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오노 나나미는 에세이집 ‘나의 인생은 영화관에서 시작되었다’에서 로마를 소재로 한 영화들을 보면서 로마에 빠져들었다고 고백한 바 있다. 그 열정으로 고대 로마의 역사현장을 발로 뛰며 소설적 상상력을 더해 필생의 역작 ‘로마인 이야기’를 쓸 수 있었던 것 같다. 작가에게도 보통 사람에게도 로마의 역사, 로마의 황제, 로마가 이룩한 찬란한 문명, 검투사들의 이야기들은 언제나 흥미롭다. 영화 ‘폼페이 최후의 날’의 개봉일을 손꼽아 기다려 한달음에 달려간 것도 그 까닭일 것이다.

79년 8월 24일 폭발한 베수비오 화산은 폼페이를 그대로 묻어버렸고 시간 역시 그대로 멈춰버렸다. 고대 로마의 화려했던 도시 폼페이는 1592년 한 농부에 의해 우연히 발굴되었고, 그 도시가 주는 영감은 오늘 영화로 복원된 것이다.

작품 ‘꽃을 꺾고 있는 처녀’(1세기경)는 폼페이 인근 도시인 스타비아이에서 발굴된 벽화의 일부분으로 베수비오 화산 폭발 덕분(?)으로 수 천 년의 세월을 비껴간 듯 화가가 화폭에서 방금 붓을 뗀 것처럼 생생하다. 사계(四季)의 여신 중 한 신녀가 마치 춤을 추듯이 꽃을 꺾는 모습은 우아하고 아름답기 그지없다. 누가 그렸을까? 그림 속에 그녀는 꺾은 꽃을 화병에 가득 담아 누구에게 주려고 하였을까?

고대의 유명한 거장들 중에는 조각가보다 화가가 더 많았으나 지금 우리에게 전해지고 있는 회화는 그리 많지 않다. ‘서양미술사’의 저자 E.H.곰브리치는 “고대미술의 성격이나 개념을 구성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폼페이 등에서 발굴된 장식벽화나 모자이크 감상을 통해 가능하다”고 안도했다. 미술사가들이 한결같이 폼페이 유물 속 벽화에 열광하는 이유는 그를 통해 당시의 정물, 인물, 동물, 풍경화 등 회화의 모든 것을 한 자리에서 발견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광주비엔날레 전시부장·미술사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