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고! 나를 무엇 때문에 살려 놓았다냐?”. 이는 최근 큰 며느리와 딸에게 갖다주려고 집 마당에 마늘 일곱 접을 널어놨는데, 누군가 집에 몰래 들어와 훔쳐갔다며 마취에서 깨어나 서럽게 우시던 여든넷의 고흥 할머니의 한 섞인 푸념이다.
필자는 그동안 삶에 ?겨 내 자신을 너무 돌보지 않고 인생을 살았었다. 최근 계단을 오르내릴 수 없을 만큼 무릎 관절이 아파 병원을 찾았다.
MRI(자기공명영상법·magnetic resonance imaging) 검사결과, 연골이 다 닳아 인공관절을 삽입하는 수술이 필요하다는 의사의 진단을 받고 화순 전남대병원에 입원했다.
당시 고관절이 부러져 수술을 받고 병상에 누워 있던 고흥 할머니가 토해낸 이야기가 아직도 생생하다. 이를 지켜본 필자의 마음은 한 없이 무거웠다. 농촌의 노령화에 따른 젊은이들의 부재 때문이었다. 특히 농사를 천직으로 알고 평생 농작물을 가꾸는데 전념해 온 이들에게 농작물은 자식과도 같다.
이들이 병실에 누워있으면서도 마음이 편치 않은 이유다. 이들의 경우 조금만 다쳐도 큰 부상으로 이어져 수술을 받아야 하는 경우가 많다. 젊은 사람과 달리 3개월 이상 입원 치료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 기간 동안 애써 가꿔온 농작물을 돌볼 사람은 거의 없다.
고흥 할머니를 곁에서 지켜 본 필자의 마음도 그리 편치만은 않았다. 돌이켜보니 필자의 지난 삶도 그리 녹록치만은 않았다는 생각에 헛웃음을 지었다. 수술을 무사히 마치고 극심한 통증에서 회복될 즈음 삼복더위에도 불구하고 병실은 쾌적하고 시원했다.
찜통 더위 속에서 맛보는 시원한 여름나기는 물론 노동에서의 해방감은 필자의 마음을 행복하게 했다. ‘화려한 휴가’를 즐기는 것 같았다. 병실에서 환한 미소와 함께 “참 좋다”라고 중얼거리자 이를 본 간병인이 “병원에서 할 말이냐”고 핀잔을 줬다. 잠시나마 행복했지만, 고흥 할머니의 모습이 떠오르자 이내 마음이 무거워졌다.
최근 농작물 절도범이 기승을 부리고 있다는 소식을 자주 접하곤 한다. 수확기를 맞아 고흥할머니처럼 시골에서 피땀으로 일궈놓은 고추와 깨 마늘, 콩 등 농작물을 도선생들이 훔쳐가고 있는 것이다. 수입 개방 등으로 그렇지 않아도 어려움을 겪고 있는 농민들을 두 번 울리는 게 농촌지역의 절도범이다.
개 도둑을 막기 위해 개 몸에 색을 칠하고 지역별로 농산물 겉포대에 색을 칠하고 연락처 등이 적힌 같은 색의 생산자 카드를 안에 넣어 도난품인지를 확인할 정도다. 땡볕에서 고생하며 수확한 농산물은 농민들에게 자식과 같은 존재다.
세상살이가 아무리 힘들고 어려워도 농산물을 훔치지 않는 세상이 됐으면 좋겠다.

/박영자 대한주부클럽연합회 광주시지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