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친구 가족들과 오랜만에 만나 즐거운 대화가 오가는 저녁식사 시간을 가졌다. 요즘 식당은 식사 후 아이들 놀이공간이 마련되어 있는데 그 식당도 그러하여 오랜만에 만난 아이들은 그곳으로 모두 몰려갔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다섯 살 난 여자 아이가 시무룩해진 얼굴로 들어와 엄마 곁에 앉아 엄마가슴에 얼굴을 비비며 잘 들리지도 않는 목소리로 얘기한다.
“엄마 언니가 안 놀아줘” “언니가 안 놀아줬구나! ” 엄마의 한마디에 아이의 눈에는 눈물이 그렁그렁 해졌다. 아이의 한 손은 엄마 가슴을 만지면서 엄마를 꼭 껴안는다. 보통사람들은 그냥 지나쳤을 이 광경에 나는 가슴 한쪽이 찡해지는 것을 느꼈다. 이런 때 찾아올 엄마의 품이 있다는 것은 이 아이에게는 얼마나 큰 힘이 되는 것인지.
아동보호전문기관은 아동학대예방·상담 사업을 하고 있다. 2000년 아동복지법 개정으로 설치된 우리 기관에 24시간 운영되고 있는 상담전용전화 1577-1391을 통한 신고건수는 해마다 증가하고 있는데 이는 전국적인 현상이다. 사람들을 만나면 흔히 ‘매스컴을 오르내리는 아동학대가 정말 우리 주변에도 일어나는 일이냐’ ‘오히려 요즘은 아이들을 지나치게 보호해서 문제가 되지 않느냐’고 묻는다.
지난해 광주지역에서만 324건이 신고 접수되었고 아동학대로 판정된 사례는 237건이었다. 아동학대 특성상 가정 내에서 자주 발생하고 있으나 ‘가족문제’라는 이유로 신고를 꺼려 신고율이 낮은 요인이 되고 있다. 외국과 비교해 보면 금방 알 수 있다.
미국은 아동인구 1천명당 아동학대보호율이 2004년 11.9명을 기록했으나 우리나라는 0.35명으로 나타났다. 또 2005년 일본의 경우 1.6명인 반면 우리나라는 0.42명으로 분석되어 우리나라의 학대아동보호율이 외국에 비해 매우 저조함을 알 수 있다. (보건복지부,울산대학교산학협력단, 2007)
최근 울산에서 일어났던 계모에 의한 아동 살해 사건도 이웃이나 어린이집 교사에 의해 목격되었던 잦은 멍자국을 빨리 신고되어 졌더라면 어떻게 되었을까 생각해본다.
아동기의 신체 학대나정서학대, 방임, 성(性) 학대 등은 아동의 건강·발달·복리에 심각한 영향을 미친다. 아동에게 필요한 정서적 지지와 애정이 결핍되면 자아개념에 직접적으로 손상을 주게 되고 학대받는 상황과 과정 속에서 자신의 감정은 중요하지 않고 무가치하다는 것을 학습하게 되어 낮은 자아존중감과 정체성의 손상을 가져오게 된다.
이는 대인관계형성능력에 손상을 가져와 또래관계 형성에 어려움을 겪게 되고 커서 직장동료관계나 결혼관계를 맺거나 부모역할을 수행하는데도 어려움을 겪게 되는 것이다. 누구든지 아동학대를 알게 된 때에는 우리 기관이나 수사기관에 신고할 수 있다.
특히 신고의무자인 교사, 의료인, 아동복지시설종사자, 보육시설종사자, 학원교사 등 아동과 자주 접촉하며 학대를 가장 먼저 발견할 수 있는 사람들의 관심이야말로 잃었던 엄마의 품을 찾아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한선희〈광주아동보호전문기관 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