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로의 주인은 누구인가?
2019년 09월 26일(목) 04:50 가가
매년 9월 22일은 ‘세계 차 없는 날’이다. 전 세계가 이날만은 차를 두고 걷자고 다짐한다. 지난 주 우리 광주도 차 없는 날 행사를 치렀다. 자동차가 도시에서 대규모 탄소 배출의 원흉이고, 이로 인해 나날이 거세지는 미세 먼지, 폭염과 같은 기후 환경 문제의 원인이라는 사실은 이제 모두가 아는 진실이다. 게다가 교통사고라는 안전 문제도 제공한다. 자동차에 대한 문제는 국제 사회도 인식하고 있다.
오늘은 누구나 아는 환경이나 안전 문제 말고, 자동차가 만든 우리 도시의 불편한 진실을 생각해 보려고 한다. 도로는 일반적으로 차도와 인도로 구분한다. 차도는 자동차가, 인도는 사람이 다닌다. 우리나라 도시에서 이 구분이 일반화된 것은 불과 100여 년 정도이다. 급격한 도시화가 진행되고, 도시는 이전에 볼 수 없었던 큰 규모로 확장되었다. 동시에 자동차가 등장한 이후 우리는 도로를 자동차에게 내주었다.
잠시 생각해보자. 차도를 보면 쉽게 이해하기 힘든 현상을 볼 수 있다. 자동차가 달리는 차도에는 돌멩이 하나 없이 깨끗하다. 차선이 지워지면 바로 도색해서 운전자가 불편하지 않도록 한다. 언제나 자동차가 쾌적하게 최적으로 달릴 수 있도록 관리한다. 반면 우리가 걷는 인도를 보라. 만든지 오래된 인도는 가로수가 뿌리를 올리며, 인도를 갈기갈기 찢고 있다. 포장이 벗겨지거나 군데군데 파손된 곳도 많다. 자동차가 사람보다 좋은 대우를 받는 것처럼 느껴진다. 역으로 사람은 도로에서 천대받는다.
차도는 모든 도로와 연결되어 있다. 도시의 모든 구획에서 자동차가 중심이다. 자동차는 교통 신호에 멈추는 것을 제외하고 목적지까지 멈추지 않고 갈 수 있다. 하지만 인도는 단절되어 있다. 사람은 계속 걷다가 멈춰야 한다. 신호등도 있지만, 자동차가 먼저 가셔야(?) 하니 멈춰야 한다.
심지어 원도심의 좁은 도로는 인도가 없다. 자동차가 주차해야 하니, 사람은 조심스레 비켜 걸어야 한다. 또한 대로변의 인도를 걷다 보면, 바로 옆에서 쌩쌩 달리는 자동차에 위압감을 느낀다. 기괴한 소음을 들으며 불안에 떨며 걸어야 한다. 먼지도 엄청나게 날린다. 그 옆을 긴장하며 우리는 걷는다.
도대체 이런 문제는 왜 생긴 것일까. 도시의 일상에서 걷는 사람이 누구인지 보라. 아동·청소년, 여성, 노인, 장애인이다. 흔히 ‘사회적 약자’로 분류된다. 반면 자동차를 운전하는 사람은 누구인가. 대부분 사회적 지위와 돈을 가진 중장년 남성이다. 이들은 도시의 정책을 만들고 집행하는 주역이다. 자신들이 편하게 자동차를 운전하고 원하는 목적지까지 바로 갈 수 있도록 도시를 만든다.
필자를 포함해 광주시 인구에서 고작 23%에 불과한 30~50대의 남성들이 자신들도 모르는 사이에 자기 자신을 위한 교통과 도로 정책을 만든다. 흥미로운 사실은 이 불평등의 중심에 서 있는 남성들은 한 집안의 가장이면서 구성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혀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같은 가족 구성원의 불편을 생각하지 못한다. 물론 그동안 우리의 도시 발전 과정에서 자동차 중심의 사고에 찌들어있기에 당연한 결과이리라.
