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의 위대한 스캔들-제라르 드니조 지음, 유예진 옮김
2022년 08월 20일(토) 12:00
[박성천 기자가 추천하는 책]
정치인, 연예인들의 사건과 관련된 말 가운데 ‘스캔들’이라는 단어가 있다. 휘발적인 이 말은 부정적이며 음습한 분위기를 환기한다. 비단 유명인사들에게만 해당되는 것은 아니다. 일반인들 가운데서도 ‘누군가 스캔들에 휘말렸다’고 하면 대체로 부정한 일에 연루됐다는 것을 함의한다.

사전적 의미의 스캔들은 “매우 충격적이고 부도덕한 사건 또는 치욕적인 평판이나 소문”을 뜻한다. 한 번 스캔들에 휘말리면 그것의 역효과는 상상을 뛰어넘는다. 스캔들이 함의하는 낙인효과가 워낙 지대한 탓에 한동안 그것의 ‘올무’에서 벗어나는 것은 쉽지 않다.

사실 스캔들의 그리스어 어원을 보면 ‘함정’, ‘장애물’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다시 말해 스캔들은 죄를 짓게 만드는 무언가라는 것이다.

볼테르는 ‘철학사전’에서 스캔들을 “대체로 종교인들에게서 찾아볼 수 있는 심각하도록 파렴치한 행위”로 본다. 대중들은 당연히 스캔들을 부패 또는 타락의 명징한 증거로 상정한다.

예술, 그 가운데 미술에서도 스캔들의 방식은 스펙트럼이 넓다. 흔히 말하는 에로티시즘, 나체 등 미학적 기준을 제하더라도 말이다.

서양 미술의 운명을 바꾼 위대한 미술 스캔들을 다룬 책이 출간됐다. 파리고등예술교육원 교수인 제라르 드니조가 펴낸 ‘미술의 위대한 스캔들’은 스캔들을 야기한 그림 50점을 조명한다. 그동안 저자는 ‘예술의 대화’, ‘이해하기, 인식하기’ 등 예술 장르의 상호 작용에 관한 저서들을 출간한 바 있다.

에두아르 마네 작 ‘풀밭 위의 점심 식사’
스캔들의 방식 가운데 가장 자주 등장하는 것은 여성의 나체다. 마네의 ‘풀발 위의 점심 식사’(1863년)는 현대 회화의 문을 열었다고 평가되지만 당시 평단은 충격에 빠졌다.

“그녀들은 여신도, 요정도, 알레고리도 아니었으며, 고귀한 부르주아지의 눈에는 단지 ‘창녀’일 뿐이었다. 당시 마네에 적대적이었던 언론은 모델 여성의 부도덕함을 비난할 때 그것을 담고 있는 작품 자체의 하자를 동일 선상에 놓고 비난했다.”

일테면 이런 주장이었다. 부도덕한 대상에 대한 표현은 별수 없이 하자를 담고 있을 수밖에 없다는 논리다. 그것은 또한 그림을 그린 화가의 도덕적 흠결로까지 이어진다. 하지만 쿠베르의 ‘잠’과 르콩트 뒤 누이의 ‘백인 노예’에 이르러서는 그 같은 낭만주의에 토대를 둔 논리는 통용되지 않는다.

그러나 회화적 관점에서 보면 조형성의 남다른 감각을 엿볼 수 있다. “초목을 비추는 흔들리는 빛, 그것에 맞추어 가볍게 떨리는 나뭇잎, 수면의 점진적 변화, 인물들의 형상”과 같은 부분이 조형성을 매개로 새롭게 들여다볼 여지를 제공한다.

19세기는 스캐들의 세기라고 불릴 만큼 다양한 사건들이 있었다. 이전 세기에는 사실상 종교가 거의 스캔들과 연관돼 있었다. 저자는 마사초의 ‘낙원으로부터의 추방’, 카라바조의 ‘성모의 죽음’, 폰토르모의 ‘옮겨지는 그리스도’, 미켈란젤로의 ‘최후의 심판’ 등이 종교와 결부됐다고 본다.

그러나 20세기 이후로부터는 스캔들 개념이 달라진다. 이전까지는 작품을 공격한 이들에 의해 스캔들이 일어났다면 현대는 의도적으로 스캔들을 유발한다는 것이다. 언론은 대중성을 프리즘으로 스캔들을 확대재생산한다. 남성 소변기를 출품한 뒤샹의 ‘샘’, 이난 카지미르 말레비치의 ‘검은 십자가’는 기존의 관념을 전복시킨다.

저자는 15세기에서 20세기에 이르기까지 화가들은 내용에 있어 도덕성을, 형식적 측면에서는 기법을 ‘위배’했다고 본다. 물론 경우에 따라 둘 다 ‘위배’의 대상이 될 수도 있었다. 그러나 오노레 드 발자크의 “새로운 생각을 하는 사람들은 누구나 스캔들을 일으킨다”는 말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아마도 책의 전편에 흐르는 주제는 이렇게 요약될 것 같다. ‘예술 스캔들을 하나의 사회적 현상으로 바라봐야 한다.’ <미술문화·2만9000원>

/박성천 기자 skypark@kwangj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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