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도 시간속을 걷다] <6>1922년 화순농협 동부지점
한 세기 ‘은행 외길’ … 화순 금융 산 역사
2017년 03월 30일(목) 00:00

1922년 세워진 화순농협 동부지점 건물은 95년이 지난 현재까지 은행으로 쓰이고 있다. 네면이 경사진 우진각 지붕과 세로로 긴 창, 처마부에 4분의 1 내쌓기를 한 ‘코니스’ 등 일제강점기 금융건축의 흔적들이 고스란히 남아있다.

화순읍 훈리 46-2번지에 위치한 ‘화순농협 동부지점’ 건물은 1922년에 건립됐다. 처음 세워질 당시의 건물용도 그대로 95년째 변함없이 금융시설로 사용되고 있다. 마을 어귀를 지키는 느티나무처럼 한 세기 가까운 연륜을 지녔다. 건물의 나이에 비해 보존상태가 양호하다. 문화재청은 화순 최초의 금융시설인 이 건물의 금융사적·건축적 가치를 인정해 지난 2006년 ‘등록문화재 제 275호’로 지정했다. 화순의 역사가 고스란히 담긴 자그마한 박물관 같은 인상을 풍긴다.

◇화순 최초의 금융시설로 사용=“화순에서 공공적인 기능을 띤 건물로는 유일하고, 가장 오래된 근대 건축물이다.” 심홍섭 화순군 문화재 전문위원은 화순농협 동부지점 건물에 대해 이렇게 의미를 부여했다.

화순농협 동부지점 건물은 외관부터 독특하다. 벽돌을 쌓아 올린 단층 건물에 푸른색 개량형 기와를 얹었다. 지붕 스타일은 ∧모양 ‘맞배지붕’도, 추녀를 치켜든 ‘팔작지붕’도 아닌 ‘우진각 지붕’이다. 지붕 네면이 모두 경사진 스타일이다. 또한 주 출입문이 건물의 정중앙에서 오른쪽으로 치우쳐 있고, 건물 좌우 모퉁이에 작은 출입구를 따로냈다. 동양적 지붕과 서구적 건물 몸체, 외벽을 장식하는 수직의 유리창과 처마 테두리 수평의 선들이 서로 잘 어우러져 단아한 느낌을 준다. 외벽은 벽돌을 노출하지 않고 베이지색 페인트칠을 했다.

신웅주 조선대 건축학부 교수는 “그 당시 일반적 근대 모더니즘의 성격을 갖는 금융건축들과 비교하면 시대를 상당히 앞섰다. 선진적인 기술을 동원해 실험적으로 도전한 건물”이라고 밝혔다. 신 교수는 지난 2009년 보수공사를 앞두고 건물 곳곳을 꼼꼼히 살펴보고 보고서를 작성하는 프로젝트를 진행한 바 있다. 신 교수는 “기단부 석재를 거칠게 다듬는 ‘러스티케이션’(rustication) 기법을 사용하고 벽돌을 쌓은 조적(組積) 벽체와 세로로 긴 오르내리창, 우진각 지붕을 갖춘 전형적 형태이다. 설계자는 당대의 건축유행에서 한발 벗어나 ‘새로운 디자인을 창출해보자’ 라는 생각을 품은 듯하다”고 말했다.

건축특징으로는 우선 벽돌을 쌓아 만드는 조적조 건물이지만 정면 좌우 모퉁이 출입구 위쪽 귀퉁이를 둥글게 설계해 당시로선 새로운 재료인 시멘트로 마감했다. 건물 상단은 벽돌로 4줄 돌림 띠 ‘코니스’(Cornice)로 장식했다. 또한 2.89m의 세로로 긴 오르내리 유리창을 설치해 개구부(開口部)를 강조했다. 권위적인 느낌을 주기 위해 좌우대칭으로 배치하던 유행 스타일 대신 출입문을 오른쪽으로 옮겼다는 점을 꼽았다.

“의도적으로 출입문을 한쪽으로 치우치게 했다면 내부공간을 분할하려고 하는 성격이 강하다. 수직 창 역시 바깥 조망을 좋게 해 답답한 건물이 아닌 선진화된 건물을 설계하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1933년 조합원 1052명=아쉽게도 건물을 누가 설계했고, 시공했는지에 대한 자세한 기록은 찾기 어렵다. 일본인이 설계를 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조선총독부가 1907년 5월 ‘지방 금융조합 규칙’을 공포한 후 1909년 8월 전남에서 최초로 광주금융조합이 탄생했다. 이를 시작으로 도내 각 군에 지방민의 소금융 기관인 금융조합이 속속 만들어졌다. 건축물 관리대장과 토지대장을 종합해 살펴보면 당초 부지는 나라땅이었다. 1921년(대정10년) 4월에 일본인(宮瀨淸作)에게 넘어갔고 이듬해 8월에 화순금융조합에 소유권이 이전됐다. 이때 화순지역 지주들 중심으로 화순금융조합이 설립됐고, 건물도 세워진 것으로 보인다.

