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신으로 간신으로…그들은 어떻게 시대를 만들었나
2020년 06월 26일(금) 00:00 가가
[박성천 기자가 추천하는 책]
조선의 권력자들
조민기 지음
이하응
조선의 권력자들
조민기 지음
이하응
이이첨, 김자점, 송시열, 홍국영, 김조순, 이하응, 명성황후, 김홍집…. 이들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막강한 권력을 휘둘렀던 조선의 실력자들이다.
왕조시대 권력은 누가 권력을 쥐느냐에 따라 개인의 명운은 물론 국가의 흥망성쇠까지 좌우된다. 악용된 권력의 끝은 비참했다. 조선의 역사가 이를 증명했으며 현대의 정치사도 예외는 아니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바로 권력의 속성 때문이다. “사람을 타락시키는 마물이자 나라를 바로 세우는 정의”를 뜻하는 권력은 때로는 삶과 죽음을 가르고 백성의 평안과 고통을 결정했다.
왕 못지않은 때로는 왕보다도 막강한 권력을 휘두르며 시대의 흥망성쇠를 이끌었던 권력자를 다룬 책이 나왔다. ‘조선의 2인자들’, ‘조선 임금 잔혹사’의 저자인 조민기가 펴낸 ‘조선의 권력자들’이 그것. 역사를 매개로 다양한 칼럼을 기고하고 강연을 해온 저자는 이번 책에서 조선왕조의 절정과 몰락의 배후였던 권력자들을 불러낸다.
책에는 왕을 능멸하고 국정을 농단한 희대의 간신부터 망국의 모든 치욕을 떠안은 충신까지 다양한 권력자들이 등장한다. 이들의 삶은, 역사는 거울이라는 단순한 수사를 넘어 명징한 실체로 다가온다.
몰락한 훈구파 자손인 이이첨은 선왕의 영정을 지켜낸 일로 주목받는다. 그러나 그는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광해군의 불안한 심리를 이용했다. 뛰어난 현실감각과 처세술로 정적을 숙청하고 조정을 파탄으로 몰아갔다. 섬기던 임금을 혼군(昏君)으로 이끌었으며 광해군의 치적이 될 수 도 있었던 외교마저 제동을 걸었다.
인조반정에 동참해 공신의 반열에 오른 김자점의 평가는 ‘간신’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국정을 농단한 주범이었지만 왕실의 외척이기도 했다. 자신의 욕망을 감추지 않고 수단을 가리지 않고 권력을 쥐려 했었다. 결국 그는 역모죄에 연루돼 비참한 최후를 맞았다.
추앙하는 이들과 대립하는 이들이 극명하게 갈리는 이슈메이커는 단연 송시열이었다. 예법의 대가로 제자가 900여 명에 달할 만큼 학자로서는 철저한 삶을 살았다. 그러나 칭송만큼 비난도 적지 않았는데, 한때 친구이자 학문적 동지였던 이들과 적이 되기도 했다. 그럼에도 저자는 “정치가가 아닌 학자와 어른으로 송시열을 만난 백성들은 하나같이 그를 존경했다”고 부연한다.
외척으로 대변되는 세도정치 하면 떠오르는 이가 홍국영이다. 한때는 정조의 절대적인 지지로 권력을 누렸다. 그러나 홍봉한이 외척의 지위를 악용하다 몰락하는 것을 지켜봤음에도, 이를 반면교사로 삼지 않았다. 조정의 대소신료를 쥐락펴락하던 그는 왕의 신임을 잃고 젊은 나이에 유배지에서 생을 마감했다.
21세 젊은 나이에 과거에 급제했던 김조순은 세자의 스승이었고 딸이 왕비로 간택되기도 했다. 그러나 그는 왕의 장인이라는 자리에 기대 권력을 누리기보다 왕의 정치적 스승 역할을 맡았다. 문제는 그의 사후 막내아들 김좌근이 가문 수장이 되면서 안동 김씨가 세도정치의 정점에 올랐다는 점이다. 결국 세도 정치는 엄청난 폐단을 낳기에 이르렇고 나라는 위기에 빠졌다.
