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상 위 몽당 연필, 그 존재감을 알리다
2020년 07월 17일(금) 00:00
연필
헨리 페트로스키 지음·홍성림 옮김
지금 이 글에서 소개하는 책은 ‘팔로미노 블랙윙’ 푸른 빛깔 연필로 몇군데 줄을 치며 읽고 있다. ‘내 인생의 연필’로 꼽는 ‘블랙윙’ 시리즈는 소설가 존 스타인백이나 음악가 퀸시 존스가 소설과 악보를 그릴 때 썼던 연필로 알려져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부드럽게 밀리며 글씨가 씌어질 땐 기분이 좋아지고 다양한 시리즈와 색깔의 유혹은 수집욕도 자극한다. 자기에게 딱 맞는 필기구를 만나는 건 소소한 즐거움 중 하나다.

듀크대 토목공학과 석좌교수이자 역사학과 교수인 헨리 페트로스키가 펴낸 ‘연필’은 ‘가장 작고 사소한 도구지만 가장 넓은 세계를 만들어낸’이라는 부제가 달려 있는데, 600페이지가 넘는 분량의 저서를 통해 연필의 방대한 역사를 차근 차근 풀어나가는 저자는 ‘연필을 만든 세계는 작은 우주다’라고 선언한다. 저자는 세계적인 공학자로 ‘포크는 왜 네 칼퀴를 달게 되었나’, ‘디자인이 만든 세상’ 등 일상 속 사물들의 역사와 공학적 의미, 디자인의 유래를 치밀하게 추적한 책을 꾸준히 펴냈다.

‘연필의 조상을 찾아서’, ‘뾰족한 연필에 대한 갈망’ 등 모두 22장으로 구성된 책은 연필은 언제, 어디서, 어떻게 발명된 것인지, 누가 흑연을 연필심에 쓸 생각을 했는지, 왜 연필 자루는 원통형이 아닌 육각형인지 등 연필의 탄생에서부터 기술적 발전 과정, 연필을 둘러싼 산업적 배경, 연필의 발전과 궤를 같이 한 공학적 발전 과정까지 모든 것을 다룬 ‘연필백과사전’이다.

저자에 따르면 “연필은 뭔가를 끄적거리는 이들의 도구이자, 사색과 창작의 받침인 동시에 어린이들의 장난감이며 즉흥성과 미완성의 상징이다, 또 사상가나 기획자, 문서 기안자, 건축가, 공학자들이 매일 쓰는 도구”이기도 하다. 예술가들은 ‘나는 연필이다’라고 말한 프랑스 화가 툴루즈 로트렉처럼 오랜 세월 동안 연필을 그들 작업의 필수 도구로 아껴 일체감을 느끼기도 했고, 공학자와 건축가들은 연필을 통해 수많은 역사를 만들어냈다.

책에서는 필요에 의해 숱한 변화를 거친 연필의 제조법, 뾰족한 연필심에 대한 갈망으로 등장한 연필깎이 기계, 연필의 본질이라 할 수 있는 흑연에 대한 이야기 등 다채로운 이야기를 만날 수 있다. 또 ‘연필의 대명사’로 불리는 독일의 파버사와 슈테틀러사 등 유럽 대륙과 미국의 연필 업체의 치열한 경쟁이 흥미로운 이야기는 세계대전 등 역사적인 사건과 어우러지면서 흥미로운 문화사를 그려낸다.

또 ‘월든’의 작가로 유명한 헨리 데이비드 소로가 가업이었던 연필 제조에 나선 이야기나, 나무자루 연필에 도전한 샤프펜슬에 대한 이야기, 존 스타인백 등 연필 숭배자와 마니아들의 이야기도 눈길을 끈다.

아마도 이 책을 완독하고 나면 책상 위에 누구의 책상에든 한 두자루 쯤 놓여 있는 연필이 전혀 다른 존재로 다가올지도 모른다. 출간 후 절판됐던 책을 20여년전 번역을 맡았던 홍성림 번역가가 다시 재번역해 내놓았다.

<서해문집·2만2000원>

/김미은 기자 mekim@kwangj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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