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치에서 열리는 동계 올림픽 소식으로 잠 못 드는 밤이 이어지고 있다. 일찌감치 전설과 영웅이 되어버린 선수들과 기대에 부응하지 못하고 넘어진 선수들을 보면서 갈채와 환호, 탄식과 안타까움으로 온 국민이 한 마음이 되는 것 같다. 사실 세계 최고의 선수들이 기량을 펼치는 무대에 섰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자랑스럽고 대견하다.

서양미술에서는 겨울 풍경으로 스케이트를 타는 그림들이 곧잘 등장한다. 북유럽의 경우 언 강이나 꽁꽁 얼어붙은 운하에서 스케이트로 이동하는 것이 자연스러운 일이어서인지 겨울 풍경으로 더 각별했던 것 같다.

헨리 레이번(1756∼1823)의 작품 ‘호수에서 스케이트를 타는 로버트 워커’(1795년경 작)는 스케이트를 타는 그림 가운데 단연 수작으로 꼽힌다. 금세공사의 도제로 들어가 대부분 독학으로 그림 공부를 했던 레이번은 후일 스코틀랜드 최고의 화가가 되어 왕립아카데미 회원, 스코틀랜드 궁정화가가 되기에 이른다. 스코틀랜드 왕으로부터 기사 작위를 받아 당대의 명사들은 그의 초상화 모델이 되기를 원했고, 레이번의 초상화를 한 자리에 모으면 스코틀랜드의 인명사전이 될 만큼 다채롭다.

작품 속에서 스케이트를 타는 남자는 스코틀랜드 에든버러시의 로버트 워커(1755∼1808) 목사이다. 겨울철이면 호수 전체가 얼어붙은 더딩스턴 호수에서 스케이트를 즐겼던 워커목사는 스포츠 광으로 에든버러 스케이팅 클럽의 회원이었다고 한다. 검은 사제복의 성직자와 발랄한 느낌의 스케이트가 얼핏 잘 어우러져 보이진 않지만 진지한 표정, 두 손을 가슴에 겹쳐 안은 우아한 포즈가 경건해 보인다.

빙판에 새겨진 스케이트 날 자국을 보니 우리 선수들이 승리의 꿈을 바닥에 새긴 소치의 아들러 아레나 경기장이 떠올라 가슴 벅차오른다.

〈광주비엔날레 전시부장·미술사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