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홍재의 세상만사] ‘하나님! 너무 그러지 마시어요’
2019년 05월 02일(목) 19:40
과거 ‘학원’이란 인기 잡지가 있었다. 학생 교양지였는데 나이 든 문인이라면 그 이름만 들어도 아련한 추억에 잠기지 않을까 싶다. 그도 그럴 것이 ‘학원’은 당시 수많은 문학 지망생들을 발굴해 키우는 역할을 했기 때문이다. 완도 출신 시인 김만옥(1946∼1975)도 중학생 시절부터 벌써 이 잡지에 많은 시와 산문을 게재했다. 지금은 원로가 된 같은 연배의 작가들에게 들어 보면, 그는 학생들 사이에서 명성이 자자했던 모양이다.

고등학생 때 이미 시집을 발간하고 옛 전남일보 신춘문예에 응모한 시가 가작으로 뽑혔으며, 고교(조대부고)를 마치기도 전에 ‘사상계’ 신인문학상에 당선되어 등단했으니, 그가 얼마나 뛰어난 문재(文才)를 지니고 있었는지 족히 알 만하다. 그는 이미 결혼한 상태에서 1967년 조선대학교(국어국문학과)에 입학했지만, 곤궁한 가정 형편 때문에 2년 만에 중퇴하고 말았다. 그래도 작품 활동만은 계속했다. 하여 시·소설 가리지 않고 돈이 되는 공모전을 쫓아다니며 여러 차례 당선되기도 했다. 그러나 수상 상금은 결코 경제적 해결책이 되지 못했다. 게다가 신문사 공채 시험에 합격하고도 대학 졸업장이 없다는 이유로 합격이 취소돼 가난한 삶의 언덕을 오르내려야 했다. 결국 시인은 1975년 갓 서른의 나이에 아내와 세 딸을 남기고 스스로 목숨을 끊어 생을 마쳤다.

김만옥 시비(詩碑) 앞에 서서

“봄비가 다녀간 담장 밑 양지쪽에/ 어느 날 딸아이가 능금 씨 심는다/ 봄이 다 가고 여름이 와도/ 싹은 나지 않고 가슴 죄는데/ 가을이 다 가고 겨울이 와서/ 까마득 그 일 다 잊어버릴 때/ 딸아이 마음속에 능금 꽃 필까/ 딸아이 마음속에 능금이 열릴까/ 딸아이에게/ 퇴비 한 줌 주지 못한/ 어른이 송구스럽다”(김만옥, ‘딸아이의 능금’ 전문)

예전엔 사과를 능금이라 했다. 예쁜 딸아이가 사과 씨앗을 묻고 싹이 나기를 기다린다. 날마다 담장 밑에 가 보지만, 열매는커녕 도통 싹이 나올 기색조차 없다. 언젠가 붉은 능금이 열리는 것을 기대했을 아이는 그동안 얼마나 마음을 졸였을까. 또 얼마나 실망했을까. 어느 날 생각이 여기에 미친 아버지는 미안한 마음이 든다. 그래 얼마나 미안했으면 아랫사람들에게는 잘 쓰지 않는 ‘송구스럽다’란 표현까지 썼을까.

오늘도 산책길에 그의 시비(詩碑) 앞에서 걸음을 멈춘다. 시립미술관에서 비엔날레관으로 가는 길목에 서 있는, ‘딸아이의 능금’ 전문이 새겨진 시비다. 시를 천천히 읽는다. 그리고 객지에서 고생하고 있는 딸을 떠올리며, 나 또한 시인과 같은 마음에 젖어 본다. 딸뿐만 아니라 가족을 생각하면 늘 미안한 마음뿐이다. 연로하신 부모님을 떠올리면 더욱 죄송스러움에 고개를 들 수가 없다.

그러고 보니 어느덧 가정의 달 5월이다. 어린이날(5일)과 어버이날(8일)이 있고, 입양의 날(11일)과 스승의 날(15일)이 있으며, 성년의 날(17일)과 부부의 날(22일)이 들어 있는 달. 비록 딱 한 달에 그칠지라도 다시 한 번 가정의 소중함을 생각해 보는 달이다. 가족은 어쩌면 ‘풀꽃’처럼 ‘오래 보아서 예쁘고 사랑스러운’ 존재일지도 모른다.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 너도 그렇다”(나태주, 풀꽃 1 전문)

굳이 가정의 달이어서 그런 건 아니지만, 나태주(74) 시인의 ‘아내 사랑 이야기’를 공유하고 싶다. 10여 년 전, 그러니까 그의 나이 60대 초반 무렵이었던가. 중병으로 죽음의 문턱까지 갔을 때 쓴 ‘너무 그러지 마시어요’란 제목의 시를 최근에야 알게 됐다. 곁에서 간호하는 아내가 안쓰러워 병상에 누워 썼다는 시. 참 감동적이다.

