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은 김치 같은 것- 중현 광주 증심사 주지
2023년 01월 27일(금) 00:15
김치의 주된 식재료는 배추지만, 배추 먹는 맛으로 김치를 먹는 사람은 드물 것이다. 김치는 배추를 제외한 여러 가지 부재료와 다양한 양념 그리고 발효와 숙성 등이 어우러져 탄생되는 요리이다. 주 재료인 배추 본연의 맛을 살린 요리가 아니다 보니 정작 배추 없는 총각김치나 열무김치도 등장한다.

사랑도 마찬가지다. 사랑이라는 요리의 주 재료는 사람이다. 사랑은 사람과 사람 간의 소통에서 탄생되는 매우 복합적인 감정이다. 김치처럼 사랑 역시 식재료 본연의 맛을 살린 담백한 요리가 아니다. 사람들은 사랑이라는 요리가 풍기는 강렬한 맛에 취하여, 어떤 식재료와 양념이 들어가는지, 레시피는 어떤지 찬찬히 살펴보지 못한다. 많은 사랑이 오래 이어지지 못하는 주된 이유도 여기에 있다.

사랑은 소통과 공감에 기반하고 있다. 이 사실을 망각한다면 사랑이 만들어내는 여러 감정과 사랑이 촉발시키는 욕망들에 마음을 뺏기기 쉽다. 그 결과, 주 재료인 사람은 사라지고 감정과 욕망만 남아 일방적으로 사랑을 주거나 아니면 받으려고만 하는 사랑도 흔히 볼 수 있다. 한마디로 병든 사랑이다.

그러면 ‘사랑’이라는 요리의 맛은 어떨까? 지역마다 집집마다 김치의 맛이 다르지만, 김치 특유의 맛은 고춧가루를 기본적인 베이스로 하는 매운 맛이다. 매운 맛이 김치의 특징이기는 하나 김치에 매운 맛만 있는 건 아닐 뿐더러, 고춧가루만으로 김치 특유의 매운 맛을 낼 수도 없다. 배추와 고춧가루가 없다면 김치라고 할 수 없지만, 배추와 고춧가루만 있다고 해서 무턱대고 김치라고 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배추와 고춧가루가 다른 여러 가지 양념들과 잘 어우러져야 김치 본연의 맛이 난다.

사랑도 마찬가지이다. ‘사랑’이라는 요리의 맛 역시 사람마다 다르다. 하지만 김치 하면 떠오르는 대표적인 맛이 있듯, 사랑이라는 요리를 대표하는 맛은 ‘집착’이다. 순수한 사랑을 굳이 말로 하자면 무주상보시(無住相布施), 그러니까 조건 없는 자비심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것 만으로는 그 맛이 너무나 밋밋하기 때문에 즐거움·행복·애틋함·쓰라림 같은 감정들이 추가되고, 소유욕이나 권력욕 같은 강렬한 욕망이 부지불식간에 스며든다. 이렇게 해서 사랑 특유의 맛이 탄생한다. 그러니까 집착은 집착이되 단순한 집착이 아니라, 여러 감정과 욕망이 한데 어우러지며 몇 단계 업그레이드된 집착이 바로 사랑인 것이다. 그래서 ‘사랑 본연의 집착’이라고 말하지 않고, 업그레이드된 집착 그 자체를 사랑이라고 부른다.

한편, 배추가 김치로 탈바꿈하려면 가장 중요한 과정을 반드시 거쳐야 한다. 배추에 고춧가루만 묻혀서는 결코 김치가 될 수 없다. 배추를 소금에 절이는 과정이 반드시 필요하다. 김치라는 요리는 여러 가지 식재료, 다양한 양념, 정교한 레시피 그리고 무엇보다 충분한 시간을 필요로 한다. 이 모든 것이 갖추어져야 비로소 김치가 탄생된다. 사랑도 마찬가지다 사랑 역시 상대에 대한 관심, 호기심 혹은 성욕만 있다고 사랑으로 발전하지 않는다. 그 누구도 하룻밤 사랑을 사랑이라고 하지 않는다. 성적 욕망, 관심, 호기심 같은 심리가 사랑으로 발전하려면 서로에 대한 충분한 친밀감이 형성되어야 한다.

친밀감은 본능적인 거부감이 작동하는 지극히 사적인 영역 안에 타인이 들어와도 불편하지 않은 감정이다. 그래서 친밀감은 거의 항상 시간을 필요로 한다. 동시에 이 영역은 지극히 사적인 공간으로 이 영역 안에 존재하는 것은 나만의 것으로 간주된다. 그런 까닭에 친밀감은 자연스럽게 소유욕으로 변질된다. 친밀감은 흔히 정(情)이라고도 하는데, 정이 깊어지면 집착이 되기 마련이다. 사랑이 매우 복합적인 집착인 이유도 여기에 있다.

어쨌든 사랑을 명확하게 정의하기는 매우 힘들다. 자칫 잘못하면 사랑에 스며들어 있는 복합적이고 모호하고 미묘한 부분들을 놓치기 십상이다. 그러니 비유를 들어 사랑을 설명할 수밖에 없다. 그래도 사랑의 이런 특징을 알고 있다면, 내 맘대로 되지 않는 사랑 때문에 가슴 아파할 일은 덜 할 것이다.

묵은지는 아주 오랜 시간 숙성되어서 더 이상 양념이나 부재료가 필요 없다. 많고도 다양한 양념과 부재료들은 그저 흔적으로만 묵은지 속에 스며들어 있다. 오로지 삭을 대로 삭은 배추만으로 깊은 맛을 낸다. 김치든 사랑이든 깊은 맛은 세월이 만드는 법이다. 사랑을 하려면 묵은지 같은 사랑을 하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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