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사는 세상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이해하고 싶어 하는 것은 사람의 자연스러운 본성이자 요청이다. 상황의 맥락과 의미를 제대로 알기 위해서는 앞뒤를 맞춰 보고 가려진 부분들을 살펴봐야 하는데 이 과정에 필요한 것이 언어적 사유다. 그런데 갈수록 말로써 설명되지 않는 일들이 일상을 주도하고 압도한다. 뜻을 공유하고 의미를 전달하는 언어는 끝없이 무력해지면서 ‘빠루’라는 낯선 말이 언론을 뒤덮고 ‘물뽕’과 ‘몰카’는 취향의 기호가 되는 혼돈의 상황이다. 이 모든 것을 난장판이나 아수라장이라는 말만으로는 설명하기에 턱없이 부족하다.

빠루는 굵고 큰 못을 뽑는 데 사용하는 연장이라고 한다. 상식적인 언어가 사라진 곳에는 거짓과 위선, 불신과 파괴만이 무성해진다. 이 추악한 야만을 지금 우리는 매일 곳곳에서 보며 겪고 있다. 이 상황이 만들어 내는 최악의 독은 우리 스스로가 자신을 부정하고 사태에 대한 인식을 거부하면서 퍼트리는 무력감이다. 무력감은 ‘일부 미친 사람들이나 하는 짓은 모른 척하는 것이 최선’이라는 도덕적 우월성으로 위장되기 때문이다.

프란츠 카프카(1883∼1924)가 쓴 ‘법 앞에서’라는 작품을 읽으면서 부닥치는 감정이 지독한 무력감이다. 많은 카프카 작품이 그렇듯이 이 작품에서도 섬뜩함을 느끼는 것은 주인공의 자리에 어느 사이 읽는 사람 자신이 있다는 것이다. 이야기의 시작부터 심상치 않다. 법의 문 앞에 문지기가 서 있고 한 남자가 찾아와 법 안으로 들어가게 해 달라고 간청한다. 여기서 말하는 법은 단지 일반적인 법률만이 아니고 대단히 다의적으로, 포기할 수 없는 가치와 원칙을 포함한다. 문지기는 당장은 들어갈 수 없지만 나중에는 혹시 들어갈 수도 있을 것이라고 응수한다.

남자가 돌아가지 않고 법의 문 안쪽을 기웃대자 문지기가 다시 말한다. “꼭 들어가 보고 싶으면 나를 제치고 한번 들어가 보시오. 하지만 내가 힘이 세다는 걸 명심해 둬요. 나는 가장 말단 문지기에 불과하지만 방에서 방으로 갈수록 힘이 센 문지기들이 서 있어요.” 이 말에 주눅이 든 남자는 문 앞에서 문이 저절로 자신을 위해서 열리는 때를 기다리기로 마음먹는다. 그러면서 뇌물도 써 보지만, 문지기는 주는 것이니 어쩔 수 없이 받기는 하겠지만 안으로 들어가는 것을 허락할 수는 없다고 답한다.

지친 주인공이 법이라는 문 안으로 들어가기 위해 애쓰는 모습이 점입가경이다. 급기야는 심지어 문지기의 옷깃에 붙어 있는 벼룩한테까지 입장을 허가해 달고 사정한다. 문지기의 벼룩은 보통 벼룩과는 달리 사람도 갖기 어려운 권력을 가졌음을 말하고 있는 것일까? 여기에서 우리는 벼룩이 ‘빠루’와 같은 강력한 힘이 있음을 본다. 길고 긴 기다림 끝에 남자는 지쳐서 결국 죽어 가면서 문지기에게 묻는다. 모두들 법 안으로 들어가고 싶어 하는 줄로 알고 있는데 왜 ‘나’ 외에는 아무도 들어가겠다는 사람이 없냐고. 그러자 문지기는 “왜냐하면 이 문은 오로지 당신만을 위해서 만들어졌으니까요. 나는 이제 문을 닫아야겠군요” 라고 말한다.

이 남자는 왜 스스로 들어가지 않은 것일까? 이 물음의 답은 우리라면 어떻게 할 것인가?라는 질문에서 찾을 수 있다. 우리는 더 힘이 센 문지기들이 겹겹이 법을 가로 막고 있다는 문지기의 말에 주눅 들지 않고, 뇌물도 쓰지 않고 당당히 문을 열 수 있을까? 이 일이 얼마나 어려운가를 카프카도 알았을 것이다. 그럼에도 법이란 ‘기다리거나 뇌물을 써서 열리는 문’이 아니고 ‘혼자서 스스로 들어가야 하는 문’이라는 것을 말하고 있다. 왜냐하면 법 안으로 들어간다는 것은 세상의 힘이 지배하는 법을 넘어서는 자기 존엄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자기 존엄은 동물이 아니라는 자긍심과 진실의 이름으로만 열리는 문 안쪽의 세계다. 자긍심은 ‘인간이 자기 자신과 스스로의 잠재력을 관조하면서 느끼는 기쁨’이라고 스피노자는 말한다. 무엇을 행동하고 무엇을 행동하지 말아야 할 것인지까지 관조하는 힘, 행하지 말아야 할 것을 향한 천박한 욕망에 대한 저항이 곧 자긍심이며 자기 존엄인 것이다. 이 자기 존엄의 회복이야말로 이 혼돈의 시대를 이겨 내기 위한 준엄한 요청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