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목숨바쳐 온 땅을 하나로” … 통합의 민중 영웅
2012년 07월 30일(월) 00:00 가가
<13> 무사 캄바르
출생의 신비 없이 18살 청년으로 등장
사랑 지켜내고 분열된 부족 위해 싸워
황금전사 유물 발견된 곳 무사담 많아
출생의 신비 없이 18살 청년으로 등장
사랑 지켜내고 분열된 부족 위해 싸워
황금전사 유물 발견된 곳 무사담 많아
카자흐스탄 알마티에서 북동쪽으로 230㎞ 떨어진 세미레치 지역에 있는 베스 싸티르 묘지 언덕. 사진 앞쪽은 카자흐스탄의 상징인 돌기둥. 뒤쪽의 돌무덤은 이 지역에 살았던 쓰싸 인디언 지배자들의 묘지로 추정되고 있다. 직경 8m∼70m, 높이 2∼20m에 달하는 고분 18개가 산재해 있다. /카자흐스탄=최현배기자 choi@kwangju.co.kr
카자흐스탄 알마티에서 동쪽으로 50km 떨어진 이시크 지역은 ‘황금전사’(Golden warrior)가 발굴된 곳으로 유명하다. 주검에 4000여개의 금조각을 이어붙인 망토와 갑옷을 입힌 기마전사는 1969년 그 모습을 드러냈다. 황금전사(키 215cm)는 카자흐스탄 국가를 상징하는 인물이 됐지만, 건물을 세우기 위해 땅을 굴착하던 중 우연히 발굴됐다.
취재진이 방문한 이시크 지역은 나주의 반남 지역과 같다는 착각을 할 정도로 비슷한 형태의 고분이 많았다. 고분의 축조세력은 기원전 4∼5세기 중앙아시아에 살았던 사카부족이다.
이들은 흑해 연안 스키타이, 볼가강 연안의 사르마티안과 더불어 황금문화를 꽃피웠던 주역이다. 그 황금문화가 만개한 곳이 신라다. ‘황금전사’의 세부 장식품으로 나오는 나무·새 모양 장식이나 머리 장식, 각종 조임쇠 장식 등은 신라 금관이나 황금유물에서 보이는 것과 매우 닮았다.
스키타이의 사촌격인 사카족의 용맹과 잔혹성은 그리스 역사가 헤로도투스의 스키타이에 대한 설명으로 유추해볼 수 있다. “적의 두개골을 눈썹 부위 정도에서 잘라 가죽으로 밖을 싸고 안쪽에는 금박을 입혀서 컵으로 사용했다.”
삶 자체가 적대적인 자연환경과의 ‘사투’이기도 했지만, 유독 카자흐스탄 사람들은 무사 이야기를 좋아한다. 거의 모든 이야기에서 전사·무사들의 무용담이 등장하지만, 전혀 지루해 하지 않는다.
이런 사람들에게 황금전사의 발굴은 역사적 가치를 떠나 또 다른 의미가 있다. 구비문학사적으로 유독 이 나라에 무사와 관련된 서사, 신화·전설이 많은 ‘이유’의 하나를 보충해주는 증거인 셈이다.
카자흐스탄 사람들이 가장 좋아하는 이야기는 서사시인 무사 캄바르다. 다양한 변주가 등장하는 판본도 22개가 있다.
전형적인 영웅 이야기이지만, 무사 캄바르는 차별화한 전개와 서술 방식을 보여준다.
주인공의 신비로운 출생의 모티프가 없다는 것이 이채롭다. 예컨대 신탁을 받고 태어나 하루가 다르게 무사로 급성장하고, 태어날 때부터 활을 잘 쏘고, 힘을 타고났다는 중앙아시아식 출생 기담이 없다. 무사 캄바르는 18살의 용맹한 청년으로 처음부터 등장한다.
캄바르 이야기는 코지 코르페시와 바얀술루, 키즈 지베크 등 무사와 연인의 사랑을 주제로 한 이야기의 서술방식과도 구별된다. 점잖은 진술방식에서 벗어나 표현이 직설·직설적이고 관능적이다.
아버지가 추천한 신랑감을 거부하며 캄바르와 결혼을 고집하는 연인 나짐의 고백이다. “나는 흥정거리가 되는 암말이 아니에요. 초원의 저 광활한 길 위에서 우리의 방패가 될 그런 무사(캄바르)가 필요해요”
“야생 가젤 같은 나짐의 눈이 가느다란 눈썹 아래 빛난다. 그녀의 젊은 유두는 자작나무 새순 같다. ”(캄바르를 갈망하는 나짐의 모습)
나짐의 모습은 흡사 무협지의 절세미인을 묘사하는 듯하다. “그녀의 눈썹은 가느다란 검은 깃털 같다. 눈처럼 하얀 몸이다. 눈 위에 뿌려진 붉은 피처럼 뺨 위에 붉은빛이 타오른다”
규방에서 연인을 그리워하며 눈물을 훔치는 여성상이 없다는 것도 매력이다. 나짐은 캄바르에게 과감하게 사랑을 고백한 뒤 그의 사랑을 얻기 위해 가슴앓이를 한다.
