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조장·양곡창고는 문화예술촌, 정미소는 창작공간으로
2020년 02월 04일(화) 00:00
광주·전남 폐산업시설의 대변신
아트팩토리 부활 담양해동문화예술촌
갤러리·아카이브실·주조체험동 갖춰
옛곡물창고 그대로 살린 ‘담빛예술창고’
전시장·카페 복합문화공간 탈바꿈
잠사공장은 나주 나빌레라 문화센터로
나주정미소는 난장 공연장으로

담양 구도심에 자리한 해동문화예술촌. 막걸리를 만들던 주조장이 2010년 폐업한 후 문화재생사업을 통해 재탄생했다.

윙윙윙 미싱 돌아가는 소리, 달그닥 달그닥 누에를 가득 싣고 온 수레바퀴 행렬, 뽀글뽀글 양조장 항아리에 술이 익어 발효되는 소리… 온종일 머리가 멍할 정도로 시끄럽게 울리던 공장 기계 돌아가는 소리가 멈췄다.

가동을 멈춘 공장에는 먼지 가득한 폐 부품들이 아무렇게나 방치돼 있고 폐허가 되다시피 한 창고에서는 금방이라도 무언가가 튀어나올 듯 으스스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세월의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이제는 옛것이 되어버린 폐산업시설들이 그리운 요즘이다.

문화체육관광부가 진행하고 있는 ‘산업단지 및 폐산업시설 문화재생’ 사업을 통해 변화를 시도하고 있는 광주·전남 문화공간들의 과거와 현재 속으로 들어가 본다.

◇문화예술촌이 된 주조장과 양곡창고= 담양 구도심에 자리한 해동문화예술촌은 아트 팩토리로 부활한 폐산업시설의 대표적인 공간이다. 2000여 평의 부지에 들어서 있는 건물만 10개 동이다.

해동문화예술촌의 전신은 ‘술 공장’이다. 지금은 고인이 된 조인훈 대표가 1950년대 말 ‘신궁소주’를 인수하면서 자그맣게 영업을 시작했다. 이후 사업이 번창해 누룩창고와 가옥, 관리사, 농기구 창고 등 주조 관련 시설들을 확대했고 1970년대부터 해동막걸리, 해동 동동주를 생산했다.

2010년 폐업 이후 수년간 방치됐던 해동주조장은 2016년 담양군의 부지 매입과 문화체육관광부의 문화재생 사업을 통해 재탄생했다. 창고 10개동과 직원들이 생활했던 주택 4개동은 갤러리와 아카이브실, 교육실, 전시실 등 다양한 시설들로 꾸며졌다. 주조체험동에는 세계의 술과 우리나라 지역별 대표 막걸리들을 한 눈에 살펴볼 수 있도록 전시됐다.

‘막걸리, 색과 소리를 익히다’ 공간에서는 술 익어가는 소리를 영상과 음향으로 재현했으며, 꼬두밥을 펼쳐놓았던 넓은 공간은 그대로 살려두면서 미디어아트를 통해 담양 곳곳의 사계를 영상으로 만날 수 있게 했다.

2017년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된 해동문화예술촌의 재생사업은 여전히 진행중이다. 2020년 완료를 목표로 주인이 사용하던 안채와 마당은 음식을 먹을 수 있는 휴식공간으로, 주조장 앞 한옥은 인문학당과 해외작가 레지던시 공간으로, 최근 매입한 교회 건물은 클래식 음악 공연과 영화 상영 등을 할 수 있도록 준비중이다.

‘南松倉庫(남송창고)’. 붉은 벽돌 건물에 큼지막하게 한자로 새겨진 글씨가 한눈에 들어온다. 과거 정부양곡을 보관하기 위해 쓰였던 남송창고는 2004년 국가수매제도가 없어지면서 활용도가 떨어졌다. 10년 가까이 기능을 상실한 채 방치됐던 창고가 예술의 옷으로 갈아입고 당당하게 관광객을 맞이하고 있다. 담양관광의 ‘최애’ 명소가 된 복합문화공간 ‘담빛예술창고’의 모습이다.

1968년 지어진 옛 곡물 창고의 높은 층고를 그대로 살린 ‘담빛예술창고’는 미술관과 카페 2개동이 ‘ㄱ’자 형으로 이웃해 있다. 잔디마당을 기준으로 왼편이 전시장, 오른편이 카페다. 카페는 언제나 방문객들로 활기차다. 옛 모습을 그대로 재현한 외관과 다르게 내부는 모던한 감각으로 꾸몄다.

호남 최초 정미소였던 ‘나주 정미소’는 최근 리모델링을 거쳐 공연과 전시 등이 가능한 ‘난장곡간’으로 변신했다.
◇잠사 공장과 정미소의 변신= 나주읍성 고샅길에 자리한 ‘나주 나빌레라 문화센터’의 전신은 누에고치에서 실을 뽑던 잠사(蠶絲) 공장이다. 1910년대 일본인 센가가 이곳에 ‘나주센가제사공장’을 설립했다. 광복후 공장을 매입한 김용두(1911~1976)씨는 1957년 ‘나주잠사주식회사’로 이름을 바꿨다.

