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써 한 주가 지났지만 긴긴 열흘 연휴가 끝났다. 여행과 역귀성을 다녀온 후 여가의 게으름까지 누렸던 날들이다. 역귀성길, 광명에서 송정역까지 내려오는 동안 차창에 펼쳐지던 가을 초입의 황금들녘, 가로수가 늘어선 시골 신작로가 멀리 한 점으로 사라지던 황홀한 풍경에 거듭 감탄했다.

서양미술에서 길게 뻗은 가로수 길을 지평선 상의 소실점으로 사라지게 그릴 수 있게 된 것은 르네상스 건축의 창시자 브루넬레스키( 1377∼1446)와 “회화는 현실의 원근법적 해석”이라는 명제로 유명한 ‘회화론’의 저자 레온 바티스트 알베르티(1404∼1472)가 발견한 원근법 덕분이다. 원근법은 르네상스 시대 화가들이 이전부터 있어왔던 원근법을 재발견하면서 자리 잡았다. 중세의 3인칭 시점에서 대상을 바라보는 시각의 주체를 화가 1인칭의 시점으로 정립한 것이다. 마사초(1401∼1428)의 ‘성 삼위일체’는 브루넬레스키의 수학적, 과학적 방법론의 원근법이 적극적으로 실험된 최초의 본격적인 회화작품으로 알려져 있다.

브루넬레스키에서 마사초, 알베르티를 거쳐 차근차근 완성되었던 원근법은 결국 세계 회화사의 흐름을 완전히 바꿔놓았는데, 그 가운데 네덜란드 출신의 마인데르트 호베마(1638∼1709)의 ‘미델하르니스의 마을길’(1689년 작)은 화가의 눈높이가 지평선으로 수렴되는 원근법을 이용한 대표적인 풍경화로 유명하다.

요즈음의 가을 하늘처럼 푸르른 하늘에 두둥실 떠있는 구름을 배경으로 키 큰 가로수가 길게 뻗어 아득히 먼 곳으로 사라지면서 우리의 시선도 화폭 한 가운데로 모아지게 한다. 화가는 네덜란드 남부의 호젓한 시골마을을 그렸지만 우리 주변의 도시 근교 어디라고 해도 좋을 만큼 그 길 따라 걷고 싶어지는 낯익은 풍경이다.

때로 멀리서 바라보기에 더 아름답게 느껴지기도 하는 풍경처럼 수많은 사람들과 부대끼며 시달리는 요즘, 사람 사이에서도 적정한 원근법적 거리가 필요하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광주비엔날레광주폴리부장·미술사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