김홍집은 개화파 수장이라 할 수 있는 박규수의 제자다. 뛰어난 외교 능력을 겸비했으며 조선 최후의 영의정이자 최초의 총리대신이다. 당시 조선은 외세에 의해 풍비박산이 나고 굴욕적인 조약을 맺었다. ‘매국노’라는 지탄을 받으면서까지 나라를 위해 최선을 다했지만 일개 대신이 할 수 있는 일의 한계는 명확했다. 김홍집은 아관파천이 있던 날 “나는 조선의 총리대신이다. 다른 나라 군대의 도움을 받아 목숨을 부지하느니 차라리 조선 백성의 손에 죽는 것이 떳떳하다. 그것이 천명이다”라는 말을 남기고 최후를 맞았다.
책에 등장하는 이들을 오늘의 현실 정치에 대입해도 무방하다. 역사는 반복되고 정치는 생물이라고 하지 않던가. 저자는 “권력은 사람을 홀리고 미치게 한다. 하지만 정의가 바로 서는 것도 권력이 있어야 가능하다”며 “중요한 것은 권력을 제대로 쓸 수 있는 사람을 선택하는 지혜다”라고 강조한다.
<책비·1만9800원>
/박성천 기자 skypark@kwangju.co.kr
왕조시대 권력은 누가 권력을 쥐느냐에 따라 개인의 명운은 물론 국가의 흥망성쇠까지 좌우된다. 악용된 권력의 끝은 비참했다. 조선의 역사가 이를 증명했으며 현대의 정치사도 예외는 아니다.
왕 못지않은 때로는 왕보다도 막강한 권력을 휘두르며 시대의 흥망성쇠를 이끌었던 권력자를 다룬 책이 나왔다. ‘조선의 2인자들’, ‘조선 임금 잔혹사’의 저자인 조민기가 펴낸 ‘조선의 권력자들’이 그것. 역사를 매개로 다양한 칼럼을 기고하고 강연을 해온 저자는 이번 책에서 조선왕조의 절정과 몰락의 배후였던 권력자들을 불러낸다.
인조반정에 동참해 공신의 반열에 오른 김자점의 평가는 ‘간신’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국정을 농단한 주범이었지만 왕실의 외척이기도 했다. 자신의 욕망을 감추지 않고 수단을 가리지 않고 권력을 쥐려 했었다. 결국 그는 역모죄에 연루돼 비참한 최후를 맞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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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척으로 대변되는 세도정치 하면 떠오르는 이가 홍국영이다. 한때는 정조의 절대적인 지지로 권력을 누렸다. 그러나 홍봉한이 외척의 지위를 악용하다 몰락하는 것을 지켜봤음에도, 이를 반면교사로 삼지 않았다. 조정의 대소신료를 쥐락펴락하던 그는 왕의 신임을 잃고 젊은 나이에 유배지에서 생을 마감했다.
21세 젊은 나이에 과거에 급제했던 김조순은 세자의 스승이었고 딸이 왕비로 간택되기도 했다. 그러나 그는 왕의 장인이라는 자리에 기대 권력을 누리기보다 왕의 정치적 스승 역할을 맡았다. 문제는 그의 사후 막내아들 김좌근이 가문 수장이 되면서 안동 김씨가 세도정치의 정점에 올랐다는 점이다. 결국 세도 정치는 엄청난 폐단을 낳기에 이르렇고 나라는 위기에 빠졌다.
김홍집은 개화파 수장이라 할 수 있는 박규수의 제자다. 뛰어난 외교 능력을 겸비했으며 조선 최후의 영의정이자 최초의 총리대신이다. 당시 조선은 외세에 의해 풍비박산이 나고 굴욕적인 조약을 맺었다. ‘매국노’라는 지탄을 받으면서까지 나라를 위해 최선을 다했지만 일개 대신이 할 수 있는 일의 한계는 명확했다. 김홍집은 아관파천이 있던 날 “나는 조선의 총리대신이다. 다른 나라 군대의 도움을 받아 목숨을 부지하느니 차라리 조선 백성의 손에 죽는 것이 떳떳하다. 그것이 천명이다”라는 말을 남기고 최후를 맞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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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비·1만9800원>
/박성천 기자 skypark@kwangju.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