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기정의 독일이야기] ④ 원전은 윤리의 문제
지역민 공론화로 탈핵 이후 대비를
2017년 08월 17일(목) 00:00
“어떤 에너지든 족적을 남깁니다. 원전은 에너지 문제를 넘어 도덕의 문제입니다.”

베를린 자유대학에 머무는 동안 메르켈 정부의 원자력 윤리위원회 위원장을 맡았던 미란다 A.슈로이어 교수와 이야기를 나눌 기회를 가졌었다. 지금은 뮌헨 공과대학으로 자리를 옮겼지만 당시 미란다 교수는 베를린자유대 환경정책연구센터 소장직을 맡고 있었고 새정부 들어 한국을 방문한 적이 있는 독일 탈원전 정책의 합의를 끌어내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던 미란다 교수. 만남의 첫 일성으로 그녀는 ‘원전 문제의 윤리적 의미’를 이야기했다.

“핵발전소로 챙길 이익은 현 세대가 누리지만 부담은 후손의 몫입니다. 정의 차원의 검토가 필요했습니다. 위험천만한 핵폐기물을 다음 세대에게 전가하는 것은 심각한 윤리적 문제입니다.”

원전 문제를 효율성 차원으로만 접근하지 않았다. 메르켈 총리가 의료나 인체공학 분야에 있어 온 ‘윤리위원회’란 명칭을 에너지 분야에 도입한 것과 같은 취지의 이야기였다.

사실 독일의 에너지 전환은 시민사회의 움직임이 먼저였다고 한다. 25년 전, 독일남부까지 날아온 체르노빌의 방사능 먼지는 갑상선암 급증 등 심각한 문제를 남겼다. 독일 전역에 탈핵운동이 불길처럼 번졌고, 시민들의 목소리를 99년 ‘사민당 녹색당 연립정부’가 정책으로 담아냈다.

“한국과 마찬가지로 독일은 분단 상태였고, 곳곳에 원전이 많이 흩어져 있었어요. 90년대까지 냉전이 계속됐기 때문에 말 그대로 원전이 화약고가 될 수 있는 상황이었죠. 체르노빌 이후 시민들은 이러한 부분까지 염려하기 시작했습니다.”

원전이 재앙이 될 수 있는 상황은 자연재해만은 아니라는 지적에 고개가 끄덕여졌다.

2009년에 ‘기민 자민당 연립정부’는 신규 원전은 허용하지 않되 원자력의 수명을 12년 연장하기로 한다. 재생에너지로 가는 가교에너지로 원전에너지를 쓰려한 것이다. 그러나 2011년 후쿠시마 사고가 터지자 메르켈은 즉시 수명연장정책을 폐기하고 윤리위원회를 구성, 나머지 원전도 2022년까지 모두 폐쇄한다는 사회적 합의를 끌어낸다.

“원전의 경제성을 말하지만 발전소 해체와 폐기물 처리 비용을 포함시키면 가장 비싼 에너지로 돌변합니다. 원자력 에너지는 싸지도, 안전하지도, 윤리적이지도 않아요.”

미란다 교수는 에너지 생산문제와 더불어 에너지 사용의 효율성을 놓쳐선 안된다고 말한다. 독일의 경우, 1990년부터 2012년 사이, 경제성장 폭은 커졌지만 전체적인 전력소비량은 오히려 줄었다고 한다.

실제로 독일에서 지내는 동안 느낀 바가 있다. 독일 가정에서는 대부분 작은 냉장고를 쓴다. 필요한 식료품을 매일 조금씩 사다 쓰니 전력소모가 큰 대형냉장고가 필요 없는 것이다. 냉반방도 최소로 한다. 세탁기도 한 시간 이하로 세팅이 맞춰져있다. 출근길 등굣길에도 자동차보다 자전거를 애용한다. 창틀에 설치된 열차단막 하나에서도 에너지 사용에 대한 일상의 절제력 같은 게 느껴진다. 에너지 효율화에 대한 기업의 노력 역시 눈여겨 볼만하다.

체르노빌에서 독일까지의 거리는 1100㎞, 공교롭게도 후쿠시마에서 한국까지의 거리와 같다고 한다. 6기의 핵발전소가 가동 중인 영광에서 광주는 직선거리로 40㎞다. 그래서 에너지 전환을 준비하기 위한 전문가들과의 소통의 장을 자주 가지려 한다. 위험에 대처하는 최선의 방안은 위험을 드러내고 공론화하는 것이라는 독일의 사회학자 울리히 벡의 말에 공감하기 때문이다. <정치인·전 국회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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