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아오지 못한 이들- 중현 광주 증심사 주지
2022년 12월 02일(금) 00:30
11월 22일 부슬부슬 부슬비가 내리는 저녁, 172번째 ‘무등산 풍경소리’가 열렸다. 벌써 20년이 된 ‘무등산 풍경소리’의 이번 타이틀은 ‘돌아오지 못한 이들’.

누가, 어떻게, 왜 죽었는지도 제대로 밝혀지지 않은 죽음, 10·29 참사를 기리는 작은 음악회였다. 부슬부슬 내리는 비는 길고도 긴 가뭄을 해갈하기엔 턱없이 부족했다. 아무래도 하늘은 우리의 목마름을 걱정하는 척하기만 할 뿐, 해결해 주지는 않을 모양이었다. 대신 그것은 이태원의 원혼들이 토해 내는 한 맺힌 흐느낌 같았다.

얼마 전, 진도와 제주를 오가는 여객선이 새로 생겼다는 소식을 접했다. 한번 타보기로 진즉에 마음 먹었으나 바쁘다는 핑계로 차일피일 미루다가 마침내 타 볼 기회가 생겼다. 표를 예매할 때까지 팽목항에서 배를 탈거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못했다. 그러나 예매를 위해 들어간 컴퓨터 스크린 ‘팽목항’이라는 세 글자가 선명하게 찍혀있었다. 컴퓨터 화면은 내가 그 아이들을 오랫동안 잊고 살았다는 사실을 집요하게 깨우치고 있었다. ‘팽목항’이라는 글자를 보는 내내, 마음 한 구석이 몹시 불편했다. 그것은 외면하고 싶지만 어쩔 수 없이 직면해야만 하는 현실에 대한 불편함이었을 뿐, 무관심에 대한 반성은 아니었다.

그러나 배를 타기 위해 7년여 만에 다시 팽목항에 도착한 순간, 부끄러움이 차올라 그 어디에도 눈을 둘 수 없었다. 팽목항은 여전히 황량하고, 을씨년스럽고, 초라했다. 오히려 당시의 넘쳐나던 사람들과 가건물들이 사라진 팽목항은 휑한 느낌을 더했다. 터미널 같은 걸 짓는 공사 중이라 어수선함까지 더해진 그곳에 아주 초라하게 ‘세월호 기억관’이라는 팻말 하나가 덩그러니 서있었다. 팻말은 100여 미터 떨어진 허름하고 작은 컨테이너를 가리키고 있었다.

오후의 무심한 햇살이 반짝이는 바다, 길고도 기인 제방, 그리고 제방 끝에 홀로 서 있는 등대는 잔인할 정도로 7년 전 그대로다.

세월호의 아이들이 여전히 돌아오지 못한 지금, 또다시 158명의 외롭고 쓸쓸한 영혼이 차가운 구천을 떠돌고 있다. 심지어 우리는 그들이 누구인지 조차 알지 못한다. 인간이 사회를 이루며 사는 이유는 다른 데 있지 않다. 홀로 할 수 없는 것을 더불어 하기 위함이다. 사회 시스템은 개인의 삶을 보호하고, 개인은 사회 시스템을 유지하는 데 일정한 역할을 한다. 이것이 인간이 지금껏 지구상에서 꾸려온 삶의 방식이다. 일상적인 사회 시스템이 일상적으로 작동했다면 충분히 예방할 수 있었던 일이다. 모든 것이 세월호의 그 시간들로 되돌아가고 있다. 이제 갓 한 달이 지났는데도 언론에서 관련 기사를 찾으려면 한참 아래로 스크롤해야만 한다.

172번째 무등산 풍경소리를 여는 인사말에서 나는 이렇게 말했다.

“지금은 더 이상 추모할 시간이 아니다. 2012년, 2013년, 2014년의 시간들이 데쟈뷔처럼 반복되고 있다. 지금 우리는 깊은 사색과 성찰을 거쳐 새로운 전진을 해야 할 때이다. 함께 사는 세상에 대한 우리의 의무를 다할 시간이다.”

그러나 다음 날 새벽, 곰곰히 생각해 보니 전날의 발언은 지극히 잘못된 것이었다. 우리는 아직 그들을 충분히 추모하지 못했다. 애도하지도 못했다. 우리는 아직 그들을 제대로 보내지 못했다. 제대로 추모하지도 못했는데 벌써 잊혀지고 있다. 충분히 슬퍼하고 충분히 가슴 아파하는 것이 함께 사는 세상을 살아가는 최소한의 양심이다. 그 고통을 함께 아파하지 않고, 그 상실을 함께 슬퍼하지 않고, 어찌 같이할 수 있을까.

제대로 이별하지 못한 이들이 구천을 떠돌고 있다. 그날의 비는 그들의 흐느낌이었다. 하늘이 인간을 대신하여 그들의 마음을 헤아려 주었다. 하늘은 자신의 넓은 품을 내어, 그들의 통한을 따뜻하게 어루만지고 있었다.

50여 년 만의 가뭄보다 더 무서운 것이 지금 이 사회와 지금 이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들의 마음이다. 함께 아파하지 않는 마음, 이기적인 마음, 사람을 마치 돌멩이 나부랭이처럼 취급하는 마음, 나만 잘살면 그만이라는 마음, 무관심한 마음. 그들이 돌아오지 못하게 하는 우리들의 마음이다.

그날, 한 맺힌 영혼들이 차가운 빗방울 되어 콘크리트 바닥을 향해 수직으로 강하하였다. 돌아오지 못한 이들이 그렇게 산산이 부서지도록 내버려 둬서는 안 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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