1960년대부터 70년대 중반까지 잠업이 성행했지만 70년대 후반 화학섬유가 들어오면서 실크수요가 점점 줄어들어 결국 1990년 가동 중단, 1994년 폐업했다. 폐업 후 오랫동안 버려져 있던 나주잠사는 2014년 문광부가 공모한 폐산업시설 문화재생사업에 선정되면서 누에고치 건조시설과 고치보관소, 보일러실, 굴뚝, 기숙사, 사택 등 건물 6동이 ‘나주 나빌레라 문화센터’라는 새로운 이름으로 나주의 새로운 문화발신소이자 창조공간으로 탄생됐다.

나빌레라 문화센터에서 5분 거리에 최근 새로운 문화공간이 탄생했다. 나주시 성북동에 위치한 나주 정미소는 호남 최초의 정미소로, 박준삼에 의해 건립됐다. 전라도 최대 곡창지대였던 나주평야에서 수확한 곡식은 이곳에서 도정과정을 거쳐 쌀로 생산됐다. 단순히 쌀을 생산하는 곳이었을 뿐만 아니라 1929~30년 학생독립운동을 도모했던 역사적인 장소이기도 하다.

나주시와 나주시도시재생협의체가 최근 나주읍성권 도시재생사업의 일환으로 폐허나 다름없던 정미소를 탈바꿈시켰다. 100년된 붉은 벽돌을 최대한 보존하는 방식으로 구조물만 보강했다. 역사문화도시 나주의 ‘정과 맛을 간직한 웃음꽃 피는’ 나주의 대표적인 장소가 되어야 한다는 뜻에서 ‘나주 정미소(情味笑)’가 됐다.

나주정미소 부지에 남아있는 4개 동의 건물 중 첫 번째로 업사이클링한 공간은 지난해 말부터 광주MBC의 ‘문화콘서트 난장’ 전용 공연장으로 사용되고 있는 ‘난장곡간’이다. 공연 외에도 나주 시민들의 문화 공간, 다양한 예술의 전시 공간, 뮤지션들의 창작 공간이 될 것으로 보인다.

◇소촌 아트팩토리의 성공과 상무소각장에 거는 기대= 88고속도로 개통과 서해안 개발 등 80년대 토건사업이 절정에 달하던 1988년. 광주시는 도농복합도시였던 광산구의 개발 촉진을 위한 사업을 추진하면서 소촌동 일대 논, 밭, 임야 10만 여평에 농공단지를 조성했다. 소촌농공단지는 하남산업단지, 하남평동공단 등과 함께 광산구를 광주경제 발전을 이끄는 신도시로서의 명성을 얻게 하는데 크게 일조했다.

2015년 소촌농공단지의 유휴공간인 관리사무소에 27개의 컨테이너 박스가 등장하면서 문화의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3~4개의 컨테이너 박스들을 연결하자 통로이자 전시공간, 벙커극장이 되었다. 동아리 연습공간이 생겨나고 작은도서관과 라디오 스튜디오와 카페테리아, 커뮤니티 관리공간까지 갖춘 ‘소촌 아트팩토리’로 거듭났다.

이외에도 광주에는 리모델링을 앞두고 있는 대형 폐산업시설 두 곳이 시민들의 관심을 받고 있다. 도심 속 혐오시설로 인식되면서 지난 2016년 페쇄 결정이 내려진 상무소각장과 평동산단으로 이전을 추진중인 북구 임동 옛 전남방직과 일신방직 광주공장 부지다.

상무소각장은 ‘상무복합문화 커뮤니티 타운’으로 바뀐다. 광주시는 소각장 부지 3만1871㎡ 일원에 광주도서관 등 시민 누구나 즐길 수 있는 문화공간으로 탈바꿈시킬 계획으로 현재 ‘광주 대표도서관 국제 현상설계공모’를 진행중이다. 도서관이 들어서게 될 복지동과 관리동은 철거되지만 굴뚝 등 공장동 시설물은 살리는 쪽으로 구조를 재편하면서 공간의 상징성을 살리겠다는 계획이다.

전남방직과 일신방직은 부지가 워낙 넓다 보니 기존 시설을 리모델링하기는 사실상 가능성이 없는 상태다. 두 회사는 지난해 8월부터 수차례에 걸쳐 해당 부지 29만1800여㎡의 용도변경을 위해 사업계획서를 제출해 온 것으로 나타났다. 향후 이곳을 주거·상업용으로 변경한 후 거대 쇼핑단지와 아파트 등을 조성할 계획으로 알려졌다.

전문가들은 유휴공간의 문화재생 사업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단순하게 시설을 짓는 것에 끝나지 않고 지역의 특색과 기존 공간의 의미를 잘 살릴 수 있는 문화공간, 지역민이 함께 동참할 수 있는 공간이 되어야 한다는 의견이다.

정성구 도시문화집단CS 대표는 “광주는 특별히 타 도시에 비해 산업자산이 많지 않은 도시다”며 “복합문화 커뮤니티 타운으로 변신을 준비중인 상무소각장이나 국립트라우마치유센터로 예정된 옛 국군 광주병원 부지 등 공간에 대한 상징성을 보존하는 방안이 마련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이보람 기자 boram@kwangju.co.kr

/사진=나명주 기자 mjna@kwangj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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