰레기를 버릴 수 있을까?’

악성 민원도 갈수록 늘어나고 있다. 진상 민원인은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무조건 자기 요구를 들어달라고 우긴다. 말이 통하지 않으면 온갖 험한 말과 심지어 폭력까지 동원한다. 이들은 마치 주변에 아무도 없는 듯 행동한다. 세상이 원래 자신만을 위해서 존재하는 양 행동한다.

안하무인을 검색하니 연관검색어로 ‘이강인’이 뜬다. 정치권으로 번져 버린 그의 인성 논란이 한동안 꽤나 세간에 오르내렸다. 당시, 홍준표 시장의 노골적인 인신공격에 이준석 대표는 “누구도 홍 시장에게 ‘이강인 인성 디렉터’를 맡긴 적이 없다. ‘성숙’은 각자 알아서 하면 되는 일”이라고 되받아 쳤다. 이준석 대표의 ‘성숙’(成熟)은 각자의 몫이라는 말은 제법 의미심장하다. ‘성숙’은 과일 같은 생명체가 충분히 자란 것을 이르는 말로, 사람이 나이를 먹어서 어른스럽게 됨을 이르는 말이다. 그러니까 이준석 대표가 생각하는 안하무인의 이유는 아직 사람이 어른스럽지 못한 탓이다.

한편, 안하무인과 짝을 이루는 말로 후안무치(厚顔無恥)가 있다. 안하무인이 겉으로 드러나는 모습을 묘사했다면 후안무치는 안하무인의 원인을 따지는 말이다. 안하무인한 행동이 나오는 이유는 얼굴이 두꺼워서 부끄러움이 없기 때문이라고 옛사람들은 생각한 모양이다.

그런데 과연 안하무인이 개인에게 국한되는 문제일까? 흔히 인간을 두고 사회적 동물이라고 한다. 그래서 집단에 소속되기를 좋아하지만 동시에 자신만의 고유한 영역을 꿈꾸는 독립성 또한 가지고 있다. 하지만 독립성은 지나친 무리 지음이 초래할 수도 있는 생존의 위협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한 보완책일 수도 있다.

어쨌든 호모사피엔스의 발달은 무리의 대형화, 분업화, 즉 무리 짓기의 시스템화로 직결된다. 그런데 무리가 비대해지고 시스템화될수록 사람들 간의 직접적인 접촉은 줄어든다. 현대 사회는 과거 원시사회에 비하면 돈, 문서, 상징, 언어 등의 매개체를 사이에 두고 무리를 짓는 경향이 극도로 강하다.

극도로 시스템화된 무리는 더 이상 무리가 아니다. 우리는 이를 사회라고 부른다. 현대의 인간에게 사회는 마치 물고기에게 물과도 같은 존재가 되어 버렸다. 현대인에게 사회는 공기와도 같다. 더 이상 현대인은 무인도의 로빈슨 크루소처럼 철저하게 나홀로 살 수 없다. 그럼에도 많은 현대인들은 사회 속에서 살면서도 홀로 살고 있다는 착각 속에 빠져 있다. 현대인들의 뇌리 속에 각각의 개인은 마치 남해 바다에 별처럼 흩뿌려진 섬들처럼 아무런 맥락도 없이 제각각 어지럽게 흩어져 있다.

역설적이게도 사회가 발달할수록 인간은 사회의 필요성을 망각한다. 그래서 어떤 이는 홀로 있다는 생각에 괴로워하고, 또 어떤 이는 이 세상은 당연히 자신만을 위해 존재한다고 생각하는 안하무인형 인간이 되어버린다. 외로움에 몸부림치는 사람이나, 후안무치하여 안하무인한 인간이나 한결같이 사회를 스스로 체감하지 못하는 일종의 사회불감증 환자들이다.

필시 누군가의 착하고 건실한 딸일 것이 분명한 그 여성이나, 인성 논란에 휘말린 이강인이나 정도의 차이는 있을 것이나 동일한 증상을 띄고 있다. 사회불감증후군은 극도로 시스템화된 현대사회에 처한 현대인이 앓고 있는 심각한 질병이다. 이것은 사회적 범주의 문제이다. 개인이 바뀌어서 개선될 수 있는 영역은 제한적일 수 밖에 없다.

지나친 시스템화의 끝은 파국이다. 사회를 이해하고 체감하는 것은 자가 치유를 위한 현대인의 필수 덕목이다. 어줍잖은 힐링으로 개인의 성 속에 안주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이 사회를 직시하는 것이다.
오피니언더보기

기사 목록

광주일보 PC버전
검색 입력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