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마다 요맘때 어린이와 도서관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모여 머리를 맞대고 생각한다. 걸어온 길에 대한 성찰과 걸어갈 길에 대한 방향을 모색하기 위해서다. 첫해에는 ‘미래 세대 책 읽기 문화 어떻게 도울까?’를 주제로 ‘학습된 무기력’을 넘어서 어린이가 스스로 만들어 가는 독서 환경에 대해 논의했다. 두 해째는 ‘우리가 만나야 할 어린이 도서관’이라는 이름으로 국내와 해외 도서관 사례를 살피고 우리가 궁극에 닿고 싶어하는 지점은 어디일까 생각했다. 독서 생태계를 만들어 가는 작가, 출판사, 독서 단체, 시민 사회의 원탁회의(라운드 테이블)도 함께 열려 뜻깊었다. 한일 교류를 했던 지난해에는 ‘어린이, 도서관, 그림책’이라는 공공성을 바탕으로 우리는 ‘21세기 어린이와 어떻게 소통할 것인가’하는 화두를 던졌다.

“우리들이 재밌게 놀 수 있는 도서관이 동네마다 하나씩 있었으면 좋겠어요./ 우리와 통하는 사서 선생님이 많으면 더 많이 도서관에 갈 거예요./ 재밌는 책을 보며 맘껏 웃을 수 있었으면 좋겠구요. 웃기는 데 웃음 참는 거 너무 힘들어요./ 군인 아저씨들처럼 똑바로 앉아서 책 보는 거 너무 힘들어요. 편하게 책을 볼 수 있게 해 주세요./ 만화책도 책이잖아요. 좋은 만화책도 많이 보여 주세요./ 책장 높이를 낮춰 주세요. 책에 손이 안 닿아요./ 우리를 우리가 아닌 다른 이유로 차별하지 마세요. 도서관에서 똑같이 책을 보고 싶어요./ 몸이 불편한 친구들도 우리와 똑같이 책을 볼 수 있어야 해요./ 답답하게 건물 안에만 있지 말고 밖에서 자연을 체험하고 싶어요./ 누가 책을 많이 읽는지 때문에 우릴 비교하지 마세요. 마음속으로 책을 소중히 여기는 것은 다른 거잖아요.”

네 번째 포럼 ‘어린이를 위한 도서관 서비스’를 이야기하는 자리를 준비하면서, 생생한 저 아이들의 목소리를 읽고 또 읽는다. ‘도서관 어린이 권리 선언문’이다. 2005년 5월, 사단 법인 ‘어린이와 도서관’이 주최한 ‘전국 어린이와 도서관 한마당’에서 전국의 어린이 도서관을 이용하는 아이들의 의견을 모아 만든 것이라고 한다. 우리는 저 목소리에 얼마만큼 답한 걸까. 어깨동무하고서 어디만큼 걸어왔을까.

올해는 어린이 도서관의 도전과 실험, ‘어린이 전문 사서’의 가능성도 짚어 볼 것이다. 어린이 전문 사서? 그게 뭐냐고 묻는 분들이 많다. 어린이도서관에서 일하면 다 어린이 전문 사서 아니냐고, 그건 너무 당연한 것 아니냐고 묻는다. ‘어린이와 함께 하는 것을 좋아하는 사서’가 어린이 전문 서비스를 할 수 있도록 이제는 어린이를 위한 서비스 담당 주체들의 질적 성장과 철학, 열정과 헌신을 어떻게 공적으로 담보하고 지원할 것인지 고민할 시점이 되었다고 생각한다. 어린이 서비스를 수행하는 이에게 요구되는 역량과 함께 특별한 책임과 권한도 필요한 것이다.

국제도서관연맹(IFLA)은 도서관의 어린이 서비스 지침에서 헌신적이고 숙련된 어린이 담당 사서들이 갖추어야 할 역량으로 ‘열정, 뛰어난 의사소통과 문제 해결 기술, 네트워크를 구축하는 협력, 변화를 두려워하지 않고 융통성 있게 대처하는 능력, 새로운 기술을 배우고 전문가로 성장하고자 하는 의지’라고 말한다. 또한 ‘아동 심리 및 발달, 독서 진흥에 대한 이론, 예술 및 문화적 기회, 어린이 관련 도서와 매체’에 대한 지식을 갖추어야 한다고 덧붙인다. 요약하자면 어린이 전문 사서의 조건은 ‘어린이 책에 대한 이해, 어린이를 좋아함, 업무에 대한 열정’이다. 무엇보다 어린이와 함께 일하는 것을 좋아하고 즐거워하는 성향을 갖추어야 한다는 것이다. 좋아하는 것을 한다고 해서 열정과 헌신이 무료는 아니다. 오히려 더 대우를 해야 한다. 더불어 이런 역량을 갖추지 못했다면 어린이 서비스를 담당하면 안 되는 것이다.

어린이를 둘러싼 사회적 환경이 더욱 거칠어지고 있다고 느낀다. 그럼에도 어린이를 상업적 경쟁의 도구로 내모는 세상과 싸우며 어린이의 창조적 도전을 응원하는 사람들이 있다. 어린이의 삶이 존중받는 세상을 향한 그들의 헌신과 열정은 어린이를 대하는 도서관의 언어로 꽃피고 있다. “무엇 때문에 나는 이 일을 하고 있는지, 우리 아이들이 어떤 아이로 성장하길 바라는지, 어떤 삶을 살길 바라는지, 묻곤 해요. 저 자신에게 먼저 질문해요.” 이렇게 말하는 어린이 담당 사서의 깊은 고백이야말로 우리들의 네버엔딩 스토리가 될 것이다. 어린이의 경이로운 성장을 돕는 것이 아니라면 도대체 어린이를 위한 것들이 다 무슨 소용일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