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뭄이다. 대지가 바삭바삭할 정도로 말라 버려 기우제라도 지내야 할 만큼 극심한 가뭄이다. 지난주에는 오랜만에 잠깐 굵은 빗방울이 떨어지긴 했지만 툭툭 마른 대지만 건드릴 뿐 해갈에는 아득한 것 같다. “세상에서 가장 듣기 좋은 소리는 아이 젖 빠는 소리와 가뭄 난 논에 물들어가는 소리”라는 옛말을 떠올리면 비를 기다리는 농부들의 애타는 마음이 안타깝기 그지없는 요즈음이다.

서양화가 서시환(1964∼ )의 작품 ‘빗물 튀튀튀’(2001년 작)는 목말라하는 요즈음 우리 농촌의 밭과 들, 대지 위로 떨어지길 고대하는 빗방울을 묘사한 듯하다. 비가 와도 흔적 없이 사라지고 마는 도시와 달리 농촌의 마른 땅에 떨어지는 빗물이라 튀.튀.튀 하고 내는 소리인 듯 경쾌하기만 하다. 빗줄기가 일으키는 풀풀 흙 보라가 빗물에 가라앉고 화면 속 가득한 흙 내음이 코끝까지 전해진다. 농부의 속 타는 마음을 달래주는 그림 같기도 하다.

얼마 전 양림미술관에서 어머니와 함께 모자전 ‘옛 적 길, 곧 선한 길 전’을 갖기도 했던 화가는 해남 출신으로 중2 때 이농한 부모를 따라 광주로 왔다가 추계예대를 나왔다. ‘대지의 작가’라 불릴 만큼 다채로운 대지의 모습을 그려오고 있는 화가는 청년시절에는 형식적 실험을 패기있게 시도하기도 했지만, ‘산’이라는 잡지에 시인과 함께 그림을 연재하게 되면서 우리 산과 자연을 재발견했다고 한다. 어린 시절 떠나온 고향을 다시 찾는 마음인지도 모르겠다.

화가는 우리 주변의 평범한 자연에 시선을 두면서도 산과 인간의 삶이 접하는 지점에 주목한다거나 대지의 다양한 풍경 안에 햇살 빗물 바람 꽃들을 개입시켜 생명의 숭고한 아름다움을 보여주고 있다. “대지의 목마른 갈증에 빗물이 튕기는 소리가 간절함을 작품에 담았다”는 화가의 기원처럼 세찬 빗소리를 기다려본다.

〈광주비엔날레 전시부장·미술사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