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낮 골방에 처박혀 시를 쓰다가/문밖 확성기 소리를 엿듣는다/계란…(짧은 침묵)/계란 한 판…(긴 침묵)/계란 한 판이, 삼처너언 계란…(침묵)계란 한 판/이게 전부인데/…/인이 박혀 생긴/생계의 운율/계란 한 판의 리듬/쓰던 시를 내려놓고/덜컥, 삼천 원을 들고 나섰다”〈고영민 작 ‘계란 한 판’중에서〉

계란 한 개로 간략한 한 끼를 해결하기도 하는 우리 식탁이 요즘 불안하다. 최근 유럽에서 발생한 ‘살충제 계란’ 뉴스를 보며 설마 했는데 일부 국내산 계란에서도 살충제 성분이 검출되면서 파문이 번지고 있기 때문이다. 조류 인플루엔자로 인한 계란 파동이 채 가시기도 전이어서 더욱 안타깝다.

서양미술에서는 우리 삶의 토대로서 음식이나 다양한 식재료, 부엌의 모습이 오랜 세월 예술가의 창작을 샘솟게 하는 모티브로 자주 등장했다. 달리, 피카소, 세잔, 마네, 고흐는 말할 것도 없고 클래스 올덴버그, 제임스 로젠퀴스트 등 팝아트에서도 음식이 주인공이 되어 다양하게 묘사되는 등 시각과 미각을 함께 자극하는 작품을 흔치않게 만날 수 있다.

이를 반영하듯 얼마 전, 뉴욕시립대 대학원 메리 앤 코즈교수는 저서 ‘모던 아트 쿡북’에서 예술가가 다채로운 방식으로 표현한 음식 그림과 그들의 이성과 감성을 자극한 예술적 레시피들을 모아 엮어내기도 했다. 이 책을 넘기다 만난 윌리엄 스코트(1913∼1989)의 그림 ‘대접, 계란과 레몬’(1950년 작) 속 계란이 오늘따라 몹시 반갑다.

우묵한 그릇에 담긴 계란과 몇 개의 레몬, 작은 접시에 올려진 몇 알의 올리브가 막 요리를 시작하려는 설렘으로 다가온다. 청색과 흰색 배경 속 계란이 유난히 신선해 보여, 계란으로 만들 수 있는 다양한 요리를 상상해보게 한다. 영국출신으로 프랑스에서 주로 활동했던 화가는 이 작품처럼 간결한 형태와 구성의 정물화를 잘 그렸다.

〈광주비엔날레 전시부장·미술사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