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월 직원 단합대회를 위해 다녀온 고창 청보리밭이 하도 머릿속에 떠나지 않아 다시 찾았더니 어느덧 수확을 앞둔 6월 황금빛으로 너울져 있었다. 파도처럼 일렁이는 청보리 물결이 무한한 지평선 끝으로 사라지고, 밭 너머 저편 유채꽃밭이 겹쳐 얼마나 황홀경이었던지. 얼음 동동 띄운 시원한 미숫가루 한 잔 마시며 보리밭을 관광자원으로 일군 농장주의 혜안에 감탄했었다.

우리 문학 속에서 에로틱한 서정 혹은 가난의 상징인 보릿고개 등의 이미지로 등장하곤 했던 보리밭은 화가들에게도 중요한 소재였다. 황량한 보리바다를 아무도 그림으로 그릴 생각을 하지 않던 시기에 보리밭과 밀밭을 번갈아 그렸던 빈센트 반 고흐의 보리밭은 삶에 지친 화가에게 무한과 영혼의 의미로서 위안을 준 풍경이었다.

보리밭 배경의 자화상을 남긴 장욱진(1917∼1990)에게 보리밭은 어떤 의미였을까? 일명 ‘보리밭’으로 알려진 화가의 ‘자화상’(1951년 작)은 6.25전쟁 중 고향인 충남 연기군에 피난 가 있을 때 제작한 작품으로 화가는 암울한 현실을 그림으로 극복하려 했다.

때는 이즈음이었을 것이다. 하늘엔 오색구름이 떠있고 그 사이를 나는 새들, 황금 물결 이는 보리밭 사이를 걷는 신사와 그를 따르는 강아지. 농촌 풍경과 동떨어지게 보이는 완벽한 정장을 한 신사는 어디를 가는 것일까. 아니 어쩐지 보리밭 사이로 난 지그재그 붉은 길로 인하여 신사가 가게 될 행선지보다는 그 신사가 지나왔던 길을 되짚어보게 하는 그림인 것 같다. 그림 속을 따라 걷고 싶게 한다.

한국적 정서를 바탕으로 동심의 상상력과 친근한 평온함으로 따뜻한 미술을 추구했던 화가는 줄곧 삶과 자연이 합일을 이루는 도교적 세계를 보여주었다.

올해 탄생 100주년을 기념하여 화가를 다각적으로 조명하는 전시, 심포지엄 등이 곳곳에서 열리고 있다.

〈광주비엔날레 전시부장·미술사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