“다섯 개 앞발을 가진 질투가 내 얼굴에 재를 칠한 걸까. 아니면 적이 나를 저주해 추하게 만든 것일까. 거울을 보고 얼굴을 희게 만들고 뺨을 물들이면 바로 그때, 그가 내 얼굴을 보러 오지 않을까” 운문이 80%가량 차지하는 캄바르 이야기는 시적이고 유려하다. “햇빛도 닿지않은 준마의 아랫배에, 바람도 닿지 않은 준마의 허리에, 배에 캄바르가 채찍을 가했다. 채찍질 소리가 메아리 처럼 울려퍼지고 준마 톨파르가 마치 봄의 물결처럼 달려나간다”
그럼에도, 무사 캄바르 전형적인 영웅이다. 그가 싸우는 대의는 연인을 구원하고 ‘민중을 통합’하는 것이다. 숱한 민족의 분열과 통합을 거쳤던 중앙아시아를 배경으로 한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민족분열보다는 통합이 평화를 이루고 단합된 힘을 가질 수 있다는 염원을 깔고 있다. 캄바르 이야기에도 12개 부족들이 등장한다.
연인을 위기에서 구해낸다는 이야기의 얼개도 중앙아시아 이야기가 공유하는 바탕이다. 캄바르는 자신의 연인을 갈취하려는 칼미크족의 족장 마흐툼 칸을 죽이고, 연인의 부족을 위기에서 구해낸다.
/카자흐스탄=윤영기 기자 penfoot@kwangju.co.kr
이들은 흑해 연안 스키타이, 볼가강 연안의 사르마티안과 더불어 황금문화를 꽃피웠던 주역이다. 그 황금문화가 만개한 곳이 신라다. ‘황금전사’의 세부 장식품으로 나오는 나무·새 모양 장식이나 머리 장식, 각종 조임쇠 장식 등은 신라 금관이나 황금유물에서 보이는 것과 매우 닮았다.
스키타이의 사촌격인 사카족의 용맹과 잔혹성은 그리스 역사가 헤로도투스의 스키타이에 대한 설명으로 유추해볼 수 있다. “적의 두개골을 눈썹 부위 정도에서 잘라 가죽으로 밖을 싸고 안쪽에는 금박을 입혀서 컵으로 사용했다.”
이런 사람들에게 황금전사의 발굴은 역사적 가치를 떠나 또 다른 의미가 있다. 구비문학사적으로 유독 이 나라에 무사와 관련된 서사, 신화·전설이 많은 ‘이유’의 하나를 보충해주는 증거인 셈이다.
전형적인 영웅 이야기이지만, 무사 캄바르는 차별화한 전개와 서술 방식을 보여준다.
주인공의 신비로운 출생의 모티프가 없다는 것이 이채롭다. 예컨대 신탁을 받고 태어나 하루가 다르게 무사로 급성장하고, 태어날 때부터 활을 잘 쏘고, 힘을 타고났다는 중앙아시아식 출생 기담이 없다. 무사 캄바르는 18살의 용맹한 청년으로 처음부터 등장한다.
캄바르 이야기는 코지 코르페시와 바얀술루, 키즈 지베크 등 무사와 연인의 사랑을 주제로 한 이야기의 서술방식과도 구별된다. 점잖은 진술방식에서 벗어나 표현이 직설·직설적이고 관능적이다.
아버지가 추천한 신랑감을 거부하며 캄바르와 결혼을 고집하는 연인 나짐의 고백이다. “나는 흥정거리가 되는 암말이 아니에요. 초원의 저 광활한 길 위에서 우리의 방패가 될 그런 무사(캄바르)가 필요해요”
“야생 가젤 같은 나짐의 눈이 가느다란 눈썹 아래 빛난다. 그녀의 젊은 유두는 자작나무 새순 같다. ”(캄바르를 갈망하는 나짐의 모습)
나짐의 모습은 흡사 무협지의 절세미인을 묘사하는 듯하다. “그녀의 눈썹은 가느다란 검은 깃털 같다. 눈처럼 하얀 몸이다. 눈 위에 뿌려진 붉은 피처럼 뺨 위에 붉은빛이 타오른다”
규방에서 연인을 그리워하며 눈물을 훔치는 여성상이 없다는 것도 매력이다. 나짐은 캄바르에게 과감하게 사랑을 고백한 뒤 그의 사랑을 얻기 위해 가슴앓이를 한다.
“다섯 개 앞발을 가진 질투가 내 얼굴에 재를 칠한 걸까. 아니면 적이 나를 저주해 추하게 만든 것일까. 거울을 보고 얼굴을 희게 만들고 뺨을 물들이면 바로 그때, 그가 내 얼굴을 보러 오지 않을까” 운문이 80%가량 차지하는 캄바르 이야기는 시적이고 유려하다. “햇빛도 닿지않은 준마의 아랫배에, 바람도 닿지 않은 준마의 허리에, 배에 캄바르가 채찍을 가했다. 채찍질 소리가 메아리 처럼 울려퍼지고 준마 톨파르가 마치 봄의 물결처럼 달려나간다”
그럼에도, 무사 캄바르 전형적인 영웅이다. 그가 싸우는 대의는 연인을 구원하고 ‘민중을 통합’하는 것이다. 숱한 민족의 분열과 통합을 거쳤던 중앙아시아를 배경으로 한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민족분열보다는 통합이 평화를 이루고 단합된 힘을 가질 수 있다는 염원을 깔고 있다. 캄바르 이야기에도 12개 부족들이 등장한다.
연인을 위기에서 구해낸다는 이야기의 얼개도 중앙아시아 이야기가 공유하는 바탕이다. 캄바르는 자신의 연인을 갈취하려는 칼미크족의 족장 마흐툼 칸을 죽이고, 연인의 부족을 위기에서 구해낸다.
/카자흐스탄=윤영기 기자 penfoot@kwangju.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