쥐뿔도 모르면서 탱자탱자한다면
2020년 02월 06일(목) 00:00 가가
(오늘의 이 글에는 청소년이 읽기에 다소 부절적한 내용이 포함되어 있어 주의가 요망됩니다. 다만 학문적인 호기심 차원의 접근은 허용하며, 19세 미만의 경우 부모님의 적절한 지도가 필요함을 미리 말씀드립니다.)
‘×도 모르는 놈이 송이버섯 따러 왔다’는 말이 있다. 남성의 생식기와 송이버섯의 생김새가 비슷하다는 데서 착안한 말일 것이다. ‘불알도 모르는 놈이 탱자탱자한다’는 말도 있다. 이 또한 불알과 탱자의 비슷한 모양새에서 생겨난 것이다. (‘함부로 씨부렁거린다’는 뜻의 ‘탱자탱자한다’는 말이 바로 여기서 유래한 듯하다.) 하여튼 ‘아무 것도 모르는 사람이 아는 척하거나 잘난 척할 때’ 흔히 우리는 이런 속언을 사용한다. 아마도 아주 오래 전에 군대에 갔다 온 사람이라면 ‘×도 모르는 놈이 탱자탱자한다’는 말을 수도 없이 들었을 것이다. 이는 ‘쥐뿔도 모르면서 아는 체한다’란 말의 원색적인 표현이다. 한데 쥐에 뿔이 있을 리 없다. 그렇다면 ‘쥐뿔’은 도대체 무엇을 지칭하는 말일까. 일단 관련 설화(說話)를 보자.
옛날 어떤 마을에 한 남자가 살았는데 한가할 때면 윗방에서 새끼를 꼬았다. 그때마다 얼쩡거리는 생쥐에게 먹이를 주곤 했다. 그러던 어느 날 그가 외출을 했다가 돌아오니 자기와 똑같이 생긴 남자가 안방에 앉아 있지 않은가? 도대체 누가 진짜 주인인지 알 수가 없었다. 집안 식구들은 몇 가지 질문을 한 뒤 정확한 대답을 하는 사람을 진짜 주인으로 인정하기로 했다. 이윽고 부인이 부엌의 그릇 수를 물었을 때 진짜 주인은 대답하지 못한 대신 가짜 주인은 그릇과 수저의 수까지 정확하게 알아맞히는 것이었다.
결국 자신의 집에서 쫓겨난 그는 어느 도승을 만나 억울한 신세를 털어놓게 된다. 스님은 ‘당신이 먹거리를 준 쥐가 사람으로 변해 영물(靈物)이 된 것’이라고 일러 주면서 고양이 한 마리를 주었다. 그는 집에 돌아와 고양이를 풀어놓았고, 목을 물린 가짜 주인은 다시 생쥐로 변해 찍찍거렸다. 그 날 밤 술상을 들고 온 부인은 남편 앞에서 고개를 들지 못했다. 남편은 껄껄 웃으면서 말했다. “그래, 당신은 쥐뿔도 몰랐단 말이오?” 그리 오래 함께 결혼 생활을 했으면서도 남편의 거시기와 쥐의 거시기도 구별하지 못했느냐는 핀잔이다.
이런 옛날이야기에 나오는 ‘쥐뿔’은 ‘쥐불’이 변한 말이며 ‘불’은 사전에는 나오지 않지만 수컷의 성기를 뜻하는 옛 우리말이다. 이는 현대 언어에서도 그 흔적을 찾아볼 수 있다. ‘불두덩’(남자 생식기 언저리에 있는 불룩한 부분. 여자의 그것은 ‘×두덩’)이나 ‘불거웃’(생식기 주변에 난 털. 여자의 그것은 ‘×거웃’) 등이 바로 그것이다. 남근(男根) 밑의 ‘불알’도 ‘불’과 ‘알’의 합성어다.
