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리, 반, 피카소/를 보며 난 자랐어/나도 물감을 짰고/난 여기까지 왔어/…반 고흐의 달이 보이는 밤/나는 물감을 고르듯 단어를 골라/오늘 밤 어떤 게 나올진 나도 잘 몰라…”

최근 각종 음원 사이트에서 1위를 기록한 빈지노(Beezino)의 ‘달리, 반, 피카소’라는 힙합 가사다. ‘표절과 샘플링’ 사이의 논란이 있긴 했지만 흥얼거리는 딸아이의 노랫말이 흥미로워 챙겨 들어보았다. 가수가 미대 출신이어선지 달리, 고흐, 피카소에 대한 오마주가 가사에 가득하다.

통속적이라는 편견을 가졌던 트로트도 좋아질 나이가 되었지만 마음만은 늘 청춘이고 싶어 젊은 취향을 따라 요즘엔 다이나믹 듀오나 리쌍, 버벌진트 등 힙합도 가까이 한다. 힙합에도 그들만의 통속이 묻어난다. 통속이야말로 ‘삶의 진실’이 담겨있음을 깨닫게 해준다. 각운을 맞추는 랩의 라임에서 보여주는 젊은이들의 뛰어난 언어 감각은 ‘음유시인’이 따로 없다는 생각이 든다.

노랫말 덕분으로 달리가 달라 보인다. 초현실주의 화가 살바도르 달리(1904∼1989)의 작품 ‘기억의 영속’(1931년 작)은 시간에 대한 여러 상념에 젖게 한다. 특히 그 유명한 ‘부드러운 시계’를 보노라면 어쩌면 우리가 시간이 아니라 시계에 얽매어 사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시계가 나무 모서리에 걸쳐지듯 우리들 시간도 과거 한 지점에 덜컥 걸려서 멈출 수는 없을까. 잠깐만이라도 과거의 순간으로 돌아가 인생을 다시 시작할 수는 없을까.

얼마 전 관람했던 ‘어바웃 타임’이 꼭 그런 영화다. 영화 속 주인공은 과거로 돌아갈 수 있는 능력이 있어 수시로 시간여행을 한다. 주인공은 현재의 삶을 바꾸기 위해 과거로 돌아가 상황을 변경시키려 하지만 자신의 삶이 뒤죽박죽되자 당황한다. 시간여행이라는 초현실적인 가정(假定)은 매혹적이었지만 결국 아무 것도 바꿀 수 없는 것이 현실인 것이다. 지금 나의 삶이 최선이라는 자각을 다시금 해본다.

〈광주비엔날레전시부장·미술사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