동아일보 1933년 4월 25일자 보도에 따르면 그 해 화순금융조합 조합원은 1052명이다. 대부금 총액은 16만1744원2전(1인당 155원22전)이고, 저금액은 2만5297원5전(1인당 24원2전)이다. 비조합원 저금액은 9만262원51전이라고 한다. 조합원 대부금 총액이 저금액보다 8배 가량이나 많다. 1938년 12월 8일자에는 화순 한 정미소 일꾼이 주인의 화순금융조합 통장을 훔쳐 예금 4000원 가운데 2500원을 아무도 모르게 인출해 종적을 감춘 금융사고가 실려있다.

해방 후 이 건물은 농업은행(1960년)→화순농업협동조합(1963년)→농협중앙회(1980년)를 거쳐 1992년부터 현재까지 화순농협 동부지점 건물로 쓰이고 있다. 1984년 8월에 15평 크기의 숙직실을 뒤편에 증축했다.

◇근대건축물 보존, 주민 인식변화 중요=정면 출입문을 열고 들어서면 전실 유리창에 입춘방(立春榜)이 붙어 있다. 창구에서는 조영자 지점장과 직원 5명이 고객들을 맞아 분주히 금융업무를 처리하고 있다. 창구 뒤편 벽에는 2013년부터 2016년까지 4년 연속 수상한 고객만족 우수사무소 상패가 게시돼 있다. 올해 역시 ‘더 헤아리는 서비스 CS(고객만족) 3.0’(고객 더 알기, 업무 더 알기, 소통 더 하기, 혜택 더 하기) 캠페인을 벌이고 있다.

상패 왼쪽 편으로 연한 하늘색 페인트가 칠해진 문서고 겸 금고문이 눈에 들어온다. 묵직하면서도 아주 튼튼하다는 느낌을 준다.

조영자 지점장은 “금고 제작시기는 정확하게 알지 못한다. 문짝이 800㎏ 정도 된다고 들었다. 대출증서와 전표 등 중요 문서를 보관하고 있다”고 말했다.

84평 규모 영업장 내부는 일제 강점기 때 원형과 많이 달라졌다. 외부벽체 하단에 통풍구가 설치된 것을 보면 본래 영업장 바닥에는 마루가 깔려있었을 확률이 높지만 현재는 ‘인조석 물갈기’(일명 ‘도끼다시’) 처리돼 있다. 외부에 굴뚝이 3개 우뚝 서있으나 내부 그 자리에 난로는 없다. 지붕하중을 받쳐주는 목재 트러스에 1967년 10월 21일에 증축한다는 상량문이 남아있다고 한다.

건물의 연륜이 거의 한 세기에 이르다 보니 잘 정리된 건물 자료는 물론 일제강점기 때 일화나 애환을 들려줄 어르신을 좀처럼 찾을 수 없다. 심 위원은 화순금융조합에서 근무했던 한 어르신이 구술을 채록하기 전에 노환으로 세상을 떠나자 “한 시대가 통째로 사라진 느낌이었다”고 아쉬워했다.

많은 근대건축물들이 ‘개발논리’에 밀려 주변에서 사라지고 있는 실정이다. 앞으로 화순농협 동부지점 건물은 어떻게 보존하고 활용해야 할까? 신웅주 교수는 건물의 ‘소프트웨어’적 중요성과 주민들의 인식변화를 강조한다.

“벽돌을 어떻게 쌓았고, 창을 어떻게 냈고 이런 하드웨어에는 한계가 있다. 만약 조합이 민족자본으로 세워졌다면 그 당시 어떤 역할을 했는지 ‘소프트웨어’적인 면에서 가치를 찾아야 한다. 역사가 누적된 건축물에서 의미를 찾는 사람들이 최근에 많이 늘어났다. 정책적으로 뭘 해라, 해라 하는 것보다는 과거 문화유산에 대해서 지금보다 더 신경을 쓰고 아끼는 시민들의 인식 변화에서 희망을 본다.”

/글·사진=송기동기자 song@kwangj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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