지금이야 뜻을 잘 모르니 그렇지 ‘쥐의 성기’라는 의미가 뚜렷했던 옛날에는 ‘쥐불’을 함부로 입에 담자니 좀 민망하지 않았을까. 그래서 우리 선조들은 ‘불’과 발음이 비슷한 데다 ‘길쭉하게 솟아 있다’는 점에서 외형상 의미도 비슷한 ‘뿔’로 대체해 ‘쥐뿔’이란 말을 사용하게 되었을 것이다.
쥐뿔은 아주 보잘것없거나 규모가 작은 것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기도 하다. “쥐뿔도 없는 주제에 큰소리만 친다.” “쥐뿔만도 못한 주제에 보는 눈은 있어 가지고 예쁜 여자 아니면 쳐다보지 않는다.” 이러한 표현들이 가능한 것도 바로 쥐×의 ‘아주 작고 보잘 것 없음’에 기인한 것일 게다. 쥐의 몸체 일부를 이용한 비유는 이밖에도 한둘이 아니다. ‘쥐꼬리만 한 월급’이란 표현이 대표적이며 속담에도 쥐는 자주 등장한다.
‘쥐구멍에도 볕들 날 있다’ ‘쥐도 궁하면 고양이를 문다’ ‘독 안에 든 쥐’ ‘쥐구멍에 홍살문 세우겠다’(쓸데없는 겉치레를 요란하게 하는 경우를 비웃는 말) 등등. 우리말에 쥐에 관한 다양한 비유와 속담이 있다는 건 그만큼 쥐와 우리 인간 생활의 밀접함을 말해 주는 것이다.
경자년(庚子年) 흰쥐의 해가 밝은 지도 벌써 10여 일 이상 지났다. 다 알다시피 쥐는 12지(支)의 첫 번째 자리를 차지한다. 쥐가 열두 동물 가운데 맨 앞자리에 놓인 연유로는 여러 이야기가 있다. 그중 발가락 개수를 기준으로 삼았다는 설이 유력하다. 음양 사상에 따라 홀수 발가락과 짝수 발가락을 가진 동물이 번갈아 나오도록 배치했는데, 앞발가락이 네 개요 뒷발가락이 다섯 개로 음양을 겸비한 유일한 동물인 쥐가 맨 앞에 서게 됐다는 것이다.
한데 이런 설화도 있다. 옛날 옛적 옥황상제가 하늘의 문에 빨리 도착하는 동물 순으로 지위를 주고자 경주를 벌였다. 우직한 소는 경주에서 우승하기 위해 열심히 훈련했는데, 경기 당일 소의 등에 몰래 올라탄 쥐는 소가 결승선에 다다르기 직전 재빨리 뛰어내려 1등을 차지했다는 거다. 그러나 이는 그저 쥐의 영리함을 강조하기 위해 만들어진 이야기일 뿐이다.
쥐는 다산(多産)의 상징이기도 하다. 쥐 한 쌍이 1년이면 800마리까지 번식시킬 수 있다고 한다. 역학에서 쥐를 뜻하는 단어인 ‘서’(鼠) 대신 ‘자’(子)를 쓰게 된 것도 쥐가 워낙 자손을 번창시키는 다산의 동물이어서 새끼 칠 ‘자’(子)로 대체했기 때문이다. 쥐는 ‘서생원’(鼠生員)이라 해서 열두 동물 중에서 유일하게 인간과 같은 예우를 받는 동물이다. 지혜롭고 근면하고 예지력까지 갖춘 덕일 것이다.
그러나 쥐는 대대로 우리 실생활에서 홀대받는 존재였다. 병을 옮기고, 곡식을 축내고, 책이나 가구를 갉아 먹는 등 인류에 끼친 피해가 너무 큰 탓이다. 그런 만큼 쥐를 간신이나 도둑 등으로 묘사한 속담이나 설화도 많다. ‘옹고집전’ 역시 사람의 손발톱을 먹은 쥐가 인간으로 둔갑해 진짜 주인을 몰아내는 내용을 담고 있다. 우리 일상생활에서도 비굴하거나 교활하고 간사한 무리를 흔히 ‘쥐새끼 같다’라고 표현한다.
