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득 아름다운 것과 마주쳤을 때/지금 곁에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하고/떠오르는 얼굴이 있다면 그대는/사랑하고 있는 것이다//그윽한 풍경이나/제대로 맛을 낸 음식 앞에서/아무도 생각나지 않는 사람/그 사람은 정말 강하거나 아니면 진짜 외로운 사람이다…”〈이문재 작 ‘농담’중에서〉

맛있는 음식 앞에서 사랑하는 가족을 떠올릴 수 있다면 정말 행복한 사람이라 한다. 명절 때마다 귀성행렬로 이어지는 민족 대이동을 보면 새삼 가족의 의미가 사무치게 전해진다. 부모 형제 자식은 그 어떤 인연이기에 열 시간 아니, 그 이상의 교통 체증을 견디게 하는 것일까? 고향에서 맛본 그 ‘훈짐’이야말로 타향에서의 온갖 시름을 이겨내게 하는 명약임에 틀림없는 것 같다.

프랑스 철학자 가브리엘 마르셀(1889∼1973)도 “가정이란 이 세상에서 최초로 가장 순수한 의미로서 ‘우리’라고 부를 수 있는 공동체”라고 했고, 가정에서만이 나의 ‘잘나고 못남’을 따지지 않고 오직 ‘있음’ 자체를 존중하기에 모든 윤리의 바탕으로 꼽았다.

서양화가 황영성화백(1941∼ )의 ‘가족’(1995년작) 시리즈가 꼭 그런 작품이다. 우리가 상상하는 ‘고향의 원형’이라는 게 있다면 아마 이런 모습일 것 같다. 바라만 보아도 따뜻하고 아늑한 느낌을 준다. 숨은 그림 찾기처럼, 정겨운 가족의 얼굴을 찾았는가 싶으면 어느 새 우리의 시선은 논 밭 지나 작은 마을에서 더 큰 마을로 건너간다.

작가에게 ‘가족’은 ‘그리움’이다. 유년 시절 피난길에 떠나온 너른 고향땅과 헤어진 가족은 그대로 화가의 마음에 그림으로 새겨졌고, 영혼의 기록이 된 듯싶다. 작가에게 ‘가족’은 그저 가족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다. 가족의 감성으로 세상의 모든 존재를 껴안으면서 우주로까지 나아간다. 황영성의 그림처럼 ‘가족적인 것’의 복원이야말로 현대사회에서 잃어버린 ‘인간적인 것’의 회복일 듯싶다.

〈광주비엔날레 전시부장·미술사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