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혼 울리는 두개의 현 … 수천년 민족 ‘애환의 벗’
2012년 07월 16일(월) 00:00 가가
〈11〉 카작의 영혼 ‘돔브라’
암각화·풍속화·민담 … 역사 곳곳 등장
유목민 아픔·옛 소련 치하 슬픔 위로
국민 절반이 연주 가능한 ‘국민 악기’
“진짜 카자흐스탄은 돔브라 그 자체”
암각화·풍속화·민담 … 역사 곳곳 등장
유목민 아픔·옛 소련 치하 슬픔 위로
국민 절반이 연주 가능한 ‘국민 악기’
“진짜 카자흐스탄은 돔브라 그 자체”
카자흐스탄 돔브라의 명인 졸라우시 투르두굴로프(62)씨가 카자흐스탄 국립 사범대학 미술학과 작업실에서 기초작업을 마친 돔브라를 살펴보고 있다. 일반인들이 사용하는 돔브라를 만드는 데는 보통 일주일 가량 걸리지만, 전문가용은 최장 6개월에서 1년 가량이 소요된다. /카자흐스탄=최현배기자 choi@kwangju.co.kr
“‘진짜 카자흐스탄은 국가로서 카자흐스탄이 아니라 돔브라(Dombra)다’는 격언이 있습니다. 카자흐스탄 민족의 영혼이 담긴 악기라는 말입니다. 민족과 함께 해온 세월이 4000년을 헤아립니다.”
카자흐스탄 국립 사범대학 미술학과 작업실에서 만난 졸라우시 투르두굴로프(62)씨는 돔브라를 한 마디로 ‘국민 악기’라고 정의했다. 백발에다 야생 매와 같은 날카로운 눈빛을 가진 그는 카자흐스탄의 전통악기인 돔브라를 40년째 만들고 있는 마이스터다. 그가 만든 악기는 카자흐스탄을 대표하는 연주자인 주누쏘바, 울켄바에바 등 명인들이 소유하고 있다.
졸라우시씨는 “나는 전통문화를 사랑하는 국민이 있어 행복한 장인”이라고 말했다. “국민 두 사람 가운데 한 사람은 돔브라를 가지고 있지요. 아마 돔브라 연주를 할 줄 모르는 사람을 찾기가 더 어려울 겁니다. 지금도 돔브라를 찾는 수요가 줄지않고 꾸준히 이어지고 있습니다.”
카자흐스탄과 돔브라의 인연은 깊다. 돔브라를 연주하는 모습을 그린 고대 암각화가 최근 발견되기도 했고, 그들의 삶을 스케치한 풍속화에는 어김없이 돔브라가 등장한다. 19세기 중엽부터 지난 20세기 말까지 구 소련의 지배를 받는 동안에는 카작 사람들의 애환을 달래주는 악기였다.
현(絃)이 두 줄이고 만돌린 처럼 생긴 돔브라는 바흐시(구연자)들이 서사시,민담 등을 들려줄 때 연주하는 악기이자, 카자흐스탄 기악합주(큐이)에도 빠지지 않는 대표적인 현악기다.
카자흐스탄에서 전해 내려오는 돔브라에 얽힌 민담은 이 악기의 특질을 대변한다.
옛날에 카자흐스탄의 왕 주기칸의 아들이 야생마를 사냥하던 중 우두머리 말에게 역습을 당해 죽음을 앞뒀다. 왕은 “경솔하게 아들의 생사를 언급하는 자가 있으면 그의 입에 펄펄 끓는 주석을 부어넣을 것”이라고 못박았다.
어느 날 돔브라 연주자가 왕에게 와서 연주를 해보이겠노라고 자청했다. 악사의 음률에는 왕자의 죽음을 예언하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 왕은 아들의 죽음을 간접적으로 언급한 연주자를 단죄하고 싶었지만, 그가 말하지 않았기에 돔브라의 입(울림통)에 끓는 주석을 부어 넣었다. 돔브라가 말하는 신령스런 악기라는 민담이다.
