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누리안 리포트-소통이 힘들어요
2007년 02월 28일(수) 19:38
“한국말 못 알아 듣는다” 툭하면 구박
지난 1일 나주시 성북동 나주교회내 나주결혼이민가족지원센터. 국제결혼으로 나주에 정착한 이주여성 30여명이 난로 주변 책상에 둘러앉아 한글을 익히고 있었다.

“일월 이월 삼월…”‘가갸 거겨’부터 갓 첫걸음을 시작한 초급반 여성들은 1년 열두 달의 명칭을 강사를 따라 큰 소리로 외웠다. 여기저기서 혀짤배기 소리가 들리고 발음은 엉성했지만 강사의 입 모양을 유심히 보며 따라 하는 표정은 더 없이 진지했다.
중급반에서는 선물을 준비할 때 가족들과 주고 받을 수 있는 ‘∼은 어때요?’의 표현에 털모자와 동화책, 목걸이 등을 바꿔넣는 연습이 한창이었다. 한 켠에서는 불러주는 단어를 한 글자씩 또박또박 써보는 여성들도 있었지만 마음처럼 잘 되지 않는 듯 했다.
베트남 출신의 웬옥투(27)씨는 “한국말 너무 어려워요. 발음과 높임말 모든 게 힘들어요”라고 하소연했다.

이 센터의 대표이자 한글교실 강사인 홍기술 목사(결혼이민자지원연대 전남대표)는 “베트남 출신 이민여성들은 ‘ㄹ’ ‘요’ ‘여’ 등의 발음을 힘들어 하고 ‘다리’나 ‘낫, 낯, 낮, 낱’ 등 다의어와 동음이의어는 대부분의 이주여성들이 구분하는데 애를 먹는다”고 말했다. 홍 목사는 “부부싸움이나 고부 갈등을 비롯한 국제결혼 가정의 많은 문제가 의사 소통의 어려움에서 비롯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국제결혼으로 광주·전남에 정착한 이주여성들이 가장 먼저 넘어야할 장벽은 ‘한국어’다. 언어는 인간관계는 물론 부부·가족간 상호 이해의 출발점이지만, 서로 몇 번 만나지도 못한 채 결혼이 이뤄지는데다 한국어를 배울 기회조차 없이 들어오는 경우가 많아 소통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한국말을 못하기 때문에 가족간 대화도 부족하고 문화를 이해하는 것은 더 더욱 힘들다. 지난해 베트남 여성과 결혼한 최모(37)씨는 “말이 통하지 않아 다투는 경우가 적지 않다”고 털어놨다. 간단히 해결할 문제도 의사전달이 제대로 안돼 오해를 하거나 벽에 부딪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지난해 전남도의 이주여성 실태조사 결과 시부모와 관계에서 가장 큰 어려움은 ‘한국어 의사소통’(22.1%)이었으며, 취업 의지가 있어도 서툰 한국말 때문에 못한 경우가 10.6%에 달했다. 2002년 광주시 여성발전센터 조사에서도 외국인 주부가 가장 어려워하는 것은 ‘문화적 이질감’(45%)과 ‘의사소통의 어려움(38%)’ 등으로 나타났다.

이주여성의 서툰 한국어 실력은 자녀교육에도 걸림돌이다. 자녀들의 언어학습에는 어머니와 대화가 가장 큰 영향을 주기 마련인데 한글 구사가 미숙하다보니 2세들도 그런 경우가 적지 않다.
이주여성지원센터나 교회, 대학, 자원봉사단체 등에서 운영하는 한글교실에서 공부하는 이주여성들은 그나마 형편이 나은 쪽에 속한다. 상당수는 이주 후 출산과 농사 등 생활인으로 묻혀 지낸다. 그러다보니 최소한의 의사표현조차 못한 채 혼자 눈물로 세월을 보내거나 갈등을 겪는 경우가 많다. 미얀마 출신의 한 이주여성은 “아직도 말이 안통해 서로 오해하고 ‘너희 나라로 돌아가라’고 쫓아내는 가족들이 많다”며 “말 때문에 어려움을 주고 차별한다면 한국의 선진국 진입은 멀기만 할 것”이라고 꼬집었다.

한국어강좌 운영자들은 “이주여성이 교육을 받고자 해도 남편이나 시부모가 행여나 달아날까봐 내보내지 않는 경우가 많아 교육 기회 자체가 차단되고 있다”고 지적한다.
한국어교육 기관과 인력, 교재도 턱없이 부족하다. 광주·전남에는 4천여명의 이주여성이 있지만 교육시설은 10여곳에 지나지 않으며 대부분은 소규모로 운영된다. 체계적인 한국어교육을 받는 이주여성은 전체의 10% 안팎에 불과할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전문가들은 “한국어의 체계적인 교육을 위한 다양한 교재 개발과 교육기관 확충에 정부와 자치단체가 적극 나서야 한다”며 “이주여성의 남편들도 아내 나라의 언어와 문화를 알려고 하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정후식기자 who@kwangj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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