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남 서화(書畵)의 찬란한 맥(脈)
2018년 10월 15일(월) 00:00 가가
[박석무 다산연구소 이사장·우석대 석좌교수]
매천 황현(黃玹:1855∼1910)은 조선의 마지막 대표 시인이면서 우국지사였고 또 뛰어난 역사가였다. 그의 문집 ‘매천집’(梅泉集)을 읽어 보면 배울 것이 참으로 많다. 또한 그의 역사책 ‘매천야록’은 춘추필법에 의한 직필(直筆) 사관(史觀)으로 조선 말기의 역사적 사실의 진실을 정확하게 알려주는 명저 중의 명저이다.
우리는 조선의 서화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면 안평대군이니 한석봉이니 추사 김정희를 거론하는 것이 당연한 것처럼 생각하는데 매천은 그렇게만 보아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우리 호남에도 그런 분들에 비교하여 크게 뒤지지 않은 큰 서화가들이 뛰어난 활동을 했다는 것이다.
“송송재 이후로 이창암에다가(宋松齋後李蒼岩)/ 벽하까지 세 분이 세 솥발처럼 나란했네(鼎足參差碧下三)/ 조선의 서예계 천년을 따져 보면(論定千秋東筆苑)/ 우리 호남 뒤지지는 않으리(未應寂寞我湖南)”
곡조벽하(哭趙碧下)라는 제목의 추도시에서 매천은 분명히 밝혀 주었다. 호남 출신인 매천은 ‘우리 호남’이라고 분명히 밝히고, 호남에도 세상에 뛰어난 서예가들이 있었다면서 송재 송일중(宋日中: 1632∼1717), 창암 이삼만(李三晩: 1770∼1847), 벽하 조주승(趙周昇: 1854∼1935)등 세 분 서예가의 업적을 현양하였다.
송재 송일중은 전북 김제 출신으로 1669년 현종 10년 진사과에 급제하고, 1713년 숙종 39년에는 82세의 노인으로 통정대부까지 오른 분인데, 글씨에 뛰어나 조선의 숙종대왕이 그의 글씨에 극찬을 했을 뿐 아니라, 청나라의 강희제도 극찬하여 중국에까지 널리 알려진 서예가였다. 고창 출신의 뛰어난 실학자이자 유학자였던 이재 황윤석은 송재 ‘행장’에서 “조선의 비판(비석과 현판)은 대부분 그가 썼으며 중국으로 사신 가는 사람들이 송재의 글씨를 선물로 가지고 가서 조선에도 이런 글씨가 있다고 자랑할 정도였다”라고 말했다는 것이다. 숙종대왕도 “송재 글씨는 송백이 추위를 이겨내는 모습이다”라고 했다니 송재는 조선과 중국에까지 널리 알려진 서예의 대가였음을 알게 해 준다.
창암 이삼만은 정읍 출신으로 어렸을 때부터 명필로 알려졌던 이광사(원교)의 필법을 배워 아무리 몸이 아픈 때에도 하루에 천자(千字)의 글씨를 써서 벼루가 세 개나 구멍이 날 정도였다고 한다. 특히 초서와 행서에 능해 추사 김정희도 그의 서예를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고 한다. 특히 3남 지방 사찰의 현판은 대부분 그의 글씨로 알려졌다.
벽하 조주승은 매천 황현의 친구로서 서예와 묵화의 대가로 알려진 인물이다. 김제 출신으로 석정(石亭) 이정직(李定稷)의 문인으로 학문도 높았고 서화까지 뛰어났는데, 당시 ‘석파란’으로 유명한 화가 흥선 대원군이 그의 글씨와 죽란을 평하여 ‘창란벽죽’(倉蘭碧竹)이라고 했다고 한다. 그래서 세상에서는 글씨는 스승 이정직보다 낫고, 대나무는 자하 신위보다 낫다고 평하기도 했다. 지금 전하는 대표적인 작품은 법주사 일주문의 ‘호서제일가람’(湖西第一伽藍)이 이름난 글씨로 알려졌다.
벽하 조주승의 글씨에 황현은 정말로 의미 있는 평가를 내렸다. 앞에서 인용한 시의 다른 구절에서 “형식 답습이야 버리고/ 정신을 위주로 했네”라고 말하여 글씨 쓰는 법도나 형식에 얽매이기보다는 정신 위주의 글씨 즉, 혼을 불어넣은 글씨를 썼다고 했다. 이것은 간단한 말이 아니다. 호남의 서예가들은 법도에 따르는 글씨보다는 서예가 자신의 혼이 글씨에 깃드는 그런 글씨를 썼다는 것이다. 혼이 없는 글씨를 쓴 서예가들에게 매천 같은 의인이자 지사(志士)가 어떻게 찬양의 시를 지을 수 있겠는가.