음률로 말하고 심금을 울리는 악기지만 ‘명기’는 쉽게 만들어지는 게 아니다. 졸라우시씨 같은 명인도 ‘가장 카자흐적인 소리’를 들려주는 진짜 악기를 만들기는 쉽지 않다고 한다. 그가 40년 동안 2000여개의 돔브라를 만들었지만, 제대로 소리를 내는 악기는 열 손가락 꼽을 정도라고 했다.
“좋은 소리는 울림이 낮고 부드러우면서도 명징합니다. 고음과 저음에서도 모두 부드러운 소리가 나야 좋은 악기입니다. 말이 쉽지 이런 소리를 내는 악기를 만드는 것은 매우 어렵습니다. 연주하는 사람이 편하게 연주할 수 있는 이상적인 형태로 만드는 것도 중요합니다.”
졸라우시씨가 악기를 만드는 지론은 ‘삼위일체’다. ‘하늘이 악기와 사람을 맺어주어야 한다’는 일종의 운명론 같은 거다.
“선택한 목재의 성품, 주문한 사람, 제작가의 인연이 닿아야 합니다. 주문을 맡아 한 달 만에 돔브라를 뚝딱 만들어내기도 하지만, 1년이 지나도록 만들지 못하는 경우도 있죠. 그게 악기와 사람의 인연입니다. 제가 작품을 주문한 사람과의 첫 만남을 중요하게 여기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첫 인상이 좋지 않으면 악기 만드는 데 시간도 많이 걸리고 어려움도 적잖습니다.”
돔브라 제작공정의 핵심은 현과 울림통이다. “악기에 생명을 불어넣기 위해서는 전통방식으로 현을 만들어야 합니다. 나일론 줄을 튕겨서는 결코 자연의 소리를 얻을 수 없습니다. 현은 양과 염소의 내장에서 힘줄 같은 근육질을 추출해서 만듭니다. 양 한 마리에서 뽑아낼 수 있는 현은 고작 돔브라 4개를 만들 분량이죠. 전통방식으로 현을 만드는 장인은 카자흐스탄에서 찾아보기 힘듭니다. 워낙 만드는 기술이 어렵기 때문이죠.”
돔브라 몸통은 카자흐스탄 동부지역 알라타우 산맥에서 자라는 가문비나무를 쓴다. 통나무를 잘라내 악기의 목, 몸통의 윤곽을 만들고, 끌로 파내 울림통을 만든다. 이런 제작 방식은 특별한 주문이 있을 경우 채택한다. 대부분은 나무판을 붙여 만든다.
졸라우시씨는 “돔브라가 언뜻 보기에 핸디캡이 있는 악기처럼 보이지만 전혀 그렇지 않다”고 고개를 흔들었다. 악기의 현이 두 줄이 뿐이라는 지적에 대한 대답이다.
“제가 돔브라에 빠진 이유는 간단합니다. 현이 두 개 뿐인데도 모든 음악을 연주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기타의 화성에는 못미친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기는 합니다. 그러나 한계처럼 보이는 이것이 장점이자 매력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돔브라가 세계적인 악기가 될 수 있는 강점 말이죠.”
카자흐스탄의 악기명인 졸라우시씨의 전통문화 계승에 대한 지론은 평범했지만, 누구나 머리를 끄덕이게 하는 진리에 가까웠다. “전통을 살리기 위해서는 옛 것을 사랑해야 합니다. 좋아하고 사랑한다면 전통의 명맥이 끊길 이유가 없습니다.”
/카자흐스탄=윤영기 기자 penfoot@kwangju.co.kr
카자흐스탄 국립 사범대학 미술학과 작업실에서 만난 졸라우시 투르두굴로프(62)씨는 돔브라를 한 마디로 ‘국민 악기’라고 정의했다. 백발에다 야생 매와 같은 날카로운 눈빛을 가진 그는 카자흐스탄의 전통악기인 돔브라를 40년째 만들고 있는 마이스터다. 그가 만든 악기는 카자흐스탄을 대표하는 연주자인 주누쏘바, 울켄바에바 등 명인들이 소유하고 있다.
카자흐스탄과 돔브라의 인연은 깊다. 돔브라를 연주하는 모습을 그린 고대 암각화가 최근 발견되기도 했고, 그들의 삶을 스케치한 풍속화에는 어김없이 돔브라가 등장한다. 19세기 중엽부터 지난 20세기 말까지 구 소련의 지배를 받는 동안에는 카작 사람들의 애환을 달래주는 악기였다.