쥐의 해인 올해는 21대 국회의원 총선거가 실시되는 해이기도 하다. 총선이 불과 두 달 앞으로 다가왔다. “들쥐는 구멍 파서 어린 낟알 숨겨 두고/ 집쥐는 온갖 물건 안 훔치는 것이 없어/ 백성들은 쥐 등쌀에 나날이 초췌해 가고/ 기름 말라 피 말라 피골까지 말랐다네.” 다산 정약용의 한탄이다.
다가오는 이번 선거에서는 집쥐·들쥐 할 것 없이 그런 쥐새끼 같은 이들이 우리 살림을 맡겠다고 나오는 것은 아닌지 두루두루 잘 살펴야 할 것이다. 그런 이들은 끝내 우리 곳간의 양식을 야금야금 다 갉아 먹고 말 것이기 때문이다. 어느 날 내 집 숟가락 개수만 외운 뒤 갑자기 나타나 주인 노릇을 하려는 자는 없는지 눈을 부릅뜨고 살필 일이다.
‘×도 모르는 놈이 송이버섯 따러 왔다’는 말이 있다. 남성의 생식기와 송이버섯의 생김새가 비슷하다는 데서 착안한 말일 것이다. ‘불알도 모르는 놈이 탱자탱자한다’는 말도 있다. 이 또한 불알과 탱자의 비슷한 모양새에서 생겨난 것이다. (‘함부로 씨부렁거린다’는 뜻의 ‘탱자탱자한다’는 말이 바로 여기서 유래한 듯하다.) 하여튼 ‘아무 것도 모르는 사람이 아는 척하거나 잘난 척할 때’ 흔히 우리는 이런 속언을 사용한다. 아마도 아주 오래 전에 군대에 갔다 온 사람이라면 ‘×도 모르는 놈이 탱자탱자한다’는 말을 수도 없이 들었을 것이다. 이는 ‘쥐뿔도 모르면서 아는 체한다’란 말의 원색적인 표현이다. 한데 쥐에 뿔이 있을 리 없다. 그렇다면 ‘쥐뿔’은 도대체 무엇을 지칭하는 말일까. 일단 관련 설화(說話)를 보자.
이런 옛날이야기에 나오는 ‘쥐뿔’은 ‘쥐불’이 변한 말이며 ‘불’은 사전에는 나오지 않지만 수컷의 성기를 뜻하는 옛 우리말이다. 이는 현대 언어에서도 그 흔적을 찾아볼 수 있다. ‘불두덩’(남자 생식기 언저리에 있는 불룩한 부분. 여자의 그것은 ‘×두덩’)이나 ‘불거웃’(생식기 주변에 난 털. 여자의 그것은 ‘×거웃’) 등이 바로 그것이다. 남근(男根) 밑의 ‘불알’도 ‘불’과 ‘알’의 합성어다.
지금이야 뜻을 잘 모르니 그렇지 ‘쥐의 성기’라는 의미가 뚜렷했던 옛날에는 ‘쥐불’을 함부로 입에 담자니 좀 민망하지 않았을까. 그래서 우리 선조들은 ‘불’과 발음이 비슷한 데다 ‘길쭉하게 솟아 있다’는 점에서 외형상 의미도 비슷한 ‘뿔’로 대체해 ‘쥐뿔’이란 말을 사용하게 되었을 것이다.
쥐뿔은 아주 보잘것없거나 규모가 작은 것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기도 하다. “쥐뿔도 없는 주제에 큰소리만 친다.” “쥐뿔만도 못한 주제에 보는 눈은 있어 가지고 예쁜 여자 아니면 쳐다보지 않는다.” 이러한 표현들이 가능한 것도 바로 쥐×의 ‘아주 작고 보잘 것 없음’에 기인한 것일 게다. 쥐의 몸체 일부를 이용한 비유는 이밖에도 한둘이 아니다. ‘쥐꼬리만 한 월급’이란 표현이 대표적이며 속담에도 쥐는 자주 등장한다.
