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 읽었던 황병기 가야금명인의 인터뷰 글이 기억난다. 명인은 오래 전 스트라빈스키의 ‘봄의 제전’을 듣고 그 파격적인 선율에 충격과 동시에 귀가 열리는 전율에 휩싸였다고 한다. 정월 초하루면 이 음악으로 한 해를 시작하고, 봄 길목에선 종일 이 음악과 함께 봄을 맞이한다는 것이다.

명인의 가야금곡을 좋아하기에 그를 본떠 봄이면 ‘봄의 제전’을 듣는다. 봄이 진군한다고 할까, 습격하듯 밀려온다고 할까. 초고속 영상 촬영으로 보여주듯 모든 생명들이 약동하고 아름다운 꽃들이 다투어 피어나는 모습이 황홀하게 그려진다. 처음 시작부터 끝날 때까지 소란스럽고도 힘찬 음률에 귀기울이다보면 어느새 봄이 전열을 정비하고 우리 앞에 서있다.

봄은 그렇게 보고 싶은 것이 많은 계절이어 ‘봄’이 되었을 것이다. 동서고금의 화가들 역시 새 봄을 맞는 기쁨을 그림으로 환호했다. 피렌체 출신의 화가 산드로 보티첼리(1445∼1510)의 명작 ‘봄’은 꽃피는 계절과 함께 르네상스의 봄이 도래했음을 알리는 시각적 메신저이자 르네상스를 표상하는 아이콘으로 꼽힌다.

작품의 오른쪽에 서풍의 신 제피로스가 봄바람을 몰고 오면 님프 클로리스의 입에서 새어나오는 꽃들이 미소 짓는 봄의 여신인 플로라의 옷을 장식한다. 플로라는 장미꽃을 한줌씩 쥐어 대지에 뿌린다. 봄의 정원 한 가운데에 미의 여신 베누스가 우아한 모습으로 봄을 환영하고 있다.

혁신적인 양식으로 당대에 주목받았던 이 작품은 다양한 상징을 담고 있어 여전히 흥미로운 작품으로 평가받고 있다. 그 상징을 굳이 읽어내지 않아도 내겐 봄이란 이렇게 오는 것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작품이다. 바람의 신이 따뜻한 봄바람을 불러오고 플로라가 우리들 주위로 꽃들을 뿌리는 사이에 온 천지가 봄으로 가득해진다고 믿고 싶다.

〈광주비엔날레 전시부장·미술사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