카자흐스탄에서 전해 내려오는 돔브라에 얽힌 민담은 이 악기의 특질을 대변한다.
어느 날 돔브라 연주자가 왕에게 와서 연주를 해보이겠노라고 자청했다. 악사의 음률에는 왕자의 죽음을 예언하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 왕은 아들의 죽음을 간접적으로 언급한 연주자를 단죄하고 싶었지만, 그가 말하지 않았기에 돔브라의 입(울림통)에 끓는 주석을 부어 넣었다. 돔브라가 말하는 신령스런 악기라는 민담이다.
음률로 말하고 심금을 울리는 악기지만 ‘명기’는 쉽게 만들어지는 게 아니다. 졸라우시씨 같은 명인도 ‘가장 카자흐적인 소리’를 들려주는 진짜 악기를 만들기는 쉽지 않다고 한다. 그가 40년 동안 2000여개의 돔브라를 만들었지만, 제대로 소리를 내는 악기는 열 손가락 꼽을 정도라고 했다.
“좋은 소리는 울림이 낮고 부드러우면서도 명징합니다. 고음과 저음에서도 모두 부드러운 소리가 나야 좋은 악기입니다. 말이 쉽지 이런 소리를 내는 악기를 만드는 것은 매우 어렵습니다. 연주하는 사람이 편하게 연주할 수 있는 이상적인 형태로 만드는 것도 중요합니다.”
졸라우시씨가 악기를 만드는 지론은 ‘삼위일체’다. ‘하늘이 악기와 사람을 맺어주어야 한다’는 일종의 운명론 같은 거다.
“선택한 목재의 성품, 주문한 사람, 제작가의 인연이 닿아야 합니다. 주문을 맡아 한 달 만에 돔브라를 뚝딱 만들어내기도 하지만, 1년이 지나도록 만들지 못하는 경우도 있죠. 그게 악기와 사람의 인연입니다. 제가 작품을 주문한 사람과의 첫 만남을 중요하게 여기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첫 인상이 좋지 않으면 악기 만드는 데 시간도 많이 걸리고 어려움도 적잖습니다.”
돔브라 제작공정의 핵심은 현과 울림통이다. “악기에 생명을 불어넣기 위해서는 전통방식으로 현을 만들어야 합니다. 나일론 줄을 튕겨서는 결코 자연의 소리를 얻을 수 없습니다. 현은 양과 염소의 내장에서 힘줄 같은 근육질을 추출해서 만듭니다. 양 한 마리에서 뽑아낼 수 있는 현은 고작 돔브라 4개를 만들 분량이죠. 전통방식으로 현을 만드는 장인은 카자흐스탄에서 찾아보기 힘듭니다. 워낙 만드는 기술이 어렵기 때문이죠.”
돔브라 몸통은 카자흐스탄 동부지역 알라타우 산맥에서 자라는 가문비나무를 쓴다. 통나무를 잘라내 악기의 목, 몸통의 윤곽을 만들고, 끌로 파내 울림통을 만든다. 이런 제작 방식은 특별한 주문이 있을 경우 채택한다. 대부분은 나무판을 붙여 만든다.
졸라우시씨는 “돔브라가 언뜻 보기에 핸디캡이 있는 악기처럼 보이지만 전혀 그렇지 않다”고 고개를 흔들었다. 악기의 현이 두 줄이 뿐이라는 지적에 대한 대답이다.
“제가 돔브라에 빠진 이유는 간단합니다. 현이 두 개 뿐인데도 모든 음악을 연주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기타의 화성에는 못미친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기는 합니다. 그러나 한계처럼 보이는 이것이 장점이자 매력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돔브라가 세계적인 악기가 될 수 있는 강점 말이죠.”
카자흐스탄의 악기명인 졸라우시씨의 전통문화 계승에 대한 지론은 평범했지만, 누구나 머리를 끄덕이게 하는 진리에 가까웠다. “전통을 살리기 위해서는 옛 것을 사랑해야 합니다. 좋아하고 사랑한다면 전통의 명맥이 끊길 이유가 없습니다.”
/카자흐스탄=윤영기 기자 penfoot@kwangju.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