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덩이처럼 달구어진 자갈밭 위에 온 몸을 던져 서울로 가는 분들이 있습니다. 마치 자벌레를 닮은 몸짓으로 불덩이같은 자갈밭, 먼지 나고 비에 젖어 질컥거리는 흙길, 기름 냄새 절은 아스팔트를 마다 않는 오체투지의 눈물길. 스스로를 돌보지 않고 내던져버리는 천리 길 강행군입니다.
바보 천치, 고집쟁이들입니다. 첫 출발지였던 지리산 노고단에서 두 분을 뵙고 와서 몇 날 며칠 불면의 나날입니다.
누구 말마따나 이제는 손자들 재롱이나 보실 연배의 흰머리 희끗한 두 분 성직자. 일찍이 새만금 물막이로 죽어갈 뭇 생명 살리겠다고 삼보일배 천리 길, 아니 그 이전 수몰될 위기에 처한 지리산 자락 살리겠다고 낙동강 순례, 다시 마치 실험용 쥐같이 내장 수술당할 처지에 놓인 이 땅 둘러보고자 강추위 아랑곳하지 않으시다가 두 무릎 뼈 먼저 절단 난 스님과 그 길 함께 길동무하시던 신부님.
이 길 위에서 낮아질 대로 낮아져서 두 분이 쓰러져 그대로 죽더라도 기어이 가시고야 말겠노라는 그 하염없고 무정한 길을 생각하면 마음이 저려 아무 것도 손에 안 잡혀 허성거립니다. 거꾸로 물구나무 서 듯 산을 기어 내려오시는 두 분 뒤를 따라가며 많이들 꺼이꺼이 속울음 울던 이들이 뿔뿔이 제 사는 곳으로 흩어져 돌아간 이 나라는 참으로 조용합니다.
이 나라의 구성원들은 기껏 신부놈과 중놈 둘이, 엎어져서 오든 꼬꾸라지며 기어오든 무슨 일이냐며 제 할 일 바쁜 체 하는 것인지요. 아니 이 나라의 모든 도시는, 깊은 사랑과 자비의 성찰을 구하며 낮아질 대로 낮아지는 마음 저 깊은 곳에서 울려나와 터져 번지는 ‘말없음의 말’을 듣고 보지 못하는 것인지요.
요즈음 우리는 잘사는 것에 목매달고 있는 것 같습니다. 과연 어떤 것이 잘 사는 것일까요. 경제적으로 풍족하고 남보다 더 쌓아놓고 떵떵거리며 목숨 부지하고 사는 것만이 참 행복일까요. 남보다 조금 더 여유 있게 사는 것만이 행복일까요. 저는 참으로 행복하기 위해 시민운동을 택하고 이제껏 살아오고 있습니다. 더불어 뜻을 함께하는 이들과 미래에 이 땅에 오실 이들이 두루 행복한 세상을 이뤄 보고자 많이 억지도 부려보고, 없는 힘도 내어보고 그렇게 살아왔던 것 같습니다.
그러나 이에 반해 높아질 대로 높아진 우리 사회의 돈만 벌면 행복해질 것이라는 허상을 좇는 현실이 두렵습니다. 지금 우리가 사는 사회는 정상이 아닌 것만 같습니다. 참으로 허망하고 허망합니다. 무엇이 잘못된 것일까요. 개발 위주의 삶의 방식에 경종을 울리는 두 분의 천리 길 강행군이 그래서 더욱 귀합니다.
과연 우리가 수많은 생명을 해치며 강과 산을 허물어야 할 만큼 가난한지, 오늘도 로드킬 피 냄새 위에 이마를 대고 두 무릎과 두 팔꿈치 그 위에 올려놓고 쓰다듬으며 헤엄쳐 서울로 가시는 두 분의 오체투지 천리 길 마음으로 울며 좇으며 생각해보고 또 생각해 봅니다.
/김경일〈광주 생명의 숲 사무국장·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