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보건복지부 통계에 따르면 65세 이상 인구 열명 가운데 한명이 치매환자라고 한다. 새 정부가 질병이 아니라 재앙이 되어버린 치매를 국가가 돌보겠다는 의지로 ‘치매국가책임제’를 구축하겠다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래서인지 요즘 주변에서 뇌와 관련한 서적이나 융합 뇌 과학 등에 관심이 뜨겁다. 어른 주먹 2개 정도 크기로 불과 1.4kg인 뇌, 우리 몸 속의 작지만 큰 우주인 뇌가 우리의 모든 생각과 감정과 행동을 관장하기에 더 알려고 노력하는 것 같다.

서양화가 김지원교수(1961∼, 한국예술종합학교 조형예술과)의 작품 ‘정물화’(1999년 작)를 처음 마주했을 때 어쩌면 ‘인간의 뇌’를 그린 그림일거라 확신했다. 한정된 공간 안에서 표면적을 최대한 늘리기 위해 진화했다는 뇌 주름을 회화적으로 강렬하게 묘사한 것이 틀림없어 보였다. 시각 이미지는 때로 생각하고 싶은 대로, 믿고 싶은 대로 보여지는 것 같다. 반전인 것은, 화가의 작품은 달콤한 과육을 다 먹고 버린 복숭아씨를 그린 것이다.

김지원교수는 “누군가는 뇌라고 생각하기도 하고 맨드라미 말린 것처럼 보이는가 하면 교련복 무늬 같기도 한, 의도하지 않았지만 그림 안에 ‘언제’라는 글씨가 있는 것 같기도 한 작품”이라고 말한다. 별로 신경 쓰지 않았던 물건들에 시선이 가고 그랬던 시기에 작은 물건들을 극단적으로 클로즈업 하여 놀랄 만큼 생생한 리얼리티를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120호 크기로 확대한 복숭아씨는 예상하지 못할 낯선 존재감으로 사뭇 초현실적이다.

김지원교수는 십 수 년 전부터 여름철 뜨거운 태양 아래 생명력의 상징인 맨드라미를 그려 ‘맨드라미 작가’라는 강한 인상을 주기도 했고, 얼마 전부터는 거센 바람과 파도가 생생하게 살아 숨쉬는 바다를 화면 가득 담아내고 있어 ‘바다의 작가’라고도 불린다. 대상을 회화적으로 재현하기보다 회화의 본질을 사유하고 탐색해가는 작업을 보여주고 있어서인지 화가의 작품 앞에서는 한참동안 생각에 잠기게 한다.

〈광주비엔날레 전시부장·미술사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