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은 누가 최초로 발명했을까? ‘서양미술사’의 저자 곰브리치(1909∼2001)는 라스코와 알타미라 동굴벽화에서 회화의 기원을 찾는다. 르네상스 시대 최초로 화가를 위한 실용서인 ‘회화론’을 펴낸 알베르티(1404∼1492)는 나르시스를 ‘회화의 발명자’로 꼽는다. 연못의 수면위에 비친 자신의 아름다운 그림자를 영원히 소유하려는 욕망에서 회화가 탄생했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그림은 그리움에서 비롯되었을 것이다. 그림은 사랑하는 사람이 멀리 떠난 후에도 그리운 사람을 우리 눈앞에 붙잡아 둘 수 있기 때문이다. 이미 몇 백 년 전에 세상을 떠난 사람일지라도 마치 살아있는 사람의 모습처럼 생생하게 재현할 수 있는 것이 그림이다. 그림은 사랑하는 사람을 영원히 기억하게 하는 ‘신적 능력’을 지녔다.

고대의 화가들은 그림자의 윤곽을 따라 그림을 그렸다고 전해진다. 백과사전의 시초라 할 ‘박물지’를 저술한 플리니우스는 코린토스의 옹기장이 딸이 전쟁터로 떠나게 된 연인의 모습을 호롱불에 비친 그림자의 윤곽선으로 그려냈다는 일화를 통해 회화의 기원을 기록한다. 이 주제는 서양 미술에 종종 등장한다.

장 바티스트 르노의 ‘미술의 기원:양치기의 그림자를 더듬어가는 디부타데스’(1786년 작)는 이별을 앞둔 여인이 자기 애인을 그림으로나마 간직하기 위해 벽면에 비친 연인의 그림자 선을 그대로 따라 그리고 있는 모습이다. 기억을 잃을까 두려워하는 여자의 손길이 얼마나 애절한가. 남자가 떠나도 여자의 마음속에는 그녀를 바라보던 눈빛, 곱슬거리는 머릿결, 듬직한 어깨가 선명한 이미지로 남아있을 것이다.

세월호 사고로 사랑하는 이를 잃은 사람들의 심정은 연인과의 이별을 앞둔 여인의 슬픔과 비견할 수 없을 것이다. 부모의 가슴에 묻은 아들 딸은 세월을 따라 스러지기보다 시간이 흐를수록 또렷하게 살아나는 기억일지 모른다. 잊을까봐 그림으로 잡아두지 않아도 지워질 수 없는 상처이기 때문이다.

<광주비엔날레 전시부장·미술사 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