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려야 할 것- 황성호 신부, 광주가톨릭 사회복지회 부국장
2022년 12월 16일(금) 00:45 가가
성탄을 기다리며, 2022년 올 한 해를 어떻게 보냈는지 반성해 본다. 가톨릭교회는 성탄을 기다리며 대림 시기를 보내고 있는데, 대림 시기는 기쁨과 희망이신 주님의 탄생을 기다리며 몸과 마음으로 준비하는 시간이다. 또한 한 해를 마무리하면서 가톨릭 신자로서 이웃을 얼마나 사랑했고 배려했고 순수한 마음으로 희생하고 나눔을 실천했는지 자신의 삶을 반성하는 시기이다.
그래서 이 시기에 모든 가톨릭 신자들은 고해성사에 참여하여 자신의 인간적인 나약함을 통해 저지른 잘못이나 죄를 고백한다. 고해성사는 성탄을 준비하고 한 해를 마무리하기 위한 하느님 백성의 합당한 준비라고 할 수 있다. 가톨릭 신자들이 매일 맞이하는 날들이 새로운 날이며 희망의 날로 살아가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우리의 마음은 지난 과거의 삶을 반성 없이 그대로 살기보다 새로운 몸과 마음으로 살아야 한다고 소리치고 있다. 각자의 깊은 내면에서 강하게 원하고 있다. 그러나 변화가 쉽지 않다. 감각에 의존하며 물질의 풍요와 편안함이 주는 달콤함은 거부할 수 없는 엄청난 유혹이기 때문이다. 행복하기를 바라는데, 왜 이리도 행복한 삶을 살아가기가 힘든 것일까? 철저한 자기 자신의 변화와 참된 회개가 없기 때문이다. 행복하겠다고 다짐하면서도 행복을 추구하기보다 불행을 껴안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 우연히 읽게 된 한 문장이 있다. “버려야 할 것을 못 버리면 스스로 버리게 된다”는 글이다. 우리 몸은 감각적 기능을 통해 만족감을 채우려고 한다. 이 만족감이 채워지면 그것으로 끝나지 않고 더한 만족감을 계속 추구하려 한다. 그리고 또 채워지면 더한 것을 찾아 만족감을 가득 채우기를 바란다. 끝나지 않는 뫼비우스의 띠처럼, 만족감의 끝이 어디인지 모를 정도로 무리수를 느낄 때도 있지만 멈추지 못한다. 아마도 우리가 생명을 유지하는 동안 이 욕구는 끝나지 않을 것 같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루카 복음 12장 13절에서 21절의 ‘어리석은 부자’의 비유를 설명하면서, 정신 없이 돈을 추구하는 것이 “하늘나라에 있는 참된 보물에서 우리 마음을 앗아가며 종종 불안, 불행, 남용, 전쟁의 원천이 된다”라고 말씀하셨다. 그리고 “탐욕은 결코 만족할 줄 모른다”면서 “재물은 필요하지만 나눠야 한다. 탐욕을 위한 전쟁이 얼마나 많은가?”라며 나눔을 실천하면서 버리고 비우는 것의 중요성을 강조하셨다.
우리는 조건 없는 사랑을 실천하는 사람들, 나보다 먼저 다른 사람들을 배려하고 기다려 주는 사람들, 손해 볼 것을 분명히 알면서도 그것이 사람을 살리는 것이라면 언제든 포기하고 희생하는 사람들의 모습에서 감동한다. 자신의 것을 내어놓고, 자신의 소중한 시간을 이웃에게 기꺼이 내놓는 이들의 모습은 어리석어 보일지라도 감히 그렇게 말하지 못한다. 왜냐하면 비우고 낮추고 배려하고 희생하는 것이 서로를 위한 것임을 알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반대의 경우를 접할 때도 많다. 사랑에 조건을 달며 계산하는 사람들, 다른 사람보다는 내가 먼저라며 뒤도 돌아보지 않는 무관심한 사람들, 타인을 희생시키면서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려는 사람들의 모습을 통해 서로 망하는 것을 경험한다.