매천은 1910년 나라를 일본에 빼앗기자 울분과 분노를 참지 못한 나머지 독약을 마시고 자결한 독한 시인이었다. 그런 시인이었기에 글씨의 기교보다는 글씨에 담긴 작가의 혼을 읽을 수 있었고, 혼이 담긴 글씨를 보며 높은 찬사를 드릴 수 있었던 것이다. 그렇다. 글씨와 그림, 시나 문장 그런 모든 예술에는 작가의 혼이 서려야 한다. 제봉 고경명은 왜놈들과 총칼로 싸우다가 금산 전투에서 순국했는데 그의 시에는 그런 혼이 담겨 있다. 백호 임제는 당파 싸움과 간신배들의 국정 농단에 분노하여 벼슬을 던지고 전국을 유람하며 시를 읊다가 세상을 떠났다. 임제 또한 그런 혼이 담겨 있는 시를 지었기에 대시인으로 칭송받는다. 오늘의 예술가들 역시 혼이 담긴 작품을 창작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 이 칼럼은 지역신문발전기금 지원을 받았습니다.
“송송재 이후로 이창암에다가(宋松齋後李蒼岩)/ 벽하까지 세 분이 세 솥발처럼 나란했네(鼎足參差碧下三)/ 조선의 서예계 천년을 따져 보면(論定千秋東筆苑)/ 우리 호남 뒤지지는 않으리(未應寂寞我湖南)”
곡조벽하(哭趙碧下)라는 제목의 추도시에서 매천은 분명히 밝혀 주었다. 호남 출신인 매천은 ‘우리 호남’이라고 분명히 밝히고, 호남에도 세상에 뛰어난 서예가들이 있었다면서 송재 송일중(宋日中: 1632∼1717), 창암 이삼만(李三晩: 1770∼1847), 벽하 조주승(趙周昇: 1854∼1935)등 세 분 서예가의 업적을 현양하였다.
벽하 조주승은 매천 황현의 친구로서 서예와 묵화의 대가로 알려진 인물이다. 김제 출신으로 석정(石亭) 이정직(李定稷)의 문인으로 학문도 높았고 서화까지 뛰어났는데, 당시 ‘석파란’으로 유명한 화가 흥선 대원군이 그의 글씨와 죽란을 평하여 ‘창란벽죽’(倉蘭碧竹)이라고 했다고 한다. 그래서 세상에서는 글씨는 스승 이정직보다 낫고, 대나무는 자하 신위보다 낫다고 평하기도 했다. 지금 전하는 대표적인 작품은 법주사 일주문의 ‘호서제일가람’(湖西第一伽藍)이 이름난 글씨로 알려졌다.
벽하 조주승의 글씨에 황현은 정말로 의미 있는 평가를 내렸다. 앞에서 인용한 시의 다른 구절에서 “형식 답습이야 버리고/ 정신을 위주로 했네”라고 말하여 글씨 쓰는 법도나 형식에 얽매이기보다는 정신 위주의 글씨 즉, 혼을 불어넣은 글씨를 썼다고 했다. 이것은 간단한 말이 아니다. 호남의 서예가들은 법도에 따르는 글씨보다는 서예가 자신의 혼이 글씨에 깃드는 그런 글씨를 썼다는 것이다. 혼이 없는 글씨를 쓴 서예가들에게 매천 같은 의인이자 지사(志士)가 어떻게 찬양의 시를 지을 수 있겠는가.
매천은 1910년 나라를 일본에 빼앗기자 울분과 분노를 참지 못한 나머지 독약을 마시고 자결한 독한 시인이었다. 그런 시인이었기에 글씨의 기교보다는 글씨에 담긴 작가의 혼을 읽을 수 있었고, 혼이 담긴 글씨를 보며 높은 찬사를 드릴 수 있었던 것이다. 그렇다. 글씨와 그림, 시나 문장 그런 모든 예술에는 작가의 혼이 서려야 한다. 제봉 고경명은 왜놈들과 총칼로 싸우다가 금산 전투에서 순국했는데 그의 시에는 그런 혼이 담겨 있다. 백호 임제는 당파 싸움과 간신배들의 국정 농단에 분노하여 벼슬을 던지고 전국을 유람하며 시를 읊다가 세상을 떠났다. 임제 또한 그런 혼이 담겨 있는 시를 지었기에 대시인으로 칭송받는다. 오늘의 예술가들 역시 혼이 담긴 작품을 창작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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