‘쥐구멍에도 볕들 날 있다’ ‘쥐도 궁하면 고양이를 문다’ ‘독 안에 든 쥐’ ‘쥐구멍에 홍살문 세우겠다’(쓸데없는 겉치레를 요란하게 하는 경우를 비웃는 말) 등등. 우리말에 쥐에 관한 다양한 비유와 속담이 있다는 건 그만큼 쥐와 우리 인간 생활의 밀접함을 말해 주는 것이다.
경자년(庚子年) 흰쥐의 해가 밝은 지도 벌써 10여 일 이상 지났다. 다 알다시피 쥐는 12지(支)의 첫 번째 자리를 차지한다. 쥐가 열두 동물 가운데 맨 앞자리에 놓인 연유로는 여러 이야기가 있다. 그중 발가락 개수를 기준으로 삼았다는 설이 유력하다. 음양 사상에 따라 홀수 발가락과 짝수 발가락을 가진 동물이 번갈아 나오도록 배치했는데, 앞발가락이 네 개요 뒷발가락이 다섯 개로 음양을 겸비한 유일한 동물인 쥐가 맨 앞에 서게 됐다는 것이다.
한데 이런 설화도 있다. 옛날 옛적 옥황상제가 하늘의 문에 빨리 도착하는 동물 순으로 지위를 주고자 경주를 벌였다. 우직한 소는 경주에서 우승하기 위해 열심히 훈련했는데, 경기 당일 소의 등에 몰래 올라탄 쥐는 소가 결승선에 다다르기 직전 재빨리 뛰어내려 1등을 차지했다는 거다. 그러나 이는 그저 쥐의 영리함을 강조하기 위해 만들어진 이야기일 뿐이다.
쥐는 다산(多産)의 상징이기도 하다. 쥐 한 쌍이 1년이면 800마리까지 번식시킬 수 있다고 한다. 역학에서 쥐를 뜻하는 단어인 ‘서’(鼠) 대신 ‘자’(子)를 쓰게 된 것도 쥐가 워낙 자손을 번창시키는 다산의 동물이어서 새끼 칠 ‘자’(子)로 대체했기 때문이다. 쥐는 ‘서생원’(鼠生員)이라 해서 열두 동물 중에서 유일하게 인간과 같은 예우를 받는 동물이다. 지혜롭고 근면하고 예지력까지 갖춘 덕일 것이다.
그러나 쥐는 대대로 우리 실생활에서 홀대받는 존재였다. 병을 옮기고, 곡식을 축내고, 책이나 가구를 갉아 먹는 등 인류에 끼친 피해가 너무 큰 탓이다. 그런 만큼 쥐를 간신이나 도둑 등으로 묘사한 속담이나 설화도 많다. ‘옹고집전’ 역시 사람의 손발톱을 먹은 쥐가 인간으로 둔갑해 진짜 주인을 몰아내는 내용을 담고 있다. 우리 일상생활에서도 비굴하거나 교활하고 간사한 무리를 흔히 ‘쥐새끼 같다’라고 표현한다.
쥐의 해인 올해는 21대 국회의원 총선거가 실시되는 해이기도 하다. 총선이 불과 두 달 앞으로 다가왔다. “들쥐는 구멍 파서 어린 낟알 숨겨 두고/ 집쥐는 온갖 물건 안 훔치는 것이 없어/ 백성들은 쥐 등쌀에 나날이 초췌해 가고/ 기름 말라 피 말라 피골까지 말랐다네.” 다산 정약용의 한탄이다.
다가오는 이번 선거에서는 집쥐·들쥐 할 것 없이 그런 쥐새끼 같은 이들이 우리 살림을 맡겠다고 나오는 것은 아닌지 두루두루 잘 살펴야 할 것이다. 그런 이들은 끝내 우리 곳간의 양식을 야금야금 다 갉아 먹고 말 것이기 때문이다. 어느 날 내 집 숟가락 개수만 외운 뒤 갑자기 나타나 주인 노릇을 하려는 자는 없는지 눈을 부릅뜨고 살필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