“삶의 가장 큰 걸림돌은 언제나 ‘나’ 자신이다”는 말이 떠오른다. 버려야 하는 것을 버리지 않기 때문에, 자신이 추구하는 것까지도 놓쳐 버리는 어리석음을 범하게 된다. 버려야 할 것을 버렸다면, 이제 몸과 마음은 가벼워지고 자신을 스스로 찾게 된다. 이것이 비움의 영성, 낮추면 높아진다는 역설, 죽음을 통한 부활의 신비가 여기에 해당한다. 그런데 끝없는 전쟁처럼, 소유해야 높아지고 천박한 자본주의와 물질주의로 경쟁 의식에 사로잡혀 점점 무자비하고 무관심한 존재가 되어가는 이유는 무엇일까?
기쁨의 성탄이 다가오고 있다. 올 2022년도 얼마 남지 않았다. 올 한 해 우리가 서로 얼마나 행복했고 기뻤는지 자신에게 질문을 던져 보자. 그리고 “버려야 할 것을 못 버리면 스스로 버리게 된다”는 어리석음을 다시는 반복하지 않도록 지금의 기회를 놓치지 않았으면 한다.
우리의 마음은 지난 과거의 삶을 반성 없이 그대로 살기보다 새로운 몸과 마음으로 살아야 한다고 소리치고 있다. 각자의 깊은 내면에서 강하게 원하고 있다. 그러나 변화가 쉽지 않다. 감각에 의존하며 물질의 풍요와 편안함이 주는 달콤함은 거부할 수 없는 엄청난 유혹이기 때문이다. 행복하기를 바라는데, 왜 이리도 행복한 삶을 살아가기가 힘든 것일까? 철저한 자기 자신의 변화와 참된 회개가 없기 때문이다. 행복하겠다고 다짐하면서도 행복을 추구하기보다 불행을 껴안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조건 없는 사랑을 실천하는 사람들, 나보다 먼저 다른 사람들을 배려하고 기다려 주는 사람들, 손해 볼 것을 분명히 알면서도 그것이 사람을 살리는 것이라면 언제든 포기하고 희생하는 사람들의 모습에서 감동한다. 자신의 것을 내어놓고, 자신의 소중한 시간을 이웃에게 기꺼이 내놓는 이들의 모습은 어리석어 보일지라도 감히 그렇게 말하지 못한다. 왜냐하면 비우고 낮추고 배려하고 희생하는 것이 서로를 위한 것임을 알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반대의 경우를 접할 때도 많다. 사랑에 조건을 달며 계산하는 사람들, 다른 사람보다는 내가 먼저라며 뒤도 돌아보지 않는 무관심한 사람들, 타인을 희생시키면서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려는 사람들의 모습을 통해 서로 망하는 것을 경험한다.
“삶의 가장 큰 걸림돌은 언제나 ‘나’ 자신이다”는 말이 떠오른다. 버려야 하는 것을 버리지 않기 때문에, 자신이 추구하는 것까지도 놓쳐 버리는 어리석음을 범하게 된다. 버려야 할 것을 버렸다면, 이제 몸과 마음은 가벼워지고 자신을 스스로 찾게 된다. 이것이 비움의 영성, 낮추면 높아진다는 역설, 죽음을 통한 부활의 신비가 여기에 해당한다. 그런데 끝없는 전쟁처럼, 소유해야 높아지고 천박한 자본주의와 물질주의로 경쟁 의식에 사로잡혀 점점 무자비하고 무관심한 존재가 되어가는 이유는 무엇일까?
기쁨의 성탄이 다가오고 있다. 올 2022년도 얼마 남지 않았다. 올 한 해 우리가 서로 얼마나 행복했고 기뻤는지 자신에게 질문을 던져 보자. 그리고 “버려야 할 것을 못 버리면 스스로 버리게 된다”는 어리석음을 다시는 반복하지 않도록 지금의 기회를 놓치지 않았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