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청와대의 표정이 어둡다. 며칠 전부터는 우울함 마저 감돈다. 집권 말기의 `레임덕(Ｌame Ｄuck)'' 현상도 우려의 수준이다. 스스로 운신의 폭을 옥죈 업보(業報)는 너무도 버겁다. 그렇다고 표정을 관리할 모멘트가 있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대통령도 염두에 둔 절호의 기회가 없지는 않았다. 한나라당이 `대통령 때리기''에 가속도를 붙이고, 도청 의혹에 청와대를 끌어들이는 피곤함 속에서도 마지막 카타르시스는 준비돼 있었다. 다름 아닌 세계박람회 여수 유치는 대통령에게 집권 말기 최대의 성공작이자 위안이 될 수 있는 카드였던 셈이다.
김대중 대통령이 세계박람회 총회 개최 한달 전부터 여수 유치를 위해 역량을 총동원해 왔던 것도 이러한 함의가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박선숙 대변인은 중국이 외교력과 물량공세등 총력전을 펴면서 예측할수 없는 상황으로 치닫게 되자 대통령이 직접 회원국 정상들과 통화를 하면서 여수 지지를 호소했다고 전했다. 통화를 한 정상들만 40여명에 달했다고 한다.
그러나 결과는 `대통령 편''이 아니었다. 국정의 최고 책임자로서 할 말도 잃게 됐다. 유치 실패의 요인인 부처간의 불협화음이나 홍보 부족도 사실 대통령의 몫이다.
그렇다고 정치권에, 대선이라고 면죄부를 줄 수는 없다. 정치권도 그 만큼 책임이 크기 때문이다. 국회 차원의 유치활동이 있었던가, 세계박람회 총회가 유치 현장에 얼굴을 내민 의원이 몇이나 있었는지, 싸움질만 할 뿐 박람회 유치를 `남의 일''로 치부하지 않았던가.
대통령이 회원국 정상들과 만나 지지를 호소하는 외교를 폈더라면 정치권의 반응은 어떠했겠는가도 상정해 볼 일이다. 민감한 시기임을 내세운 정치권의 과민한 `발목잡기''도 예상해 볼 수 있다.
`우울한 대통령''은 국가와 국민에게도 불행한 일이다. 모두가 새겨야 하는 뼈아픈 교훈이다.