자동차가 오늘날 우리 도시를 혁신적으로 발전시키는데 지대한 공헌을 한 사실은 부인하기 어렵다. 하지만 그 폐해도 심각하다. 기후 변화와 미세 먼지와 같은 환경 문제의 유발 요인이면서 사회적 불평등의 중심에 있다. 도시가 지속 가능해지고 모든 세대와 계층을 포용하려면, 도로에 대한 우리의 사고를 전환해야 한다. 자동차와 일부 중장년층을 위한 도로가 아닌, 모두를 포용하는 도로가 되어야 한다.
광주는 민주·인권·평화의 도시다. 당연히 사회적 불평등에 대한 고민은 언제나 중요한 과제다. 그래서 우리 광주부터 자동차가 만든 도로에서의 사회적 불평등을 해소해야 한다. 이번 차 없는 날을 계기로 우리 모두가 도로에서 자동차보다 사람이 먼저라는 획기적인 전환점을 만들어야 한다.
우리 한번 생각해보자. 도시는 누구를 위해 존재하는가. 우리 인간이다. 그렇다면 도로의 주인은 누구인가? 물질 문명의 산물인 자동차가 아니라 인간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 인권 도시 광주는 우리 모든 시민들이 존중받으며 걸을 수 있는 권리를 만끽하는 도시가 되어야 할 것이다.
심지어 원도심의 좁은 도로는 인도가 없다. 자동차가 주차해야 하니, 사람은 조심스레 비켜 걸어야 한다. 또한 대로변의 인도를 걷다 보면, 바로 옆에서 쌩쌩 달리는 자동차에 위압감을 느낀다. 기괴한 소음을 들으며 불안에 떨며 걸어야 한다. 먼지도 엄청나게 날린다. 그 옆을 긴장하며 우리는 걷는다.
도대체 이런 문제는 왜 생긴 것일까. 도시의 일상에서 걷는 사람이 누구인지 보라. 아동·청소년, 여성, 노인, 장애인이다. 흔히 ‘사회적 약자’로 분류된다. 반면 자동차를 운전하는 사람은 누구인가. 대부분 사회적 지위와 돈을 가진 중장년 남성이다. 이들은 도시의 정책을 만들고 집행하는 주역이다. 자신들이 편하게 자동차를 운전하고 원하는 목적지까지 바로 갈 수 있도록 도시를 만든다.
필자를 포함해 광주시 인구에서 고작 23%에 불과한 30~50대의 남성들이 자신들도 모르는 사이에 자기 자신을 위한 교통과 도로 정책을 만든다. 흥미로운 사실은 이 불평등의 중심에 서 있는 남성들은 한 집안의 가장이면서 구성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혀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같은 가족 구성원의 불편을 생각하지 못한다. 물론 그동안 우리의 도시 발전 과정에서 자동차 중심의 사고에 찌들어있기에 당연한 결과이리라.
자동차가 오늘날 우리 도시를 혁신적으로 발전시키는데 지대한 공헌을 한 사실은 부인하기 어렵다. 하지만 그 폐해도 심각하다. 기후 변화와 미세 먼지와 같은 환경 문제의 유발 요인이면서 사회적 불평등의 중심에 있다. 도시가 지속 가능해지고 모든 세대와 계층을 포용하려면, 도로에 대한 우리의 사고를 전환해야 한다. 자동차와 일부 중장년층을 위한 도로가 아닌, 모두를 포용하는 도로가 되어야 한다.
광주는 민주·인권·평화의 도시다. 당연히 사회적 불평등에 대한 고민은 언제나 중요한 과제다. 그래서 우리 광주부터 자동차가 만든 도로에서의 사회적 불평등을 해소해야 한다. 이번 차 없는 날을 계기로 우리 모두가 도로에서 자동차보다 사람이 먼저라는 획기적인 전환점을 만들어야 한다.
우리 한번 생각해보자. 도시는 누구를 위해 존재하는가. 우리 인간이다. 그렇다면 도로의 주인은 누구인가? 물질 문명의 산물인 자동차가 아니라 인간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 인권 도시 광주는 우리 모든 시민들이 존중받으며 걸을 수 있는 권리를 만끽하는 도시가 되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