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성천 기자가 추천하는 책] 디자인 트랩 윤재영 지음
2022년 07월 16일(토) 10:00
속이고, 유혹하고, 중독시키는 디자인의 감춰진 이면
누구나 한번쯤 이런 경험이 있을 것이다. 특정 사이트에 가입을 했지만 생각해보니 아니다 싶어 탈퇴하려고 하는데 잘 되지 않을 때가 있다. 가입하기는 쉽지만 해지는 어려운 경우가 바로 그런 상황이다.

이 부분은 단순한 꼼수를 넘어선 고도의 전략과 연계돼 있다. 다시 말해 체계적으로 디자인화 된 전략의 일환이다. 해지 단계를 수십 단계로 만들어 아예 나갈 수 없게 하려는 의도다.

대체로 지금까지 디자인에서 다뤘던 심리학은 ‘착한 디자인’에 초점을 맞췄다. 그러나 그 이면을 들여다보면 어두운 면모 또한 적지 않다. 이른바 ‘다크패턴 디자인’이 그것이다. 이는 조작된 디자인, 속임수 설계, 다크 넛지 등과 연계된다.

윤재영 홍익대 시각디자인과 교수는 사람을 속이고 유혹하고 중독시키는 디자인 비밀이 있다고 한다. 즉 이런 것이다. ‘넷플릭스나 유튜브, 스포티파이 등 수많은 구독 서비스를 끊을 수 없는 이유는 스스로 선택한다는 착각에 빠져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사실은 디자인으로 위장한 미끼와 함정들로 구독자를 유혹하는 데 말이다.

윤 교수의 책 ‘디자인 트랩’은 일상에서 일어나는 교묘한 함정을 소개한다. 행동심리학을 토대로 한 원리와 설계 방식이 언급돼 있어 충분히 수긍이 간다. 윤 교수는 카네기멜론대학교에서 박사학위를 받았고 이후 실리콘밸리에서 UX 디자인 리서처로 근무하기도 했다. 현재는 사용자를 유인하고 현혹하는 UX디자인에 관한 연구를 수행하고 있으며 2019년과 2021년 한국디자인학회와 한국HCI학회에서 우수논문상을 수상했다.

이번 책은 끊임없이 알람을 보내고 중독을 보내는 이른바 ‘나쁜 디자인’의 실체를 다룬다. 모바일이나 구독경제, 메타버스와 같은 플랫폼이나 미래 산업에서 디자인의 역할은 중요하다. 아이러니하게도 디자인의 기능이 강화될수록 소비자의 행동을 교묘하게 유도하는 전략도 증대된다.

저자는 사용자를 기만하는 디자인을 일컬어 ‘디자인 트랩’이라고 규정한다. 고도로 설계된 마케팅 전략을 모르는 사용자는 고스란히 함정에 빠질 수밖에 없다.

영화 ‘미나리’ 중에는 이런 대사가 있다. “숨어 있는 것이 더 위험하고 무서운 거란다”는 말이 그것이다. 정교하고 기만적인 술책이 삶 곳곳에 도사리고 있다는 의미다.

“누군가 정성스럽게 남긴 제품 후기가 알고 보니 조작된 광고였고 시간 가는 줄 모르게 하는 SNS 서비스는 우리가 중독되도록 정교하게 설계된 것이었으며 아무 의심 없이 눌렀던 클릭이 생각지도 못한 함정이었을 수도 있다. 어떤 게 진실된 것이고 어떤 게 조작된 것일까.”

저자는 디자인 트랩의 원리를 ‘미끼와 매운 연기’로 설명한다. 일반적으로 온라인에서 경험할 수 있는 미끼는 다음과 같다. 서비스 가입 시 ‘한 달 무료 이벤트’와 같은 문구를 내세우지만 서비스 해지 땐 ‘반복적으로 혜택 보여주기’로 유인한다. 싫어할 만한 것으로 몰아 유인하는 전략인 매운 연기로는 ‘깨알 같은 글자의 긴 약관’(서비스 가입 시)과 ‘꼬아놓은 해지 경로’(서비스 해지 시)를 들 수 있다.

몰입형 UI에서는 액션 버튼을 엄지 영역에 배치해 효율성을 높안다. 녹색 영역이 엄지가 자연스럽게 닿는 부분이다. <김영사 제공>
저자는 ‘중독’에 빠뜨리는 디자인에 대해서도 설명한다. SNS 디자인은 많은 부분이 슬롯머신 디자인과 흡사하는 견해다. 이를 테면 흔히 언급되는 ‘간헐적 보상’ 외에도 쉽고 단순 반복되는 동작(무한 스크롤, 무한 스와이핑), 몰입형 UI, 숏폼 영상, 자동 플레이, 이탈 방지 디자인 등 다양한 디자인 요소들이 슬롯머신과 SNS에 공통적으로 구현되어 있다”고 강조한다.

책에는 편리함의 가면을 쓰고 있는 디자인 트랩의 양면성도 분석한다. 기능의 편리성은 긍정적이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부작용에 대해선 침묵한다는 논리다. 대표적인 예가 ‘무한 스크롤’이다. 기존의 번거로움을 획기적으로 개선한 반면 이용자에게는 필요 이상으로 많은 콘텐츠를 소비하도록 유도한다는 것이다. 보상과 개선에 소극적인 것은 서비스 측에 돌아가는 다다익선과 같은 이유 때문이다.

한편 김경일 인지심리학자는 “가장 지적이지만 가장 쉽게 휘둘리는 우리를 위한 절묘한 책”이라고 평한다. <김영사·1만6800원>

/박성천 기자 skypark@kwangj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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