“너무 그러지 마시어요./ 너무 섭섭하게 그러지 마시어요. 하나님./ 저에게가 아니에요./ 저의 아내 되는 여자에게 그렇게 하지 말아 달라는 말씀이어요./ 이 여자는 젊어서부터 병과 함께 약과 함께 산 여자예요./ 세상에 대한 꿈도 없고 그 어떤 삶보다도 죄를 안 만든 여자예요./ 신발장에 구두도 많지 않은 여자구요./ 한 남자 아내로서 그림자로 살았고/ 두 아이 엄마로서 울면서 기도하는 능력밖엔 없었던 여자이지요./ 자기의 이름으로 꽃밭 한 평 채전밭 한 뙈기 가지지 않은 여자예요./ 남편 되는 사람이 운전조차 할 줄 모르고 쑥맥이라서/ 언제나 버스만 타고 다닌 여자예요./ 너무 그러지 마시어요./ 가난한 자의 기도를 들어주시는 하나님./ 저의 아내 되는 사람에게 너무 섭섭하게 하지 마시어요.”

나태주 시인과 부인의 화답시

아내를 위한 애틋한 마음이 뚝뚝 묻어나는데, 더욱 감동적인 것은 남편의 시에 화답하여 썼다는 아내의 시다. “너무 고마워요./ 남편의 병상 밑에서 잠을 청하며 사랑의 낮은 자리를 깨우쳐 주신 하나님./ 이제는 저이를 다시는 아프게 하지 마시어요./ 우리가 모르는 우리의 죄로 한 번의 고통이 더 남아 있다면/ 그게 피할 수 없는 우리의 것이라면/ 이제는 제가 병상에 누울게요. 하나님./ 저 남자는 젊어서부터 분필과 함께 몽당연필과 함께 산/ 시골 초등학교 선생이었어요./ 시에 대한 꿈 하나만으로 염소와 노을과 풀꽃만 욕심내 온 남자예요./ 시 외의 것으로는 화를 내지 않은 사람이에요.”

시는 계속해서 이어진다. “책꽂이에 경영이니 주식이니 돈 버는 책은 하나도 없는 남자고요./ 제일 아끼는 거라곤/ 제자가 선물한 만년필과 그간 받은 편지들과/ 외갓집에 대한 추억뿐이에요./ 한 여자 남편으로 토방처럼 배고프게 살아왔고/ 두 아이 아빠로서 우는 모습 숨기는 능력밖에 없었던 남자지요./ 공주 금강의 아름다운 물결과/ 금학동 뒷산의 푸른 그늘만이 재산인 사람이에요./ 운전조차 할 줄 몰라 언제나 버스만 타고 다닌 남자예요./ 승용차라도 얻어 탄 날이면 꼭 그 사람 큰 덕 봤다고 먼 산 보던 사람이에요./ 하나님,/ 저의 남편 나태주 시인에게 너무 섭섭하게 그러지 마시어요./ 좀만 시간을 더 주시면/ 아름다운 시로 당신 사랑을 꼭 갚을 사람이에요.”

절창(絶唱)이다. 가슴이 찡해진다. 참으로 아름다운 부창부수(夫唱婦隨)다. 나는 이들 부부의 ‘간절한 기도’를 들으며 북받쳐 오는 감동을 억제할 길이 없다. 특히 ‘피할 수 없는 한 번의 고통이 더 남아 있다면 이제는 제가 병상에 누울 게요’라는 기도 앞에서는 금세 눈시울이 뜨거워지고 만다. 이들 노부부의의 따뜻한 사랑을 보면서, 문득 마누라 아팠을 때 시 한 수 내어 주지 못한 내가 ‘송구스럽다’는 생각도 든다.

봄을 맞아 온갖 화사한 꽃들 피어나는데, 그래 더욱 서러운 5월이라니. 아, 봄날은 간다. 애들아. 아무쪼록 건강하렴. 어머니, 아버지! 부디 오래오래 사셔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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